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국에 58곳이다. 초·중·고등 과정을 포함한다. 하지만 10월 현재 수치는 교육과학기술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학력인정시설의 현실, 또는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 수준과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교과부 실무자는 전북 전주의 A고등학교와 같은 무허가 학력인정시설의 전국 현황·실태, 교육 당국의 보조금 중단 또는 인가 취소 등 지도·감독 내역도 파악할 수 없거나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평생교육법 개정 뒤에도 규제·혜택 불분명
그간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의 문제가 없던 것도 아니다. 서울의 한 중·고등학교 교장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력을 가진 일반인에게 허위 졸업장을 판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2004년이었다.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800만원까지 받았다. 수업을 듣지 않은 56명에게 가짜 졸업장을 내줬다. 지난해 11월엔 부산의 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교장·행정실장이 학교 예산 1억원 이상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2007년 평생교육법이 개정된 뒤에는 법인만 학력인정시설을 설립할 수 있다. 자격조건이 엄격해진 것이다. ‘초중등교육법’상의 학교와 동일한 수준의 공공성·책무성을 요구하고, 개인 소유 시설은 법인으로 전환을 유도해 그 폐단을 개선하고자 했다. 하지만 법 개정 이전에 인가받은 개인 소유 시설은 대개 법인화를 원치 않거나 여력이 없다.
개정법은 규제와 혜택이 명쾌하지도 않았다. 법 해석은 종종 ‘논란’으로 번졌다. 가령 법제처가 지난해 9월 “개인 소유의 학력인정시설은 (법인 시설처럼) 학급 증설을 할 수 없으며, 그를 위해서는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신 시설 확충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렸다. 학급 증설과 시설 확충의 경계조차도 모호하다.
이 때문에 여러 평생교육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 지방교육청 평생교육 실무자는 “개정 평생교육법엔 평생교육시설 진흥에 관한 내용만 새로 담겼을 뿐, 초중등교육법과 달리 이들을 어떻게 지도·감독할 수 있을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각 지역 교육감에게 해당 시설의 관리·감독 권한이 이양됐다는 입장만 내세운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격이 없는 학력인정시설이 인가 효력을 유지하는 것은 옹근 지방 교육청 책임이다. 인가·보조금 지급 등의 권한은 엄연히 지방 교육청에 있다. 윤여각 한국방송통신대 평생교육원장(사회교육학 교수)은 “교육청이 사설학원도 관리하는데, 법령이 미비해 사인의 학력인정시설을 제대로 감독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윤 교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지역사회가 반교육적 시설은 발붙이지 못하도록 공동체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학교시설의 ‘공익성과 책무성’에 대한 직접적 환기다.
전주 A고의 한 2학년생은 교사에게 맞은 뒤 자퇴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이의 뺨을 때렸다. “별로 안 남았으니 졸업장만 따라”는 것이다. 졸업장은 그들이 굴욕과 반인권을 감내하는 유일한 이유다.
소외층 교육 주력한 시설에 불똥 튈까 염려돼
학력인정시설은 서울이 16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10곳, 부산 9곳, 전북 7곳 순이다. 과거 성인문맹 교육 등에 주력한 시설도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학력인정시설로 인가받아왔다.
여러 시설과 교사들이 제 권리를 포기하며 소외층의 교육을 돕고 있다. 윤 교수는 “다른 학교와 대등한 수준에서 교육력을 인정받으려고 교육청의 지도·감독을 스스로 요청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A고 문제가 다른 학력인정시설 학생과 책임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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