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문화평론가
평단의 평가는 엇갈리나, 는 관객으로부터 비교적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고, 인류는 지구를 지켜낸다’는 스토리는 할리우드에서 늘 보던 것이라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 성인용 아동영화가 그렇게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의 효과 덕분일 것이다. 사실 로봇이 자동차로 변신한다는 모티브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게다가 스크린에서 보는 변신 로봇은 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변형의 모티브는 일상생활에서도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만물은 유전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같은 강에 두 번 몸을 담글 수 없다. 우리는 그 강을 ‘같은 강’이라 부르나, 그 강을 이루는 물은 전에 이미 내가 몸을 담갔던 그때의 그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형’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태를 바꾸기 때문이다. 우주도 탄생 이후 변형돼왔고, 지구도 탄생 이후 계속 변화돼왔고, 그 위에 사는 나도 바로 몇 년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다. 물론 의 ‘변형’은 일반적 의미의 만물 유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맥락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한 형태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는 급진적 변형이다. 자연 속에는 그런 놀라운 변형의 예가 존재한다. 가령 곤충의 ‘변태’를 생각해보라. 고치 속에서 잠자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는 모습은 거의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이 달걀의 부화다. 액체 상태의 물질이 깃털이 달린 생명이 되어 부리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에는 어떤 경이로움이 있다. 새끼 고슴도치의 등이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새까만 가시로 뒤덮이는 모습도 경탄을 자아낸다.
동일한 사물이 형태만 바꾸는 것이 ‘변형’(Transformation)이라면, 한 사물이 완전히 다른 사물로 둔갑하는 것은 ‘변신’(Metamorphosis)이다. 변신은 마법과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 가령 해리 포터는 마법의 지팡이로 한 사물을 완전히 다른 사물로 바꾼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종종 동물로 둔갑하고, 인간은 종종 식물로 변신한다. 특히 아폴론의 연애 행각은 종종 연인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데, 그때마다 그는 죽은 연인을 식물로 둔갑시키곤 했다. “아폴론의 연애 행각이 없었다면, 오늘날 식물도감은 매우 빈약했을 것이다.”
‘변형’의 모티브는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가령 펼치면 침대가 되는 소파, 잡아당기면 식탁이 되는 선반을 생각해보라. 너무 익숙해져 의식조차 못하지만, 사실 접는 우산이나 접이식 의자도 이른바 ‘변형 디자인’(Transformative Design)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건축에서도 벽을 움직여 실내 공간의 형태를 자유롭게 바꾸는 변형 디자인의 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에 영감을 준 장난감 변신로봇들은 변형 디자인의 한 종류, 그것도 매우 급진적인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형 디자인에는 크게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재분배’(Re-distribution)는 사물을 이루는 요소들의 물리적 배치를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가령 펼치면 침대가 되는 소파를 생각해보라. 이 경우 사물의 형태와 기능이 바뀐다. 둘째, ‘재정향’(Re-orientation)은 사물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가령 벽에 세워져 있다가 당기면 내려오는 침대처럼, 이 경우 사물의 형태와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 셋째, ‘통합’(Integration)은 외부 요소를 첨가해 해당 사물의 형태와 기능을 바꿔놓는 것이다.
기계공학이라기보다 생물학적인이렇게 볼 때, 에 등장하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은 변형 디자인의 ‘재분배’ 원칙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옵티머스 프라임은 어떻게 트럭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위키피디아’를 뒤져보니, 오토봇의 변형에 관해 언급한 것은 딱 한마디뿐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그들의 디자인 속에 타당한 물리학(Valid Physics)을 구현하여, 로봇의 크기가 그것이 변장한 형태(자동차)에 조응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사이즈만 맞추었다는 얘기다.
하다못해 허접스러운 장난감 변신로봇도 실제로 다른 사물(가령 권총)로 모습을 바꾼다. 그런데 천문학적 예산을 들인 영화에서 변형의 알고리즘조차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3차원 입체를 또 다른 3차원의 입체로 변형시키는 데 따르는 위상학적 문제 같은 것은 아예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오토봇의 변형이 과학적·기술적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행여 관객이 지각이라도 할세라 후다닥 돌아가는 고속의 CG에 힘입어 얼렁뚱땅 이루어진다.
에 나오는 오토봇이나 디셉티콘처럼 자동차로 형태를 바꾸는 로봇들을 디자인하는 게 위상학적으로 가능할까? 루빅스 큐브가 좌우상하로 돌아가는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런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갖고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외형을 트럭에서 로봇으로 바꾸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트럭의 외형을 바꾸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변형된 로봇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동력을 전달하는 유압계통의 복잡한 재구성이 필요할 게다.
오래전에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 이가 있었다. 러시아혁명 직후 구축주의자 타틀린은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을 지으려 했다. 400m 높이의 규모로 구상됐던 이 기념비는 재원과 기술의 부족으로 결국 3~4m 높이의 목제 모형으로 남았다. 원래의 구상에 따르면, 이 건축물의 하단과 중단과 상단은 해와 달과 지구의 주기에 맞춰 각각 1년, 1달, 1일의 주기로 회전하게 돼 있었다. 문제는 각각 상이한 주기로 회전하는 이 세 부분을 엘리베이터로 연결하는 것. 타틀린은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각각 따로 회전하는 건물의 세 부분을 지상층에서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로 연결하는 것은 오늘날의 기술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도 자동차를 실제로 ‘작동하는’ 로봇으로 바꿔놓는 것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오토봇과 같은 로봇을 실제로 디자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임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미래에 그와 같은 ‘변형’의 기술이 개발된다 해도, 그것은 영화에서처럼 기계공학적 방식이 아닌 후기생물학적 방식을 택할 것이다. 애벌레는 완벽하게 잠자리의 성체로 변태를 하지 않던가.
변형의 알고리즘을 제시했다면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오토봇이나 디셉티콘을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적어도 자동차의 외형을 로봇의 외형으로 바꿔주는 알고리즘 정도는 꾸며낼 수 있을 게다. 비록 조잡한 수준이지만, 장난감 회사에서는 로봇이 권총이 되고, 다시 권총이 로봇이 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물론 영화 속의 옵티머스 프라임은 애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정도 허구를 허용한다. 그 자유를 이용해 적어도 ‘영화적으로’ 납득할 만한 변형의 논리 정도는 제시했어야 한다.
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자동차가 후다닥하는 사이에 벌써 로봇으로 변신해 있는 모습이 아니라, 자동차의 각 부품이 개연적인 논리에 따라 로봇의 각 지절로 변하는 과정을 슬로모션으로 담은 시퀀스다. 하지만 나의 이 소박한 기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배반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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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함께 미국 3대 공상과학(SF) 소설가로 알려진 로버트 하인라인은 이제는 고전이 된 군사과학소설 (1959)에서 ‘외골격’(Exoskeleton)이란 개념을 처음 상상했다. 외골격이란 외계인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인간의 우주방위대(스타십 트루퍼스)가 약한 힘을 보완하고자 몸에 장착해 뇌와 직접 연결한 기계장치를 말한다. 그러면 근육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훨씬 더 강력하게 힘을 쓰거나 빠르게 대응하도록 외골격이 도와주게 된다.
현실이 되고픈 만화
이 개념은 많은 기계공학자들을 지적으로 자극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기계공학과 교수들이 이른바 ‘블릭스 프로젝트’(Bleex Project)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전신마비 환자들이 다리근육에 기계장치를 부착하고 뇌파로 움직임을 제어해 보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은 블릭스 프로젝트의 한 응용 사례다. 일종의 ‘옷처럼 입는 로봇 기술’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외골격을 개발해 미국의 모든 군인에게 장착시켜 ‘슈퍼솔저’(Super Soldier)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블릭스 프로젝트의 성과물은 다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20년 뒤 미군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이 바로 영화 이다 (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기계공학과 교수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와 과학은, 예술과 테크놀로지는 서로 끊임없이 자극하고 상상력을 공유하며 발전해왔다.
외골격 못지않게 기계공학자들을 자극한 개념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트랜스포머 휴머노이드 로봇’(Transformer Humanoid Robot)이다. 누가 처음 ‘스스로 변신하고 조립하는 로봇’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우리를 열광케 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시리즈, 가 그 시초가 아닐까 싶다.
의 메카닉 디자이너 가와모리 쇼지는 1980년대 초 일본의 장난감 회사 다카라와 함께 변신로봇 시리즈 ‘마이크로 맨’과 ‘다이아크론’을 만들었다. 이 장난감들이 세계적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를 통해 ‘트랜스포머‘(Transformers)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판매되자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됐다. 일본에서보다 더 큰 반응을 얻자, 미국에선 TV판 애니메이션 가 1984년부터 방영됐고, 만화책은 같은 해 7월부터 미국 마블코믹스를 통해 출간됐다.
그렇다면 거대한 트랙터 트레일러가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프라임’(Optimus Prime)으로 변신하는 것은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과학자로서 이 질문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들이 내놓을 답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이 아주 멀다’ 정도의 무책임한 답변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을 제일 먼저 떠올린 과학자는 내가 아니며, 이미 20년 전부터 공학자들이 에서 영감을 얻어 실험실에서 월화수목금금금 연구해 세상에 내놓은 테크놀로지가 있으니, 바로 ‘스스로 변신하고 조립되는 로봇’(Self-reconfiguring Robot 혹은 Shape Shifting Robots)이다. 이 로봇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려고 ‘3차원 프린터’를 활용해 부품을 스스로 만들고, 설계도에 따라 이를 조립해 스스로 변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성 탐사 로봇은 우리가 짐작하지 못한 지형에 맞닥뜨릴 수 있고 그때마다 자신의 형태와 기능을 변형시키며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스스로 변신하는 로봇’은 필수적이다.
자동차 변신 로봇 연구는 진행 중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 거대한 옵티머스 프라임을 거리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일까? (대신 손바닥만 한 옵티머스 휴대전화만이 주머니 안에ㅜㅜ). 지금의 자기 변신 로봇이 옵티머스 프라임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크기와 동력’이라는 걸림돌을 해결하지 못해서다.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무게중심을 잘 잡으면서 엄청난 동력으로 트럭만 한 부속품들을 스스로 조립해 변신하는 로봇을 현재 기술로는 절대 못 만든다(대개 자기 변신 로봇은 나노 스케일에서 제안되고 있다!).
게다가 영화처럼 디젤엔진을 써서 거대한 옵티머스 프라임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옥의 티’ 수준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힘 구동은 대개 전기식(Sources-electric)·공압식(Pneumatic)·유압식(Hydraulic) 방법을 사용하는데, 가장 강력한 힘이 필요한 옵티머스는 유압식 제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전기로 제어하려면 전기 배선이 모든 부품을 서로 연결해야 하는데, 그러면 변신이 어렵다. 전기선이 자칫 끊어질 수 있으므로!).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압을 만들려면 물탱크와 펌프가 필요하고, 이것으로 인해 옵티머스의 무게는 더 늘어나고 제어도 쉽지 않다. 게다가 평소 트럭이나 자동차로 ‘정상적으로’ 기능하다가 이족보행 로봇으로 변신하려면 고도의 복잡성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제어 기술이 필요한데, 그게 공학적으로 갈 길이 멀다.
결론적으로, 조만간 우리가 과학자들의 연구실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을 발견할 확률은 ‘제로’라는 얘기다. 휴보나 아시모를 포함해,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이족보행 로봇은 모두 100kg 이내다. 꿈을 깨뜨려서 죄송하지만, 수십t의 이족보행 로봇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트랜스포머 연구는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미국이 ‘스스로 조립과 변신하는 탐사로봇’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면, 일본은 ‘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훨씬 더 트랜스포머에 가까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휴머노이드 연구에 회의적이었다. 인간을 닮은 이족보행 로봇이 세상에 쓸모 있을 경우가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들은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진공청소기를 쥐어주는 것보다, ‘룸바’(Roomba)처럼 청소기를 로봇으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크로스와 건담을 탄생시킨 일본은 휴머노이드가 결국 우리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 믿으며, ‘이동수단(Vehicle)으로서의 휴머노이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트랜스포머처럼 자동차로 주행하다가 로봇처럼 변신해 사람을 돕기도 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원대한 목표다. 그래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를 가장 열심히 하는 곳이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와 도요타인 것이다(아시모도 그들의 작품이다!).
이야기보다 강한 변신의 스펙터클
1998년 개봉한 가 그랬듯이, 도 많은 연인들을 얼굴 붉히며 싸우게 만들었다. “네가 먼저 보자 그랬지?” “네가 먼저 보자 그랬잖아!”
이야기 없고, 재미없고, 감동 없는 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위안은 조립과 변신이 주는 스펙터클이다. 관객은 조립과 변신의 에서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21세기 테크놀로지의 결정체’를 경험한다. 는 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로봇들의 전시장이다. 이제 식상해버린 이 시리즈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은 조립과 변신의 다음 단계인 ‘합체’에 달려 있다. 그들이 합체해 더 강력한 적을 무찌르는 스토리가 속편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몽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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