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지하철 2호선 행선안내게시기(지하철 운행 정보를 알려주는 광고판) 설치사업 등과 관련해 11월12일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지난 2월 이와 관련한 감사를 벌였으나, 김 전 사장이 6월 지방선거 때 서울 중구청장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면서 선거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한 여권 고위층의 지시로 감사 결과 처리를 늦췄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834호 줌인 ‘지하 세계의 비리, 감싸는 자 누구인가’ 참조).
감사원이 김 전 사장의 수사를 요청한 사안은 행선안내게시기 설치사업과 20개 역사 스크린도어 설치사업 두 가지다.
계약업체에 수백억원 특혜 몰아줘
감사 결과 김 전 사장은 행선안내게시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당초 예정가격인 495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250억원에 업체와 계약을 맺어 서울메트로에 250억원 가까운 손해를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2008년 6월 경쟁입찰로 실시된 1차 입찰에서 업체들이 예정가격에 못 미치는 450억원을 써내 유찰되자 재입찰 공고를 보류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9개월 뒤 진행된 2차 입찰에서 애초 업체들이 제시한 450억원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입찰 방식도 수의계약과 마찬가지인 ‘협상에 의한 입찰’로 바꿔 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 전 사장은 1차 입찰이 유찰된 뒤 곧바로 재입찰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계약 담당자들을 좌천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또 김 전 사장이 스크린도어 설치사업을 추진하면서,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업체에 부당하게 선급금과 물품대급을 지급하도록 지시해 서울메트로에 손해를 끼쳤다고 결론 내렸다. 행정안전부 예규인 ‘지방자치단체 계약체결·이행에 따른 선금 및 대가 지급요령’은 선급금을 20% 이상 지급한 뒤엔 추가 선금 지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김 전 사장은 이를 어기고 이미 두 차례에 걸쳐 44억원(20%)을 지급한 업체에 43억원을 더 주도록 지시한 것이다. 또한 설치와 납품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물품대금 11억원을 지급했다. 역시 행정안전부 예규인 ‘물품계약 일반조건’을 어긴 것이다. 공사를 맡은 업체가 2009년 7월 부도를 내면서 설치 공사는 공정률 20% 상태에서 중단됐다.
한편 서울메트로는 김 전 사장이 부당하게 지급한 금액을 포함해 선급금 120억여 원을 이 업체에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공정률 20%에 해당하는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100억여 원을 되돌려달라고 이 업체의 보증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보증사는 서울메트로가 선금 지급 규정을 어기고 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김 전 사장의 선급금 지급 지시 때문에 서울메트로가 100억여 원의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감사 결과에 근거해 김 전 사장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0월27일 서울메트로의 지하철 상가 임대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김 전 사장의 수사자료를 검찰에 통보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11월 초 상가 임대업체 ㅆ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ㅆ사는 서울메트로에서 임대받은 상가를 불법으로 재임대해주고 비싼 임대료를 받은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곳으로,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은 ㅆ사 대표의 차명계좌도 확보해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감싸는 자, 검찰도 흔들까김 전 사장의 업무상 배임 혐의는 검찰 수사에서 명확히 가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감사 결과에 대한 후속 조처가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혹시 감사원에 압력을 행사한 여권 고위층이 검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면, 이건 과대망상일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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