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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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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천천히, 생활자를 중심으로

‘간세인형’ ‘순천사랑빵’ 등 전국에 확산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정부 지원은 고용 성과보다 자치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해야
등록 2010-10-14 02:00 수정 2020-05-02 19:26
9월9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범사업’ 출범식이 열렸다. 한겨레 김태형

9월9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범사업’ 출범식이 열렸다. 한겨레 김태형

너도나도 ‘커뮤니티 비즈니스’다. 학계와 시민사회 일부가 대안적 경제 모델의 하나로 주목하던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몇 년 사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십억~수백억원을 들이는 사업으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일자리도 수익도 지역이 누려

제주 올레엔 지난 4월 조랑말 모양의 마스코트 ‘간세인형’이 생겼다. 개설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올레길이었지만, 그동안 올레길을 상징할 만한 기념품은 마땅찮았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올레길을 아끼는 이들이 머리를 맞댔다.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조랑말을 귀엽게 단순화하고, 이름은 천천히 놀면서 쉬면서 올레길을 즐기라는 뜻으로 ‘게으름’의 제주 사투리인 ‘간세’로 지었다. 인형 원단은 제주에서 생기는 헌옷, 헌 천, 헌 액세서리로 충당해 환경적인 의미를 살렸다. 인형을 만드는 이도 지역 여성들로 구성된 ‘간세인형 공방조합’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혜택도, 남는 수익도 제주도가 누린다. 아직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12명이 전부지만, 앞으론 공방에서 인형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간세인형은 지난 9월 지식경제부가 ‘지역연고산업 육성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범사업에 선정됐다. 지경부는 앞으로 3년 동안 30억원을 들여 시범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경부는 예산을 대고 사업 전체를 총괄할 뿐 구체적인 진행은 민간조직인 건국대 산합협력단 소속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범사업단이 맡는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주민들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인데, 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려면 기존의 ‘행정적 관습’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에서도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에 관심을 기울인다. 전남 순천엔 ‘순천사랑빵’이 있다. 순천여성문화회관에서 제과제빵 프로그램을 수강한 주부들은 과정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만나 좋은 일을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씩 빵을 구워 경로당이나 청소년 가장 등에게 나눠줬다. 그러다 2008년 순천시가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원을 시작하면서 이들도 ‘사고’를 쳤다. ‘순천사랑빵’이란 브랜드로 빵을 만들어 팔아 주부들의 일자리도 만들고, 순천만 같은 관광지에서 주로 판매함으로써 기존 빵집에 가는 피해는 최소화했다. 빵, 쿠키, 케이크 등 이들이 만드는 제과제빵은 모두 우리밀을 사용했다. 수익금 가운데 40%는 봉사기금으로 모았다. 이런 아이디어에 순천시가 시설지원비 2천만원을 내줬다. 현재 이들은 지난 1년간 1억4천만원어치를 팔았고, 파트타임까지 합치면 2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공장 유치 방식으론 경제 살리지 못해

행정안전부도 지난 6월 “2011년까지 208억원을 투입해 232개 기초자치단체에 하나씩 ‘자립형 지역 공동체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응모한 지자체 사업 300여 개 가운데 10월8일 현재 116개가 선정됐다. 고용노동부도 ‘지역맞춤형 일자리 창출사업’을 통해 지자체별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농림수산식품부는 ‘신문화공간조성사업’으로 전국 6개 마을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의 고민은 예전처럼 대기업 유치와 공장 설립으로는 고령화된 농촌 경제를 활성화할 수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없으니 ‘뾰족수’를 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 지역 상황에 기반한 ‘마을 회사’는 이런 점에서 행정부에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다.

하지만 위험성도 존재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고용정책’으로만 접근하면 아예 그 목표조차 달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주민의 자치 능력이 향상돼야만 성공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범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김재현 건국대 교수(환경과학과)는 “정부든, 정부와 지역을 매개하며 주민들의 사업을 돕는 중간지원 조직이든 이 사업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생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공동체성을 키우는 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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