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가문의 최철원 전 M&M 회장이 ‘맷값 폭행’으로 지난 12월8일 구속수감됐다. 노동자를 ‘노예’로 보는 관리자가 노동자를 때린다. 사회가 한 치도 용인할 수 없는 이유다. 공분이 식기도 전, 현대자동차가 ‘조폭 간부’ 논란을 점화했다. 울산공장 비정규직 점거파업 동안 관리자들에게 납치 및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노동자가 속출하면서다. 1공장 김아무개씨는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을 받았고, 노아무개씨는 오른쪽 눈을 11바늘 꿰맸다.
관리직과 경비용역이 함께 폭행
“4~5명이 무릎을 꿇리고 안전화를 신은 상태로 머리를 찍었습니다. 주먹이며 발로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렸어요. 누군가 ‘××놈, 다리 한 개 부러지고 병원 한 달 더 있으면 되겠네’ ‘가서 쇠파이프, 각목 있으면 가져와’ 그러더라고요. 주먹으로 얼굴을 맞는데 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어요. 구타가 계속돼 머리를 팔로 감쌌습니다.”
천의봉(28)씨는 지난 12월7일 새벽을 끔찍하게 복기했다. 그러려면 2공장 최○○ 부장과 정○○·송○○ 과장의 얼굴을 떠올려야 했다. 다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설명하는 결결이 천씨는 파르르했다. ‘계급’이 다를 뿐, 한식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들이다.
그날 새벽 1시 천씨는 의장식당 일대에서 점거파업 지원 선전전을 했다. 야식 시간대였다. 정 과장이 “서로 자극하지 말자”며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새벽 2시께 공장 내 천씨가 속한 하청업체의 서클룸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관리직들이 들이닥쳤다. 천씨는 대기해 있던 스타렉스 차량에 강제로 실렸다. ‘2시간 악몽’의 시작이었다.
“휴대폰부터 뺏더라고요. 최 부장이 맨 먼저 주먹으로 왼쪽 얼굴을 때렸습니다. 정 과장이 ‘××놈아, 푸닥거리 한번 하고 가자’ 하면서 이동하던 차량을 세우더니, 또 여럿이 때렸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까 ‘고개 들어, ××놈아, 내 눈을 똑바로 봐’ 하면서 얼굴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공장 내 연수원 쪽으로 끌려가 무릎 꿇린 채 맞았다. 맞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2004년 11월25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되었을 뿐이다. 최근 4~5년 뒷바퀴를 달 수 있는 뼈대를 차체에 장착했다. 앞바퀴는 정규직 몫이다. 그의 손때가 묻어야 ‘산타페’가 달렸다. 비슷한 기간만큼 노조활동을 했고, 지난 10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대의원이 됐다. 맞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천씨는 2공장 본관 2층 한 휴게실로 끌려가 각서까지 써야 했다. 최 부장의 입을 따라 적었다. “비정규직 싸움이 끝날 때까지 불법 선동하지 않는다.” “산재 기간 중에 현대자동차 회사에 들어오지 않는다.” 천씨는 공장에서 미끄러져 발목 골절을 입은 상태로 12월23일까지 산재휴가인 것이다. ‘환자’는 각서에 오른쪽 엄지장을 새겼다.
“최 부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네가 알아듣게 얘기 좀 하라’며 나가니까, 정 과장의 협박이 이어졌어요. ‘사람 우습게 보이나? 빨대를 해골에 꽂아서 쪽 빨아버릴까?’ ‘내가 네 집을 아는데, 집에 같이 넣어서 불 질러버릴까?’ ‘이런 것(부상) 2주(전치)도 안 나오는데 괜히 신고하면 나는 하루만 귀찮으면 된다. 고소하려면 해라’ ‘네 사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안팎으로 300명이다. 밤길 조심해라’ 같은 말이 기억납니다.”
울산 경찰, 숱한 고소에도 무혐의 처분천씨는 새벽 4시께 풀려났다. 관리자들의 마지막 경고가 있었다. “오늘 휴대폰 꺼놓고 집구석에 박혀 있어라. 농성장에서 보이면 죽인다.” 천씨는 한마디로 “조폭의 소굴”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지회장 이상수)의 설명대로라면 ‘기습 테러’ 대상은 노조 간부나 적극 가담자다. 노조 쪽은 “이전에도 관리직과 함께 경비용역이 직접 노조원을 붙잡아 (업무 방해) 현행범으로 경찰에 인계하고, 주로 이 과정에서 폭행을 가했다”며 “다만 반복돼온 방식치고는 이번 경우 너무 막가는 것”이라고 성토했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조 이진환(32) 2공장 대표 등 5명은 지난 11월30일 오후 1시께 울산공장 본관식당 안쪽 입구에서 집단폭행당했다고 한다. 관리자·경비용역 30~40명이 둘러쌌다. 식당 앞에 대기 중인 버스에 끌려가 또 맞았다. 휴대전화가 압수됐다. “목을 뒤쪽에서 부여잡고 허리를 숙이게 해 집단적으로 얼굴·등·허리를 맨손, 안전화 신은 발로 맞았다.” 안전화엔 철판이 덧대 있다. 맨얼굴에 주먹질당한 노동자 2명은 안경이 박살났다. 이 대표는 “이렇게 맞다간 죽겠구나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장 안 성내삼거리에서 경찰에 인계되기까지 1시간가량 맞았다. 이 대표는 “경찰이 올 때쯤 버스 바닥이나 얼굴에 묻은 피를 닦게 했다”며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는 길인데, 어떻게 현행범이냐”고 소리쳤다.
허리를 다친 이 대표와 오아무개·심아무개씨는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노아무개씨(전치 3주)는 오른쪽 눈을 안쪽에서 4바늘, 밖에서 7바늘 꿰맸다. 김아무개씨(전치 4주 이상)는 허리엉치척추 가로돌기 골절을 진단받았다.
이들 모두 울산공장 관리자들을 고소했다. 지난 11월15일 이후 울산 동부·중부서에 고소된 사건만 모두 5건이다. 폭력·흉기상해·재물손괴 등의 혐의를 들어 고소인으로 나선 이는 70여 명에 이른다.
과거 노사 대립 때마다 관리자·경비용역에 의한 노동자 폭행은 문제가 됐고, 고소도 이뤄졌다. 하지만 울산 경찰 쪽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폭력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증거 부족이나 가해자 불특정이 주된 이유였다. 와중에 천의봉씨가 사실상 처음으로 ‘폭력 관리자’를 지목하고 있다.
현대차 홍보실은 “폭행 개념이 아니라 노사 대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관리직이 실명 위기에 처한 경우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의봉씨나 이진환 대표가 폭행당한 건에 대해선 “알아본 결과, 확인이 안 된다”고만 설명했다.
은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2공장 당사자들과 닿지 않았다. 최 부장에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남겼으나 12월9일 밤까지 회신주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조는 12월9일 1공장 점거농성을 풀었다. 지난 11월15일 울산 1공장 3층을 점거한 지 25일째의 결정이다. 현대차를 상대로 금속노조·현대차 지부와 함께 특별교섭에 나서기로 했다. △농성장 비정규직 고소고발·손해배상·치료비 해결 △농성자 고용 보장 △비정규직지회 지도부 사내에서의 신변 보장 △불법파견 교섭에 대한 대책 요구 등이 주요 의제다.
점거농성 풀었으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이상수 지회장은 “어제 농성장에 올라왔다 오늘 내려가는 것 같다.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착취와 탄압을 받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의 고생이었다”며 “우리 투쟁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갈 길은 멀고 멀어 보인다. 겨울은 겨우 시작됐다. “불법파견 2년 이상은 직접 고용”이라고 판시한 법 하나만 믿고 시작한 싸움이다. 그러나 현대차 공장 안은 무법지대였다.
전국 도처의 길바닥이 얼어붙은 12월9일, 천의봉씨는 “노사 간 어떤 타협이 이뤄지더라도, 나를 때린 공장 관리자들에 대한 고소는 절대 취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아들이라는 그는 아직도 경북 의성의 부모에게 병원에 입원한 얘길 하지 못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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