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는 ‘유빠’이자 ‘한빠’다 ”

문재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 인터뷰

“대선·총선에서 민주당과 참여당이 합당이나 연합, 최소한 후보 단일화하는 게 국민의 지엄한 명령”
등록 2011-02-24 02:05 수정 2020-05-02 19:26

날은 오락가락하는 부슬비와 짙은 안개 때문에 우중충했다.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4·27 재보선 불출마 선언을 한 다음날인 2월17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가장 꼿꼿한 표정으로 지킨 그이니, 재보선 문제로 불거진 ‘친노의 싸움’이라는 냉소와 비판에 그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차기 구도와 관련해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고, 이명박 정부를 놓고는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그의 얘기는 ‘이상한 상황을 정상화하려면 민주개혁 진영이 국민 눈높이에 걸맞은 모습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마치 우중충한 날씨를 밀어내려면 적당한 햇빛과 구름, 바람이 필요한 것처럼.

-김경수 국장의 불출마 선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김 국장이 논의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출마를 적극 권한 적도 없고, (나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적도 없다. 어떤 당으로 나가라거나 무소속으로 나가라는 얘기도 한 적이 없다. 나는 김 국장의 결단 이후 상황을 고민했다. 국민참여당 쪽도 출마를 선언하고 노력 중인 후보가 있다. (김 국장이 출마를 결심한다면) 그쪽과 원만하고 보기 좋은 단일화를 어떻게 할지 조율하고,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는 데 역할을 하려 했다. (이번 상황이) 자칫 친노 진영의 균열과 갈등으로 비칠 수 있는데 그건 언론의 선정성이고,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김 국장의 결정도 그것 때문에 한 양보다.



“유시민 전 장관은 야권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고 우수한 후보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 단일화 경쟁에서 유 전 장관이 이긴다면 민주 당은 흔쾌히 이런 부분을 메워줘야 한다.
반대로한 명숙 전 총 리나 손학 규 대표가 단일화에서 이긴다면 유 전 장관은 파트너로 뛸 수 있어야 한 다.”



-친노 진영의 균열은 이미 진행 중인 것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국민에게 수권정당으로서 믿음을 못 줘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래서 친노 정치인 일부는 민주당 안에서 쇄신·개혁을 이뤄 수권정당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는 민주당의 한계가 크기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고 봤고, 분명하고 원칙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국민참여당)을 만들었다. 그래서 갈라져 있는 거다.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가 우리 쪽의 가장 큰 과제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얘기하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통합된 친노 정당을 말하는 건가.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두 당의) 통합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합이 어렵다면 연정 형태의 연대·연합이 차선이다. 그것도 쉽지 않다면 경쟁을 통한 후보 단일화다. 이 가운데 적어도 후보 단일화는 꼭 이뤄야 한다는 건 지엄한 국민의 명령이다.

» 문재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 한겨레 류우종 기자

» 문재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 한겨레 류우종 기자

-왜 그래야 하나. 단순히 정권 교체를 위한 ‘방법’의 측면 말고 다른 이유가 있나.

=미국과 유럽은 조금 보수적인 정당과 조금 진보적인 정당이 번갈아 집권한다. 그에 따라 각각 성장과 복지를 좀더 중시하면서 양쪽이 균형 있게 발전한다. 그 간격이 7~8년이다. 우리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했으니, 지난 대선 땐 국민이 다른 선택을 한 거라고 봤다. 그런데 이 정부는 보수도 아니다. 사이비 보수다. 너무 못한다. 나라를 망치고 있다. 이렇게 못할 줄 몰랐다. 여유 있게 지켜볼 상황이 아닌 거다. 다음 대선에선 반드시 민주개혁 진영이 당선돼야만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세론’은 막강하고, 보수세력의 힘도 강고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 쪽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못한 편이다. (후보 단일화 등은) 단순히 ‘못한 지지율을 더하기 위해 합쳐야 한다’를 넘어서, 우리가 저쪽과 제대로 승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줄 수 있다. 그래야 국민도 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선거판이 재밌어지면서 필요한 가치 논쟁도 제대로 벌일 수 있다.

-민주당은 사람은 많지만 눈에 띄는 사람이 없고, 국민참여당은 규모는 작아도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라는 야권에서 가장 강력한 차기 후보가 있다. 이런 구도 때문에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으로 단일화 국면에서 단일화의 대의를 거부하거나 (후보 되기에) 연연할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유 전 장관은 야권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고 우수한 후보다. 친노 진영으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탁월한 후보로서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이나 가치를 가장 잘 계승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 당세도 약하고, 안티도많다. 단일화 경쟁에서 유 전 장관이 이긴다면 민주당은 흔쾌히 이런 부분을 메워줘야 한다. 반대로 민주당에도 좋은 후보가 많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한테 가진 유 전 장관의 폭발력은 선거 때 꼭 필요하다. 한명숙 전 총리나 손학규 대표가단일화에서 이긴다면 유 전 장관은 파트너로 뛸 수 있어야 한다.

-김경수 국장 출마와 관련해 국민참여당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최근 민주당의 ‘3+1’ 복지정책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한 석이 아쉬운 국민참여당과 유 원장의 초조함 탓으로 보이는데.

=필요한 국면에서 대동단결하는 거고, 평상시 경쟁은 자연스러운 거다. 더구나 정책 대결은 바람직하다. 그러면서 더 나은 정책을 향해 발전할 수 있는 거다.

-대체 노 전 대통령의 가치, 정신이 뭔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거다. 즉, ‘누구나 존엄한 세상’이다. 잘나고 돈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처지는 사람들, 덜 가진 사람과 장애인, 소수자가 함께 존엄한 세상이다. 그러려면 민주주의와 인권이 제대로 갖춰져야 하고,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게 복지다. 그런 가치관을 유 전 장관은 완전하게 계승할 뿐만 아니라 더 업그레이드된 비전을 갖고 있다고 본다.

-혹시 ‘유빠’인가

=(웃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한명숙 전 총리도 좋아한다. 그러면 ‘한빠’도 되는 건가. (좌중 폭소) 한 전 총리 얘기도 물어달라. 이러다 진짜 ‘유빠’ 되겠다. (좌중 대폭소) 한 전 총리는 (유 원장을 좋아하는 이유와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 2007년 대선때 노 전 대통령이 “차기 국가 지도자는 한 총리 같은 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 우리는 대결적이고 적대적인 정치 문화가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통합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가능하다면 야당 정치인과도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려 했다. 그런데소통을 시도하면 정치공작으로 오해받았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차세대 리더십과 민주주의의 방향은 통합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적합한 사람이) 한 전 총리만 한 분이 없다. 한 전 총리 이미지도 그렇고, 국민 눈높이로 봐도 대체로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하지 마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준 지침은 아니다. 당신의 소회다. 정치를 하는 동안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끝까지 추구했다.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 가치를 상당히 인정받고, 현실 정치에서 어느 정도 실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참여정부가 지향한 가치들이 깡그리 부정당할 뿐만 아니라 역사가 퇴행하는 걸 보면서 허망하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그런 표현이 나온 거다.

“다 음 대선에서 민주개혁 진영이 참여정부에서 출발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다.
참여정부가 잘한 부 분은 계승·발전해야 하지 만,민심을 붙 잡지 못한 부분은 제대로 성찰 하면서 극복해야 한다.
노무현 재단은 그런 성찰과 대안 때문에 중요하다.”

또 하나는 정치 못잖게 시민·사회·문화 운동이 필요하다는 소회다. 노 전 대통령도 민주화운동을 하다 정치를 했는데, 정치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직을 그만둔 뒤 제도나 법이 바뀌면 금세 사회가 (과거로) 되돌아가는 걸 보면서 시민·사회·문화 운동이 더디게 보여도 사회를 바닥부터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하지 말라는 건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건) 각자 판단하는 거다.

개인적인 성취나 출세를 위해 쉽게 할 일이 아니라는 뜻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를 하면 너무 고통스러웠고, 가족과 주변에도 고통을 준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하려면) 고통까지 감수하면서 그 원칙을 지켜나가려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정부도 참여정부 때처럼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어떻게 보나.

=지금 개헌에 입댈 필요가 있나? 무시하면 될 것 같다. 별로 가치 없는 일이다. 우리까지 나서서 뭐라고 안 해도 저절로 저러다 말 일 같다. 이 정부가 이런 일에 대해 염치나 체면이 없다는 걸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개헌이) 될 리가 없다.

-혹시 청와대에서 개헌이든 다른 현안이든 따로 의견을 구하거나 연락을 취해온 적은 없나.

=그걸 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내가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거다. 국정에서 이념 지향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고, 근간은 쭉 이어진다. 참여정부 정책 가운데서도 대북정책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한 거였고, 교육정책도 김영삼 전 대통령 때 나온 5·31 교육개혁안을 다루는 거였다. ‘지향이 다르니 그 정부 때처럼 안 한다’ 이렇게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정부는 과거와는 무조건 반대로 가려는 이상한 강박을 갖고 있다. 용어 자체도 ‘균형’ 그런 말 안 쓰지 않나.

예를 들어 구제역도 정말 이렇게 무능할 수 있나 싶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안에 위기관리센터를 뒀다. 위기관리센터는 천안함 사태 같을 때만이 아니라 구제역 같은 전염병, 재난 상황도 파악해 컨트롤타워로 작동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매뉴얼을 따라가도록 하는 거다. 그런데 이걸 대폭 축소하고 직책도 낮췄다가 일 하나 터지면 늘리고 늘려서 드디어 참여정부 때와 같은 수준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 참여정부보다 더 잘하면 되지, 왜 부정하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집권 4년차를 맞은 이 정부에 충고를 한다면.

=역시 제일 큰 문제는 일방주의, 독선주의, 권위주의적인 행태다. 지금이라도 비판에 귀기울이고, 국민의 얘기를 듣고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중적 인기도 높고, 부산시장 출마 권유도 받았다. 차기 대선에 나서라는 얘기도 계속 나온다. 정말 끝까지 출마를 안 할 건가.

=넓게 보면 노무현 재단 활동도 정치적이고,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것은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다. 정치를 직업으로 할 경우 생각되는 어려움, 대통령이 말씀하신 고통을 이겨낼 자신감과 배짱, 결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게 없다. 논리 이전에 다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않나. 정치만 제일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구나 정치를 직업으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다음 대선에서 민주개혁 진영이 참여정부에서 출발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다. 승리하려면 참여정부를 딛고 넘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잘한 부분은 계승·발전해야 하지만, 민심을 붙잡지 못한 부분은 제대로 성찰하면서 극복하고 대안을 내놓고 더 잘할 수 있는 비전을 줘야 한다. 노무현 재단은 단지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성찰과 대안 때문에 중요하다. 그걸 잘하면 정치 발전과 대선 승리에 기여하는 거다. 저와 노무현 재단이 하고 있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니 많이 참여해달라.

김해=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