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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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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우산, 태풍도 두렵지 않다

우산이 넘쳐나 귀한 줄 모르는 시대, 사연 있는 우산 고쳐 쓰고 고쳐주는 사람들… 시간이 문제지 못 고치는 우산 없어
등록 2011-07-28 18:14 수정 2020-05-03 04:26
지난 7월16일 서울 지하철 6호선 응암역 벼룩시장에서 젊은 우산수선공 임세환씨가 연분홍색 양산을 고치고 있다. 우산을 들고 온 할머니는 우산이 고쳐질 때까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벼룩시장은 매달 셋쨋주 토요일에 선다. 8월에는 쉰다고 한다. 한겨레21 김남일

지난 7월16일 서울 지하철 6호선 응암역 벼룩시장에서 젊은 우산수선공 임세환씨가 연분홍색 양산을 고치고 있다. 우산을 들고 온 할머니는 우산이 고쳐질 때까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벼룩시장은 매달 셋쨋주 토요일에 선다. 8월에는 쉰다고 한다. 한겨레21 김남일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 비닐우산, 2단·3단·5단 우산, 반자동·완전자동 우산, 장우산, 골프우산, 이중방풍우산에 ‘핵우산’까지. 우산이 넘쳐난다. 칠순잔치, 돌잔치, 결혼식, 주주총회, 개업식에 가도 우산을 주고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해도 기념우산을 만들어 돌린다. 기업체에서 주는 사은·판촉 우산에, 소나기 피하려고 내 돈 주고 산 3천원짜리 지하철 우산까지. 넘쳐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신발장 안은 물론 승용차 뒷좌석이나 트렁크에도 언제 넣어둔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우산이 하나씩 있다. 사무실 책상 아래에서도 발에 차인다. 비가 개면 길거리 쓰레기통에는 살이 부러진 우산이 한두 개씩 처박혀 있다.

폐우산 하나, 여럿 우산 살린다

어렵게 살던 시절, 우산은 귀했다. 몇 개 안 되는 우산을 아버지가 쓰고 출근하고, 부지런한 형·누나가 먼저 쓰고 등교한다. 운 좋으면 살이 비죽 튀어나온 고장난 우산이나 댓살에 파란 비닐을 씌운 일회용 우산이라도 쓰고 나갈 수 있었다. 가격도 싸지는 않았다. 1966년 7월에 나온 어느 신문기사를 보자. “학생용이라고 불리어지는 조그마한 우산이 380~450원. A자동(반자동)이 850~900원, 비자동(완전자동)이 1200~1400원. 우산의 기본형이라고 할 수 있는 긴 우산이 500~800원, 긴 우산으로서 접고 펴는 것이 자동으로 되어 있는 것은 2400원씩 거래되고 있다.”

어쨌든 한 해 2천만~3천만 개의 우산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우산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이 됐다. 어디선가 공짜로 받거나 싸구려다 보니 버스에 두고 내려도 별로 아깝지 않다. 그러니 우산 고쳐 쓴다는 생각은 더더구나 못한다. 20~30년 전만 해도 ‘우산 고치라’고 소리치며 동네를 돌아다니던 우산수선공도 찾아볼 수 없다. 우산을 고쳐주는 구둣방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도 우산을 고쳐 쓰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우산을 고쳐주는 곳이 있다는 얘기다.

장맛비가 지칠 줄 모르고 내리던 지난 7월16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응암역 3번 출구 앞 소공원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진보신당·사회당 은평당협,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부비정규직센터 등에서 꾸린 벼룩시장(cafe.daum.net/epbazaar)인데 매달 셋쨋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장이 선다. 칼도 갈아주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판다. 수익금의 일부는 비정규직 후원에 사용된다. 벼룩시장 한구석에 젊은 우산수선공 임세환(34)씨가 돗자리를 깔고 쭈그려 앉았다. 우산 수선은 2009년부터 시작된 응암역 벼룩시장의 ‘상징’이 됐다. 임씨 곁으로 우산이며 양산이 수북하다. 고쳐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도 있지만 폐우산이 대부분이다. 임씨는 “폐우산에서 우산살이나 부품 등을 분해해 우산 수선에 사용한다”고 했다. 장기 기증처럼 수선이 불가능한 우산 하나를 해체해 우산 여럿을 살린다.

한 할머니(74)가 연분홍색 양산을 들고 왔다. 살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5학년인 손자가 10살 되기 전에 며느리가 백화점에서 사준 양산인데 부러졌네. 백화점에 갔더니 서비스 기간이 끝났다고 하더라고. 벼룩시장 열리기를 한 달을 기다렸어.” 사연 있는 양산이 많다. 딸이 이민 가면서 백화점에서 큰마음 먹고 사준 양산은 망가져도 버리지 못한다. 임씨가 난감한 표정으로 양산을 집어들었다. 양산은 우산보다 구조가 복잡한데다 폐양산 기증도 거의 없어 부품 조달이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젊은 수선공을 한껏 치켜세웠다. “요즘은 우산이 너무 흔해서 고쳐 쓰는 사람이 없지만 옛날에는 다 고쳐 썼어. 이런 양반들 상 줘야 해.”

우산수리센터 있는 서초구

사회당원인 임씨가 머리를 싸매자 진보신당 소속인 최훈병(45)씨가 나섰다. 최씨는 벼룩시장이 시작된 2009년부터 우산 수선을 해오다가 지난 3월 임씨에게 기술을 ‘전수’했다. 최씨의 훈수가 통했다. 임씨가 철사로 꼼꼼하게 마무리를 하자 할머니의 얼굴도 펴진다. “며느리가 새로 양산을 사줬는데 이것만 못하더라고. 가벼워서 노인네가 들고 다니기 좋고 색도 곱잖아. 그런데 우리 아들이 이거 고치러 온 거 알면 나 혼나.” 그러면서도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든다. “조카딸이 사준 우산인데 우산 끝살이 부러졌어.” 임씨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물건을 고쳐서 쓰는 데 익숙한 분들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놀란다”고 했다. 곧이어 김희월(79)씨가 연녹색 양산을 들고 왔다. 20여 분간 낑낑대던 임씨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 수선이 끝나면 집까지 배달해드리겠다”고 했다. 동네 벼룩시장만이 해줄 수 있는 서비스다.

최훈병씨는 2009년 우연한 기회에 우산 수선 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전수해준 이가 경기도 성남에서 ‘우산박사’로 유명한 김성남(83)씨다. 당시 김씨는 서울 양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활사업의 하나로 우산 수선을 가르치고 있었다. “벼룩시장 프로그램 개발 차원에서 배웠어요. 김 선생님이 처음에는 ‘웬 젊은 놈이 왔나’ 하는 눈치셨는데, 어깨너머로 배우게 해주셨죠.” 김씨는 최근 건강이 나빠져 쉬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강북에 응암역 벼룩시장이 있다면, 서울 강남에는 서초구 우산수리센터가 있다. ‘부자구’인 서초구에서 우산을 고쳐주기 시작한 것은 이미 2003년부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처음이다. 2009년부터는 양재종합사회복지관(3호선 양재역 5번 출구)에서 이를 넘겨받아 자활사업의 하나로 우산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수리비는 무료다. 돈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고쳐 쓸까? 지난해 ‘호흡기’를 달고 온 9537개의 우산·양산이 살아서 수리센터 문을 나섰다. 올 상반기에도 벌써 4340개가 살아 나갔다. 2003년부터 셈하면 7만 개가 넘는 우산이 새 생명을 얻었다. 우산수리센터에 들어서면 지난 4월에 우산 수리를 맡긴 탤런트 이종원씨의 사인이 벽에 걸려 있다. 사회복지사 민종운씨는 “추억이 담긴 우산이나 양산을 고치기 위해 지방에서도 문의가 온다”고 했다. 우산수리센터에는 폐우산에서 수집한 우산살과 각종 부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수리 인원도 5명이나 된다. 8년 넘게 우산 수리를 해왔다는 우산수리센터 관계자(66)는 “부품이 없으면 만들어 쓰기도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지 못 고치는 우산은 없다”고 했다. 마침 10만원 정도 한다는 일제 자외선 차단 골프우산이 들어왔다. 그는 “30만~40만원짜리 우산도 들어온다”며 웃었다.

우산을 고쳐 써보자

양재종합사회복지관은 다른 지자체를 대상으로도 우산 수리 교육을 한다. 상반기에는 서울 송파(1명)·은평(3명), 경기 구리(2명)·과천(4명), 인천(4명)에 기술을 전수했다. 하반기에는 11월 이후에 교육에 들어간다고 한다. 우산수리센터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점심시간 11시30분~12시30분).

장마가 끝났다. 그래도 태풍은 오고, 비는 온다. 우산을 고쳐 써보자.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 윤석중 선생이 가사를 붙인 동요에 등장하는 찢어진 우산도 어느 우산수선 전문가가 잘 꿰맸을 것이다.

글·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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