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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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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차려의 재구성

“머리 박아” “깍지 끼고 엎드려” “윽”…

한양대 음대 1·2학년 대상 폭력적 상견례 교육, 저항 없이 이어지는 악습 현장 취재
등록 2011-03-24 10:16 수정 2020-05-03 04:26

“환자가 있어요.” 전화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3월15일 밤 10시께 한양대 서울캠퍼스 음악대학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font color="#C21A8D">#2시간 전,</font> 3월15일 밤 8시께

“손들어봐. 힘들다는 사람…, 없는 거야?”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음악대학 5층 대형 강의실에 여학생 20여 명에 남학생 20여 명, 총 50여 명의 학생들은 부동자세로 서 있다. 성악과 1·2학년 학생들이다. 선후배 사이에 진행할 ‘상견례’를 연습하는 자리였다. 11학번에서 2000년대 초반 학번 복학생까지 학부생들이 참여하는 이들의 상견례는 결혼 전 만남처럼 한가하게 웃으며 각자 소개를 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3월 초에 2주 동안 진행되는 상견례 연습을 성악과 학생들은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로 기억했다. 이른바 ‘한양대 음대 성악과 패밀리’로 입적하는 순간이었고, 그만한 격식을 갖춰야 했다. 수십 년 된 그들만의 전통이었다. 격식이란 다른 게 아니었다. 학번, 이름, 고교 졸업연도와 고교 이름, 사사하게 되는 교수의 이름을 순서대로, ‘군대식’으로 관등성명을 외치는 것처럼 말해야 했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2주의 연습기간 동안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이 한 문장을 제대로 말하기 위해 5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실제 상견례 본행사는 2주차 마지막 금요일에 열린다. 그리고 그때까지 얼차려가 가해진다.





» 지난 3월14일 한양대 음악대학 1학년생들이 ‘상견례’ 연습을 하기 위해 음악대학 안 콘서트홀에 모여 있다. “11학번, 소프라노, 2011년 ××예고 졸업, △△△ 교수님께 사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한 문장을 연습하며 자리를 옮겨 얼차려를 받았다. 한겨레21 하어영

» 지난 3월14일 한양대 음악대학 1학년생들이 ‘상견례’ 연습을 하기 위해 음악대학 안 콘서트홀에 모여 있다. “11학번, 소프라노, 2011년 ××예고 졸업, △△△ 교수님께 사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한 문장을 연습하며 자리를 옮겨 얼차려를 받았다. 한겨레21 하어영

“아픈 사람 미리미리 말해라. 괜히 참았다가….”

말을 맺지도 않은 채 선배는 조용히 뱉었다. “남자, 박아.” 두두두둑. 맨머리로 강의실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머리를 땅에 박고 손은 뒷짐을 지는 ‘원산폭격’이었다. “일어서.” “너 왜 혼자 늦게 박아. 어디서 이빨이 보여? 웃기냐?” 학생회장을 포함해 선배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학생들 사이로 퍼졌다. 제각각 얼차려를 주기 시작했다. “다들 깍지 끼고 엎드려.”

5분여가 흘렀다.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여학생들은 원산폭격을 하지 않았다. 부동자세로 계속 서 있다. 여학생 중 한 명은 사시나무 떨듯 떤다. 다시 교육이 시작됐다.

“11학번, 바리톤, ○○○….” 일어선 남학생이 연습을 시작했다. “박아!”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11학번, 소프라노 △△△, 2011년 ××예고 졸업, □□□ 교수님께 사사하게 되었습니다!” “밤이니까 목소리는 작게, 대신 절도 있게”라는 선배의 말에 “예!”라고 군인처럼 답했다. 목소리는 떨렸다. “11학번 소프라노….” “박아!” 여학생은 움찔했다. 하지만 여학생의 실수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여학생 본인이 아닌 뒷줄의 같은 학번 동기 남학생이었다. 여학생을 뒤돌게 해 그 장면을 목격하도록 했다. 여학생은 미안하고 난감하지만 무서워 움직이지 못했다. 정작 눈길을 줄 수도 없었다. 눈은 15도 위만 봐야 했다. “여자! 딴 데 쳐다본 사람 손! 내가 찾아낸다. 눈깔 돌리지 마라.” 질타는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폭력의 형태나 기준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흘렀다. 부동자세로 있던 여학생들도 결국 본격적으로 얼차려의 대상이 됐다. “여자, 어깨동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30회,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는다.” 군대의 유격장에서나 들릴 법한 지시였다. 얼차려를 받는 여학생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서른”이 튀어나왔다. 어쩔줄 모르는 여학생이 “죄송하다”고 말했고 얼차려는 계속됐다.

신음과 괴성으로 뒤섞인 20여 분이 흘렀다. 갑자기 한 남학생이 “디스크가 있다”며 나섰다. 주눅이 들었지만 괴로움이 더 커 보였다. “진심이에요?” “진심입니다.” 늦깎이로 새내기가 된 남학생은 얼차려를 주는 선배와 나이가 동갑이었다. “×발, 졸라 쪽팔린 줄 알아야 해요. 꼬면 말 까고. 뭐야. 이런 게 분위기 흐리는 거예요.” 결국 열외는 없었다. 얼차려는 계속됐다.

휴식 시간도 있었다. 얼차려 2시간 만이었다. 닫혔던 창문의 커튼이 열렸다. 토해낸 숨들로 창에는 이미 뿌옇게 김이 서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픈 사람 거수. (손을 든 학생을 향해) 너야? 네가 착각하고 있는데 열외하는 게 다가 아니야. 우리가 (상견례 연습)하는 목적이 동기랑 같이 하는 거다. 아픈 거 자랑 아니다. 긴장해라.” 아픈 사람을 찾는 것은 이미 의미 없는 요식행위였다.

다시 시작된 자기소개, 그리고 이어지는 얼차려. 갑자기 “윽” 하는 비명이 들렸다. 원산폭격을 하던 남학생 한 명이 고꾸라졌다. 시선이 쏠렸다. “다들 눈 감아!”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쓰러진 학생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소리는 잊히지 않는다. “윽, 아….” 비명은 계속됐다. 밤 10시가 가까워지면서 입학연도를 의미하는 학번의 서열에 따라 “07학번 엉망”이라고 꾸짖고 자리를 비웠다. 이어 07학번은 08학번을, 그리고 그 아래로 순차적으로 질타가 이어졌다. 얼차려 폭력의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열화였다. 그사이 쓰러진 남학생은 계속 방치돼 있었다. 결국 몇 명의 부축을 받아 실려나갔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10시가 조금 넘는 시각, 얼차려는 끝났다. 총 3시간을 꼬박 채웠다. 하나둘 음악대학을 나섰다. 기자를 만난 일부 신입생들은 선배로 착각했는지 “안녕하십니까” 외치며 90도로 인사를 했다. 음대를 100m 정도 벗어나자 울먹이던 여학생은 친구의 손을 잡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일부는 기다리던 이성 친구의 팔짱을 끼고, 일부는 입학 선물로 받은 듯한 새 준중형차를 타고 교문을 나섰다.

<font color="#C21A8D">#3시간 전,</font> 3월15일 저녁 7시께

박수를 친다. 네 박자다. “가운데로 걸어나올 때, 그리고 자기소개를 할 때 이렇게 딱딱딱딱 박자에 맞춰서 하란 말이에요.”

그런데 얼차려를 주는 선배의 교육내용은 제각각이었다. 박자를 맞추는 박수도, 목소리를 내는 톤도 제각각으로 가르친다. 이 짓을 왜 할까? 그것은 신입생들이 더 잘 안다. “인사를 잘하는 것 말고 다른 뜻이 있겠어요?”

그 시간 동안만 억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견례 기간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억압은 상존한다. 거기에서 일탈하려 하면 어김없이 얼차려가 주어졌다. “머리는 검은색 하라고 말 안 했어요?” “죄송합니다.” “누가 스키니 입고 오래? 다음부터는 추리닝 입고 와!” “죄송합니다!” “목걸이 빼!” “죄송합니다!” 긴 머리는 뒤로 넘겨 묶어야 하고, 귀걸이도 당연히 안 된다. 주로 군대를 다녀온 서너 살 많은 고학번들이 얼차려를 맡았다. 물론 또래 여학생도 함께 얼차려를 줬다. 3월은 피해자였던 가해자,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피해자에게 잔인한 봄이다.

<font color="#C21A8D">#6일 전,</font> 3월10일

11학번 새내기들이 콘서트홀에 모였다. 10학번들도 함께였다. 학생회장이 앞에 나섰다. 상견례 준비가 다음주부터 있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학과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11학번들은 놀랐다. 비공식적 행사인 줄 알았던 상견례를 교수에게 말하고 허락까지 받은 것이다. 매해 거르지 않았다는 이 행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견례 준비라고 하지만 그것이 얼차려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 지난 3월14일부터 상견례 연습이 진행된 한양대 서울캠퍼스 음악대학 제1음악관. 한양대 홈페이지

» 지난 3월14일부터 상견례 연습이 진행된 한양대 서울캠퍼스 음악대학 제1음악관. 한양대 홈페이지

<font color="#C21A8D">#일주일 전,</font> 3월8일

강의 중 한 겸임교수가 김인혜 서울대 교수 얘기를 꺼냈다. “상견례 연습시키는 것,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외부(서울대)에서 안 좋은 일도 있었고,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1·2학년들은 침묵했다. 얼차려를 주는 입장인 3·4학년들은 답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상견례를 부정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악습은 없어지지 않았을까? 이름·학번 등 자신과 관련된 어느 것 하나도 공개하기를 두려워한 한 학생을 직접 만났다. 그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학생은 “불안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수부터 바로 윗학번 선배들까지 강고하게 이뤄진 선배 집단은 그 자체가 강력하고 압도적인 위협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비빌 언덕이기도 했다. “미래가 불안하지만 그래도 선배들이, 교수님들이 챙겨준다고 하니까. 그럴 것 같은 분위기니까.” 이 안에서 길들여진 폭력 구조는 오랜 기간 내면의 저항이 생겨날 가능성을 아예 막아버리는 틀이 됐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배운 지식과 경험은 이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은 지난 3월14일부터 취재를 통해 현장을 목격했다. 얼차려 현장의 주변에는 선배 학생들이 지키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피해 학생들은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내 개인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비밀을 보장했지만 말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상견례는 선후배 사이를 이어주는 전통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지난 3월18일 상견례 연습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받은 한양대 음악대학에서는 곧바로 경위 파악에 나섰다. 강해근 학장(관현악과)은 교수회의를 소집했다. 이어 성악과를 포함해 관현악과, 작곡과, 피아노과, 국악과 등의 학생회 간부, 학번 대표 등을 불러 진상을 파악했다.

정록기 교수(성악과 학과장)는 “서울대 음대 교수 사건이 아니라도 3년 전쯤 연세대 음대에서 얼차려가 문제돼 우리도 악습을 끊자고 학장님이 직접 나서서 강하게 지도해왔다”며 “그 이후 얼차려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학과장이 말한 그 시기, 그 이후에도 상견례 연습을 빙자한 얼차려는 계속되고 있었다. 정 교수가 이번 얼차려에 대해 보고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2주 전쯤 학생회장이 찾아와 상견례 연습 과정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얘기하기에 특별히 그런 일이 없도록 좋은 분위기로 하자고 말했다.”

정 교수는 “3년 전쯤 신고식이라는 이름을 상견례로 바꾸기도 했다”며 “솔직히 그 이전만 해도 군대식 얼차려가 남아 있었지만 이후에는 없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오랜 관습이라 (없애는 데) 난항이 있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장님이 지난해 상견례 자리에 직접 들어가셨던 것으로 안다. 나도 올해는 들어가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상견례 자리에 교수가 있었던 적은 없고, 지난해도 올해와 같은 얼차려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한양대 음악대학의 진상 조사와는 별개로 선후배 사이에서는 제보자 색출이 시작됐다. 3년 전 가 보도한 연세대 음대 사건과 양상이 똑같다. 제보자가 없다는 것을 취재진이 말해도 믿지 않는다. 반성과 쇄신은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불신으로 몰아넣고 있다. 실체 없는 제보자 찾기로 그들은 쇠진하고 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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