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난지도를 능가하는 집안에서 정신질환으로 의심되는 가족이 고립돼 살아간다는 얘기를 듣고 현장에 가보았다. 문은 백날 두드려봐야 열리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의 빌라 3층은 관찰조차 어려운 요새와 같았다. 딱 하나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동네 교회였다.
갑자기 돌변한 목사님 사모님
오래전부터 그 집과 교분이 있던 목사님 사모님은 열에 한 번꼴이나마 그 집 현관을 열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교회 3층의 다락방에서는 그 집의 사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모님을 찾아뵙고 협조를 구하니 마땅히 도울 것이며, 한시라도 빨리 그 가족 전체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야 한다고 열의를 불태우셨다. SBS에서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왈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경 권위를 훼손”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 다음날 사모님은 남편이 ‘사탄적 방송사’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했다며 난감해했다. 일면식 없는 PD의 프로그램 하나로 사탄의 졸개가 돼버린 처지가 어이없었지만, 그럼 그 가족은 대체 어쩌라 하시더냐 여쭈니 극히 고전적인 답이 돌아왔다. “기도하자시네요.” 아멘. 그런데 나는 의심스럽다. 기도의 끝절에 붙을 ‘예수’의 이름이 어색하지는 않으실까.
적어도 내가 아는 예수는 바다와 같이 마음이 넓은 분이다. 우리만이 선택받았다며 “사마리아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던 유대인들의 속좁음을 통렬하게 비웃으시며, 혈통과 신분과 차이의 경계를 넘어서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던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뒤 2천 년이 흘러, 그분의 종이라 자처하는 목사님들은 어찌 그리 마음이 실개천보다 좁으며 접시물보다 얕으신지!
자신의 아내가 구하고 싶어하던 가족에 대한 사회적 개입을 ‘주님의 이름으로’ 차단한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나, 종교와 언론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방송은 나갈 수 없다”고 으르대던 으리으리한 교회 목사님들을 내려다보면서 예수님은 대관절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하기야 “동남아 쓰나미 피해는 예수 믿지 않아 생긴 재앙”이라고 외쳤던 한국의 목사에 뒤질세라 “아이티 대지진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결과”라고 선언하는 미국의 목사가 등장한 마당이니 하늘에 계신 분의 가슴이야 숯덩이가 된 지 오래이겠지만, 별안간 혜성과 같이 등장한 한 목사님의 이름 앞에서 나는 그분께서 더 이상은 참지 않으사 세상을 불로 심판하지 않으실까 하는 두려움마저 일었다. 목사님의 존함은 ‘이’자 ‘근’자 ‘안’자이시다.
목사가 된 고문기술자아무리 20세기의 시간이 흘렀다 하나, 죄인에게 보다 큰 고통을 안기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여 뼈를 부수는 납덩이를 달고, 살을 찢는 갈고리를 드리우며, 그것도 모자라 마디마다 짐승의 뼈를 날카롭게 갈아 꽂았던 고문 기술자들을 과연 예수께서 잊으실 수 있겠는가. 온몸이 갈갈이 찢겨나가는 지옥 같은 아픔 앞에서 헤죽헤죽 웃으며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며 조롱하던 야수들을 어찌 기억에서 지우시겠는가 말이다. 그런 이의 후예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된 곡절인지 목사가 되었다. 주님의 종이 되었다.
일곱 번의 일곱 번도 용서하는 분이시니 그 품이 오죽 넉넉하시랴마는, 옷을 찢고 머리 풀어 눈물로 참회하기는커녕 나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으며 이제 그 진상을 밝히겠노라는 목사의 말 앞에서 과연 평정을 유지하실 수 있을까. 더더군다나 그 목사가 당신의 이름을 들먹여 진실을 운위할 때 그분이 분노를 잠재우실 수 있을까.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심히 무섭고 떨린다. 주여 그를 용서하소서.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김형민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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