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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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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담쟁이가 만들어내는 건물의 표정…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 사옥 등 인공과 자연의 조화 더 중시한 건축물들
등록 2011-05-26 06:15 수정 2020-05-02 19:26

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 북촌. 봄이 무르익자 머리를 맞댄 한옥 처마와 좁은 골목길 담장 위로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른다.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나들이 나온 가족과 연인들도 골목길의 정취를 연방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최근 북촌에 ‘유해식물 담쟁이를 제거해준다’는 펼침막이 나붙었다. 펼침막을 내건 단체는 지난해 발족한 ‘북촌문화마을 가꾸기회’(이하 북촌가꾸기회)다. 회장은 문화재 주변 담쟁이 제거 운동을 펼치는 ‘우리 문화재 바르게 지킴이’ 대표인 권대성씨다. 그는 “북촌의 전통 한옥에는 원칙적으로 나무 등을 심지 않았다. 대지가 넓을 경우에는 배산임수 원칙에 따라 건축물 후원에 나무를 심었지만, 나무는 주변을 습하게 만들어 집을 해친다”고 설명했다.

적벽돌과 푸른 담쟁이의 사랑

담쟁이 제거 신청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옥 1채, 양옥 3채에서 제거 신청이 들어왔다. 북촌가꾸기회 최병우씨는 “10년 넘게 담쟁이를 기른 집도 제거 신청을 했다. 벌레가 많이 꼬이고, 미관상 보기에도 좋지 않고, 담장 등이 변색된다는 것이 이유다.” 권대성 회장은 “자연은 자연대로 유지하고 인공의 아름다움은 그것 자체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담쟁이로 덮을 바에는 왜 고급 화강암이나 고급 마감재를 사용해 집을 짓느냐”고 했다.
그의 담쟁이 제거론은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인 ‘공간’ 사옥도 빼먹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자리한 공간 사옥은 1977년 완공됐다. 계동 현대 사옥과 창덕궁 돌담길 사이, 북촌으로 올라가는 어름에 자리하고 있다. 검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설계 단계부터 계획된 담쟁이가 건물 전체를 덮었다. 권대성 회장은 “김수근 선생이 말년까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건축 당시 심은 한 뿌리의 담쟁이가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건물 전체를 뒤덮어 본래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찾을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공간 사옥 쪽에 담쟁이를 제거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김수근이 설계한 담쟁이 벽돌 건물들.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 혜화동 샘터 사옥, 장충동 경동교회(위부터). 담쟁이의 연녹색과 검거나 붉은 벽돌이 잘 어울린다. 한겨레21 정용일

» 김수근이 설계한 담쟁이 벽돌 건물들.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 혜화동 샘터 사옥, 장충동 경동교회(위부터). 담쟁이의 연녹색과 검거나 붉은 벽돌이 잘 어울린다. 한겨레21 정용일

김수근은 담쟁이를 사랑한 ‘담쟁이파’였다. 김수근은 어린 시절 북촌에서 살았다. 그가 쓴 에서는 가회동·재동 등 북촌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 북촌에 김수근은 자신의 건축사무소인 공간 사옥을 지었다. 건물 외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어버린 담쟁이를 두고, 건축 연구가들은 ‘자연주의적 외벽 처리’를 거론하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담쟁이 잎이 피고 지고, 색이 변한다. 건물벽이 이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이를 보는 사람들도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대학로의 샘터 사옥, 서울 장충동의 경동교회 역시 적벽돌과 담쟁이의 아름다운 조화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간이다. 생태조경 전공 서울대 환경대학원 성종상 교수는 “김수근은 건축물이 갖는 표정에 신경 썼을 것이다. 붉은 벽돌과 담쟁이의 연녹색은 잘 맞는다. 건축물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관련 있다. 그런 맥락 속에서 함께 가길 원하지 건물 그 자체로만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수근은 건축언어로 벽돌과 담쟁이를 사용했고, 벽돌이라는 인공과 담쟁이라는 자연의 근친성이 그의 건물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현대 건축물에 끼치는 영향은 적어”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자리한 한겨레 사옥도 콘크리트 뿜칠로 마감한 벽면을 휘감은 담쟁이가 인상적인 건물 중 하나다. 직원들은 “담쟁이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는 농담을 하곤 한다. 한겨레 사옥을 설계한 조건영 건축가는 “담쟁이가 현대 건축물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나는 언제나 담쟁이를 권한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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