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그는 성소수자 건강권에 대한 강의를 부탁한다며 연락을 해왔다. 처음 만난 그는 두툼한 입술 사이로, 활동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꺼냈다. 자기는 군대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정신병원에 입원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술집의 은은한 조명처럼 은근한 목소리였다. 막막한 주제를 덜컥 제안받고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나간 나는 어느새 “네” 하고 말았다.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동성애가 ‘정신병’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은 1973년….” 글을 써내리다가 멈칫했다. 동성애가 공식적인 정신질환의 목록에서 삭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동성애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중요한 문제가 차별이라는 내용을 쓰려던 참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오명은 ‘더러워진 이름이나 명예’라는 뜻이다.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닌 것은 맞지만 정신질환이 오명인가? 은연중에 튀어나온 말에서 숨어 있던 편견을 마주친 것이다. 얼마 뒤 길을 가는데 환자복을 입고 뮤지컬을 홍보하는 배우들이 있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정신병동이 뭐야?” 당황한 엄마는 말을 머뭇거리다가 “정신병자들, 그러니까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입원하는 병원이야”라고 대답했다. ‘이상한’이라는 말이 가슴에 턱 걸렸다. ‘이상한’이 ‘수상한’이 되거나 ‘비정상적인’ ‘위험한’ ‘나쁜’ 등으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땅한 말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차별을 고민하다 보니 익숙한 단어 하나에서도 자꾸 걸려 넘어지는데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무언가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할 때 그것은 잘못된 것이거나 싫은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미친×’가 왜 욕설이 되었겠는가. 에이즈가 들어오면 또 어려워진다. 에이즈가 이름도 못 얻은 때, 원인을 모른 채 죽어간 남성들 중 동성애자가 많았다는 이유로 에이즈는 ‘동성애자의 병’이 되어버렸다. 동성애가 정신병이라는 이야기는 대놓고 못하지만 동성애자들을 어여삐 여겨 구원해주시려는 분들은 이걸 잘도 이용한다. “…을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 책임져라!” 이 찬란한 억지. 동성애자라서 에이즈에 걸리는 게 아니라는 상식을 설명하는 일은 쉽다. 어려운 건 “아니에요”라는 부인 안에 조심스레 숨은 에이즈 혐오다. 내가 아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면서 게이인 친구들도 아니라고만 말하고 싶을까.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그래요. 나는 게이인데 HIV에 감염됐어요. 더 궁금하신 거라도…?(방긋)”
단어 하나에도 끙끙 앓지만, 편견은 단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차별은 편견만의 문제가 아니다. 말을 휘두르는 뿌리 깊은 오해와 감정의 뒤엉킴, 그걸 다지는 구조의 문제가 단어의 사용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물론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이라는 뜻을 닭 계(鷄) 자에 담은 ‘계간’과 같은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꾼 것처럼 ‘계간’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버리는 과정은 사회의 차별 감수성을 조금은 북돋을 것이다. 여전히 살구색이 아닌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것처럼, 사내끼리의 성교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이때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애써야 할 헌법재판소가 짠 하고 나타나더니 아예 쐐기를 박았다. 지난 3월31일 헌법재판소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계간 기타 추행”을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마치 남성 간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인 양 ‘추행’을 들이밀며, 객관적으로 근거 없고 차별적인 ‘일반인의 혐오감’을 승인해버렸다.
‘미친’이라는 표현이 너무 불편해졌지만, 이쯤 되면 한 번은 써도 되지 않을까? 헌법재판소가 미쳤다! 이제는 친구가 된 몇 년 전의 그, 그리고 차별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치게 하지 마라.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매우 괴로워’해야 할 것은 헌법재판소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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