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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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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변호사들, 다시 신림동으로 모여라?

변호사시험 ‘로스쿨 정원 대비 75% 합격안’에 숨은 함정…

5년 뒤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39%대로 떨어져 치열한 경쟁 예고
등록 2010-12-16 07:54 수정 2020-05-02 19:26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아수라장이다. 변호사시험 정원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 12월7일 “2012년 변호사시험의 합격자를 로스쿨 입학정원 대비 75% 이상으로 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법무부의 결정대로라면 2012년 봄 졸업하는 로스쿨 첫 신입생들(입학정원 2000명) 가운데 1500명의 합격자가 나온다. 입대·자퇴·휴학자 등을 제외한 현재 재학생 기준으로 보면, 300명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합격하는 셈이다. 언뜻 보면 적잖은 수다. 현재 1학년이 시험을 치르게 될 2013년은 변호사시험 정원이 결정돼 있지 않다. 그런데 전국 25개 로스쿨과 학생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 아닌 선발시험으로 시행되는 한, 로스쿨 교육은 파행을 면하기 힘들다는 게 주된 이유다.
 
다양한 실습과목 파행 우려

①천의봉씨는 “납치·폭행 당시 조폭 소굴에 있는 것 같았다”며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②홍아무개씨는 지난 11월30일 아침 의장라인에서 비정규직 모임을 갖던 중 폭행당했다. ③이진환씨와 함께 폭행당한 노아무개씨는 상처난 눈두덩이를 11바늘 꿰맸다.

①천의봉씨는 “납치·폭행 당시 조폭 소굴에 있는 것 같았다”며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②홍아무개씨는 지난 11월30일 아침 의장라인에서 비정규직 모임을 갖던 중 폭행당했다. ③이진환씨와 함께 폭행당한 노아무개씨는 상처난 눈두덩이를 11바늘 꿰맸다.

성균관대·충북대 등 일부 로스쿨은 기말고사 등 학사 일정을 거부하겠다고 밝혔고, 나머지 학교들도 총회 등을 거쳐 뜻을 모으기로 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응시인원 80~90%의 합격률이 보장되는 의사고시 같은 자격시험이다. ‘입학정원’과 ‘응시인원’의 차이는 해를 거듭하면 분명히 드러난다. ‘입학정원 대비 75%안’이 계속 시행되면 첫해에는 300명가량의 탈락자만 나오지만, 이듬해에는 이들이 다시 응시할 것이기 때문에 2300명이 응시하게 되고 이 가운데 800명의 탈락자가 나오게 된다. 5년만 지나면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39%대(응시인원 3800명, 탈락자 2300명)로 떨어진다. 그래서 입학정원이 아닌 응시인원을 기준으로 응시자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지금 1학년에겐 1500명도 안심할 수 없는 수이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법무부 관계자는 정원 발표 직후인 지난 12월9일 “‘입학정원 대비’라는 말은 2012년 시험에 한해서”라며 “학생들이 바라는 것처럼 2013년 이후에는 절대평가를 하는 순수 자격시험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스쿨 교수나 학생들은 이런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문제는 대한변협의 존재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은 대한변협 산하에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를 만들고 로스쿨의 교육·조직·운영·시설 등을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대한변협은 변호사시험의 정원 결정 과정에서도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애초 대한변협은 ‘정원 대비 50%’를 요구해왔다.

로스쿨과 학생들의 반발은 단지 변호사시험 탈락자 양산에 대한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로스쿨 학생협의회 대표인 김형주(41·제주대 로스쿨 1학년)씨는 “변호사 선발시험이 가져올 부작용은 로스쿨의 원래 취지를 망가뜨릴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로스쿨은 다양한 법조 인재 양성이라는 애초 취지에 맞게 학교별로 특성을 내세워 학생을 모집했다.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민·형사 법률뿐만 아니라 공익·인권·기업·국제통상 등 세부 분야 법률을 익혀 다양한 직역의 전문가로 길러낸다는 취지였다. 김씨는 “선발시험은 현재의 다양성을 고사시키고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한 고시학원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대는 국제투자·거래 분야 특성화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변호사시험의 필수과목이 아닌 투자 관련 법률이나 어학 과목의 수강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김씨는 지난 학기 ‘거주외국인 클리닉’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거주외국인 정착을 위해 지역 법조인·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조례안을 준비했다. 로스쿨이 지역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낸 작은 성과다. 김씨는 “로스쿨은 ‘돈스쿨’ ‘귀족학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실습을 하고 있었다”며 “변호사시험이 선발시험이 되면 이런 실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시험에는 꼭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 벌써 고시학원 연계 요구

전국 로스쿨의 실무교육 현황을 보면, 2009~2010년 2년 동안 서울 지역의 대형 로펌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문화가정 지원센터나 병원 등에서 실무수습이 진행됐다. 이전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없던 변화다. 하지만 벌써부터 일부 로스쿨의 학생들은 이번 겨울방학부터 서울 신림동 등 고시학원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학교 쪽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시험이 선발시험이 되면 지금까지 자리잡아 가던 실무수습이나 실습과목 등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지금까지 각 학교에서 실무수습을 진행한 것을 보면 로스쿨의 원래 취지대로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 시도가 보였는데, 이는 사법고시제도에서는 없던 현상”이라며 “하지만 선발시험이 도입되면 예전의 사법시험 때로 회귀해 변호사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통과하기 위한 경쟁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시험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 로스쿨이 모여 만든 협의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내놓은 ‘학사관리 강화방안’도 로스쿨 파행의 주된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유력하다. 협의회는 지난 12월1일 전체 정원 대비 최대 20%까지의 유급과 엄정한 상대평가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 정원을 최대한 늘려 잡도록 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75%안’에는 “유급제도 등 학사 관리가 충실히 이행된다면”이라는 전제가 내포돼 있다고 밝혔다.

유급제도를 앞둔 로스쿨 1학년생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남대 로스쿨 1학년인 박아무개(37)씨는 “이제 변호사 시험에 필요한 필수적인 법률을 빼면 누가 품이 많이 드는 과목을 선택하겠느냐”고 말했다.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5%, 10%, 심지어 20%까지 유급을 준다는 것은 학교를 생존 경쟁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특성화를 중심으로 한 전문교육은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부 로스쿨은 이미 변호사시험이 선발시험이 될 것을 예견해 변호사시험에 유리한 사법시험 1차 합격 경험자, 저연령자 등을 뽑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경향성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연세대 로스쿨에 합격한 이아무개(26)씨는 “‘다양한 법조 인재 양성’이라는 로스쿨 설립 취지만 보고 다른 직업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해 합격하는 사례는 이제 드물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합격자 사이에서 돈다”며 “법학과 출신이 아니라면 입학하기 전 변호사시험 과목인 민사법 등을 선행학습하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신림동 등 고시학원을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변호사시험을 이렇게 고시학원에서 준비해야 한다면 기존 사법시험보다 오히려 비용이 더 드는 고비용 제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법시험보다 더 고비용 제도 될 것”

지난 12월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김선수)은 “법무부 방침은 변호사시험을 순수 자격시험으로 운영하기로 한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정원제 시험방식을 철회하고 자격시험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1990년대부터 변호사 수가 300명에서 1천 명으로 늘어나면서 공익 법무를 하는 변호사도 늘고, 지역에서 일하는 변호사도 생겼다. 수가 늘어날수록 국민이 변호사의 서비스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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