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국사에 대한 소련 교과서를 읽었을 때 한 가지 이미지가 뇌리에 새겨졌다. 성조기를 불태우면서 병역거부와 전쟁 반대를 선언하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활동가들의 이미지였다. 교과서는 물론 이들의 행동을 (사실 별 무리 없이) “미제 침략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의 넓어지는 반발”과 연결시켰지만, 필자에게는 ‘자기 국가’의 상징물을 태워버리는 장면 자체가 속 시원하게 보였다.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수 있으며, 전시에 ‘국민’에게 살인과 전사를 강제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근대국가에 이렇게 쿨하게 대들 수도 있다니, 보면 볼수록 속이 통쾌했다. 경직된 스탈린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행동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 사진이 더욱 보기 좋았을지 모른다.
국기에 대한 맹세 거부한 교사에게 중징계
국기의 과도한 신성화는 꼭 러시아나 스탈린주의 정치문화만의 특징도 아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계약의 일종으로 파악되는, 부르주아 혁명을 거친 자유주의형 국가들과 달리, 국가가 근대화의 주체가 된 세계체제 주변부와 준주변부의 상당수 사회에서는 개인이 국가에 ‘소속’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터키나 멕시코와 같은 나라에서도 ‘국기 모독’은 거의 독신(瀆神)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국가주의 전통이 강한 국가라 해도 반체제적 사상을 가진 개인이 국가 상징에 도전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최근 러시아에서는 공산당원이나 민족볼셰비키당 당원 등 급진주의자들이 러시아 국기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국가란 민중을 억압하는 적대세력일 뿐이니 그런 행동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한국의 근대화는 유형적으로 멕시코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국가 주도의 고속공업화형에 속하지만, 국기 같은 국가 주요 상징물들의 신성화 정도는 차라리 사우디아라비아나 북한에 더 가깝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급진적 계급주의자나 아나키스트, 반전평화주의자라 해도 공개적으로 태극기를 훼손하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급진적 사상이 1990년대 이후 대체로 해금됐지만, 국가의 ‘신성함’에 대한 행동적 거부는 지금도 금기다. 태극기 훼손은 그렇다 치고, 몇 년 전 ‘태극기에 대한 맹세’라는 전체주의적 의례를 거부한 이용석 교사는 보수 언론으로부터 마녀재판을 당해 3개월 정직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국기 불태우기식의 국가에 대한 적극적 도발은 물론이고, 국가 상징에 대한 경례 거부라는 ‘인간적 존엄성 지키기’ 차원의 저항마저 무자비하게 처벌받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물론 그렇게 될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한반도에서의 국가 유래는 현존하는 어느 구미국가보다 오래되고, 비록 전근대적 ‘백성’ 형태라 하더라도 국가적 소속감은 일찍부터 키워졌다. 거기에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탈식민지 주민들의 ‘되찾은 우리나라’에 대한 기대까지 생각하면 ‘우리 국가’를 끝내 완전히 상대화할 수 없는 사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국가는 처음부터 위력적으로 개개인의 일상에 개입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마구 행사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1959년에 당시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96%의 초등학교 취학률을 과시했으며, 학교에서 ‘국민화’ 과정을 거치는 모든 이들이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공산침략자들을 쳐부수자,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를 날리자”는 섬뜩한 내용의 ‘우리 맹세’를 달달 외워야 했다. 고등학교까지 갈 수 있는 아이들은 1950년대 말 약 20%에 달했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학도호국단 등에 소속돼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또 학력 수준과 무관하게 특권층 자녀와 요령 좋은 기피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성이 현역으로 복무하고 그 뒤 예비군으로 편성됐다.
의무교육제와 국민개병제로 형성된 60만 대군과 6만3천 명의 경찰,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에 비대화돼 23만 명에 달한 민간 공무원 등을 통해, 또한 반공영화 상영 등 문화 통제를 통해 국가는 각 개인의 세계관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그 정보 환경이나 활동의 폭 등을 쉽게 조절할 수 있었다. ‘안보’를 주된 역할로 하는, 극도로 군사화된 국가는 이처럼 비대화되고 만능화됐기에 국기를 불사르는 것은 그렇다 치고 평화·반전을 위해 목소리를 약간이라도 높이는 것조차 ‘반국가 활동’에 해당되고 엄벌에 처해지는 일이 돼버린다.
극소수 종교인만 해온 병역거부한국의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평화·반전 운동이란, 병역거부라는 가장 급진적인 개인 저항을 감행하는 극소수의 종교인(주로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하고서는 ‘반공·안보 국가가 정해준 범위 내에서의 조심스러운 문제제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마저 야만적 탄압에 부딪쳐 큰 희생을 낳곤 했다. 부단한 탄압 과정을 거치며 한국인은 국기 훼손이 상징하는 급진적 평화·반전 운동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오늘날의 ‘소심한 한국인’으로 순치돼갔던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종교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차원의 대중화된 평화운동의 시초는 조봉암(1898~1959)과 진보당부터다. 공산주의자였다가 사회민주주의자로 전향한 조봉암은 스탈린주의와 북한 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자신의 당을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유 진영’의 일부로 공고히 인식했음에도 그 ‘평화통일’ 이야기는 진보당 등록 취소와 조봉암 법살(法殺)의 핑계로 이용되고 말았다. 4·19 혁명 이후 역시 사회민주주의적 색채의 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이나 사회대중당, 혁신당 등이 남북한의 평화적 영세중립화식 통일을 들고 나왔는데, 5·16 쿠데타 이후 그 정당들은 탄압받아 와해하고 지도자들은 대다수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가 구축한 병영국가조봉암이나 통일사회당의 이동화(1907~90) 등 평화통일을 외쳤던 대한민국 초기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급진적 평화운동을 해본 것도 아니고 국가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옥고와 감시를 늘 감수해야 했다. 항시적 무력 대결을 존재 조건으로 했던 분단국가에서는 평화를 외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범죄였다.
1968년을 기점으로 박정희 체제가 전면적인 전국 병영화를 지향함에 따라 상황은 더 나빠졌다. 대학을 군대의 일종으로 만들어야 학생들의 저항을 원천 봉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정부는 1971년 1학기에 모든 대학생에게 전체 수업의 5분의 1에 해당되는 711시간의 교련교육을 강요하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고등학교에서도, 군대에 끌려가서도, 나중에 예비군에 편입되어서도 삼중·사중의 군사훈련에 시달려온 대학생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대학마다 교련 철폐 시위가 벌어지자 정권은 캠퍼스에 헬기로 최루탄을 투하하는 군사작전식 탄압과 5천여 명에 이르는 교련 수강 거부자의 병무청 신고 조치, 그리고 174명의 제적과 100여 명의 강제 입영 등 강경책으로 학생들을 압박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학생들이 아무리 정부의 군국주의 분위기 조성을 비판해도 병역거부와 같은 더 급진적인 투쟁을 꿈꿀 여유조차 없었다.
신군부 통치 말기인 1986년 주로 좌파민족주의적 성향의 대학생에 의해 반미와 통일운동 차원에서 전방입소 반대 투쟁이 전개돼 김세진·이재호 두 열사가 1986년 4월28일에 분신했지만, ‘애국자’임을 내세운 당시 학생들 스스로도 ‘국가 우선’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문제화하는 병역거부나 국가 상징 훼손 투쟁을 할 리는 없었다. 훼손하기는커녕 태극기를 몸에 감고 데모하는 게 당시의 통례였다. 정치적 이유로 인한 병역거부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가능해졌지만, 아직까지 ‘진보’ 안에서도 소수의 운동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국기 훼손, 여전히 불가능한 상상?국가기구의 비대화와 국가의 신성화는 대한민국 주민이 치르게 되는 국가 주도 초고속 성장의 대가 가운데 하나다. ‘나라’ 덕분에 잘살게 된 만큼, 또 그 ‘나라’에 의해 수십 년 동안 순치돼온 만큼 우리는 계급운동을 하거나 반전평화를 외쳐도 국가 자체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도전을 피한다. 그러나 국가가 ‘국방’의 선을 넘어 국제적 무기 수출 같은 ‘죽음의 장사’를 활성화하고 ‘나라를 지킬 우리 군’이 미군의 보조원 자격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상황에서는, ‘우리 국가’와 본격적 거리를 둬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반전 운동이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침략 방조 국가의 국기로 전락한 태극기를 불태우면서 침략전쟁을 규탄하는 장면을, 우리로서 상상조차 하기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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