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6일 영국의 존 거머 농림부 장관은 네 살배기 딸과 함께 TV에 출연해 영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는 장면을 연출했다.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6년 뒤 영국 정부는 정반대의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1996년 3월20일 스티븐 도렐 보건부 장관이 의회에서 10명의 젊은이에게 치명적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이 나타났으며, 광우병에 걸려 발생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영국에서 광우병은 1986년 11월 처음 보고됐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인간 전염은 가능성이 매우 낮고, 광우병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오판을 인정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그 결과 소 18만여 마리가 감염됐고, 162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숨졌다.
아직도 광우병은 그 원인 물질이나 발병 인자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모든 동물에서 정상적으로 발견되는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변형돼 광우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가설 수준이다. 치료약도 나오지 않았다.
질병의 원인이나 그 영향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것이 광우병뿐일까? 유전자변형농산물(GMO·Genetic Modified Organism)은 어떨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누리집에서 GMO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벌어진 안전성 논란에 대한 설명과 그 검토 결과도 곁들인다. 예를 들어 논란의 사례로 인도의 한 비정부기구(NGO)가 2006년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에서 GMO 면화를 먹은 양과 염소가 죽었는데 그 원인으로 GMO 면화를 지목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인도 정부기관인 유전공학승인위원회(Genetic Engineering Approval Committee)는 자체 검토 뒤 이 NGO의 보고서 내용이 과장됐고, 과학적 사실이 아닌 소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반박했다고 소개한다. 안전성 논란이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빈약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식약청의 해명과 별개로 GMO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수입콩보다 유기농 재래콩으로 만든 두부를 더 비싼 값에 기꺼이 사는 시민들을 보라.
유전자조작이라는 새 기술로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 종자를 만들어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새 위험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강력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를 ‘위험사회’(Risk Society)로 규정했다. 위험사회란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 기존 위험을 줄이거나 해소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새 위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 사례에는 광우병, GMO와 함께 원자력도 포함된다. 원자력을 이용해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찬사도 있는 반면, 편해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스리마일·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런 위험인식의 강력한 증거다. 그 위험은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광범하고 무차별적이다. 그 위험은 현대 과학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다.
‘정상사고’, 사소한 문제로 불거지는 대재앙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이 규모 8.0의 지진에 견딜 수 있고 전투기가 와서 부딪쳐도 문제가 없도록 지어졌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 원전이 규모 6.5의 지진, 0.2g의 지반 가속도(지진으로 실제 건물이 받는 힘)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한다. 규모 6.5의 지진이 원전 지반 아래서 발생하더라도, 원자로는 물론 수많은 배관이 파손되지 않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원전 참사에서 알 수 있듯, 그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대재앙 앞에 속수무책이다.
더 큰 문제는 원전 이상이 예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원전 역사상 첫 대형 사고로 기록된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지진이나 쓰나미 등 예상치 못한 재난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작은 문제’가 5가지 이상 겹치며 일어났다.
1979년 3월28일 발생한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냉각수를 거르는 필터가 막힌 데서 비롯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터가 막히고 습기가 공조 시스템으로 새어 들어가 2개 밸브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냉각수가 차단되자 문제가 커졌다. 발전소에는 이런 상황에 대비한 비상 냉각 시스템이 있었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비상 냉각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밸브가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밸브가 닫혔음을 알리는 표시등이 그 위에 있던 스위치에 달린 수리 기록표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도 세 번째 안전장치인 압력조절밸브가 작동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압력조절밸브는 고장나 있었다. 닫혔어야 할 압력조절밸브는 계속 열려 있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계기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원자로가 융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매우 심각한 실수나 나쁜 결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상당한 양의 방사능 누출은 피하지 못했다. 이 사고로 원자로는 사용 불능이 되고, 10억달러 남짓한 경제 손실을 입었다.
이런 재난을 예일대학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라고 불렀다. 그는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은 모든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없는 수천 가지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복잡성을 고려할 때 사소한 문제의 연속이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을 회피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세금으로 원전 안정성만 홍보하는 정부원전의 위험은 또 있다. 방사성 폐기물이다. 원전을 가동해서 나오는 방사능에 노출되거나 오염된 물질인 방사성 폐기물은 그 세기에 따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나뉜다. 지난해 12월25일 경북 경주 방폐장에 반입된 것은 중·저준위 방사선 폐기물이다. 주로 방사선 구역에서 작업할 때 입은 작업복, 장갑, 덧신, 그리고 청소에 사용된 걸레나 비닐주머니 및 이것들을 소각한 뒤 남은 재 등이다. 가장 오랜 반감기(방사능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기간)가 30년이다. 일반 폐기물이 되기까지는 300년가량이 걸린다. 그 기간엔 밀폐된 장소에서 철저히 관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원자력발전 뒤 남은 사용 후 연료와 재처리(재활용)하고 남는 부산물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아직도 안전한 처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하나인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짧게는 14년, 길게는 37만3천 년에 이른다. 이번 일본 원전 참사에서 발견된 플루토늄 3종류 가운데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239는 반감기가 2만4100년이다. 결국 원전 수명으로 평가되는 30년간 이용하자고, 짧게는 수만 년에서 길게는 수십만 년에 걸쳐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폐기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현 세대에서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그 끝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미래 세대는 위험과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원전의 위험성에도 국민 대다수는 원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조사 결과가 많다. 지난해 12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벌인 국민인식 조사 결과 91%가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정부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을 비롯해 지식경제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통해 원전의 안전성만을 홍보하는 상황에서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에너지 가운데 유일하게 홍보 전담 기구가 있는 원전을 진정으로 잘 알리려면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이미지 광고가 아니라, 방사능 재해시 대피법 등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세금을 들여 원전의 우수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론조사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1992년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을 세워 원전을 알리고 있다. 연간 120억원의 사업비는 국민이 낸 전기요금에서 3.7%를 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충당된다. 그 돈은 다시 TV 광고는 물론 백일장, 교사연수 지원 등 홍보 활동에 쓰인다.
‘저신뢰 사회’ 한국, 투명한 정보 더욱 중요더욱이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원전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참여할 틈이 없다. 지식경제부는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원전의 연구·개발과 안전규제를 맡는다. 안전점검은 교과부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담당한다. 정부는 일본 원전 참사 발생 이후에도 기존 정책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18일 “우리나라도 원전(의 안전성)을 일제히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안전성 측면만을 강조했다. 정부·여당은 오는 7월 교과부의 원자력안전국을 떼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립해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 기구로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을 위해서는 진흥과 규제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영국의 광우병 사례는 원전의 위험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남긴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2000년부터 2년간 대응 실패 원인을 파악했다. 그 결과 정부 당국자들은 ‘위험하다는 증거의 미발견’(no evidence of risk)과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evidence of no or little risk)를 구별하지 못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충분한 지식이 없었으며, 과학자들을 비공개로 만나 전문가의 조언 가운데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채택했다고 밝혔다. 또 광우병의 인간 전염 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난 뒤에야 관련 데이터를 국민에게 공개했는데, 그때는 근거 없는 고함들이 의견과 정책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차지해버린 뒤였다고 아쉬워했다. 이를 막으려면 △위험의 존재와 가능성에 대한 투명한 공개 및 전문가들의 철저한 상호 평가가 이뤄진 연구 결과 발표 △과학적 논의를 위한 기관을 정책 결정 테이블에서 독립시킨 뒤 공개 논의 결과를 정책 결정자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 직접 보고할 것 등을 제안했다. 영국 정부의 이런 뒤늦은 반성과 권고는 현재의 원전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아울러 ‘사전 예방 원칙’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기술이 발달했지만 위험의 불확실성과 폭발력은 그보다 더 커진 위험사회에 대비하려는 지침이다. 원전 사고처럼 한 번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그 범위도 순식간에 지구적으로 확산될 위험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쇠고기 수입 사태와 천안함 침몰 사건이 보여주듯이, 정부의 공식 설명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같은 ‘저신뢰 사회’에서는 사전 예방 원칙이 더욱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은 “과학자는 통제된 조건인 실험실 안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판단하지만, 과학자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점점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방치할지, 어느 수준까지 위험을 감수할지,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등을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원전은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낳아 원칙적으로는 반대하지만, 우선은 정부가 원전의 위험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느 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많은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참고 문헌: (김영사), (한국행정연구원), (사이언스북스), (한국공학교육학회 제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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