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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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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9-11-24 07:42 수정 2020-05-02 19:25

1.
독일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독일 민주주의의 지원 함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단다. 군사용어가 차용됐지만, 곱씹어보면 참 예쁜 별명이다.

2.
독일에서 모나코 캐롤라인 공주의 사생활 사진을 파파라치식으로 보도한 언론매체가 소송을 당한 일이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언론의 역할이 여론 형성에 있다고 해서 단순한 오락 기사를 헌법상 보장된 언론 자유의 대상에서 제외해선 안 된다. 여론 형성은 오락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오락성 기사도 여론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사는 오로지 사실만 다룬 정보성 기사보다 더 지속적으로 여론 형성을 촉진하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결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언론의 본질에 대한 평가를 주목하려는 것이다. 점차 뉴스가 연성화돼간다. 연예뉴스가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래픽은 화려해지고 문체는 야들야들해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언론의 역할이 여론 형성에 있다”는 것이며, “여론 형성을 촉진하거나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게 언론의 가치 기준이라는 점이다.
언론의 시원을 생각해본다. 원시의 벌판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저 산 너머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그건 단지 그곳에 어떤 들꽃이 피었고 시내의 종알거림이 얼마나 다르냐는 호기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할, 혹은 위험에 빠뜨릴 요인이 그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정보를 믿음직하게 구해다주는 이를 칭찬했을 것이다.
근대의 언론은 17세기 영국의 선술집이나 커피하우스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허름한 차림의 여행자와 선원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다 세태를 한탄하거나 위정자들을 욕하다가 한켠에 놓인 노트에 그런 이야기들을 적었을 것이다. 일종의 공론이 형성되는 초기의 장이었다. 어쨌든 위정자들은 이런 현상을 반기지 않았을 터다. 이에 대항해 “진실을 말하는 건 반역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관습법은 “진실에 가까울수록 더 큰 반역죄”라고 했다. 진실일수록 위정자들에게는 더 큰 위험이 되기 때문이었다.()

3.
현 정부 들어 언론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공중파를 비롯한 방송사 장악과 조·중·동의 종합편성 채널 진출 길 닦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언론 지형에 한랭전선처럼 덮쳐오는 그림자는 비판적 독립언론들의 어깨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일간신문과 시사주간지 등 인쇄매체는 독자들의 눈에서 멀어지는 위기도 겹쳐 안고 있다. 한국리서치(HRC) 조사에서 종합일간지(상위 10개)의 합계 열독률은 2003년 52.3에서 2009년 40.8로 떨어졌고, 시사주간지(상위 9개)는 같은 기간 10에서 5.9로 낮아졌다.

연도별 주당 평균 발행부수 추이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도별 주당 평균 발행부수 추이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진보언론은 이제 안팎의 시련에 맞서 길 찾기에 나서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은 이 회색의 혼돈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으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자 한다.

지난 11월18일 은 실제 발행부수를 공개적으로 검증받는 한국ABC협회에 가입했다. 신고한 발행부수는 주당 6만9408부(2009년 7~9월 평균)다. 아울러 이 지면을 통해 창간 이후 의 발행부수 변화 추이를 공개한다(그래프 참조).

그래프에 보이는 곡선은 어찌 보면 참 에로틱하다. 한국의 독자 대중이 진보적 시사주간지에 보내온 애정의 곡선이기 때문이다. 창간 직후 급상승하던 곡선은 1990년대 말부터 급격히 낮아진다. 혹자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시기와 겹친다고 해석하고, 혹자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의 등장과 연관을 짓는다. 두 가지 모두 핵심과 닿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진보적 담론에 대한 수요의 변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애정의 곡선이 결코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미소이면서 단호한 표정 같기도 하다. 이 또한 핵심과 닿아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 뜻을 곱씹고 있다.

광고·판매 수입 비중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광고·판매 수입 비중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4.

전세계 언론시장의 현실은 권력, 그 가운데서도 자본권력에 의한 언론 장악이 나날이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거대 미디어그룹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판에 박은 자본의 논리를 뿌려대고 있는 미국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구조에서는 독립적인 여론 형성이라는 언론 본연의 구실이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는 진실이다. 미디어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낸 보도자료를 보면, 전국지 8곳, 경제지 5곳, 지역일간지 45곳, 스포츠신문 4곳, 영자신문 2곳을 분석한 결과 광고수익과 구독수익 비율이 76.3% 대 23.7%에 이르렀다. 광고주가 언론의 생존 열쇠를 쥐고 있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 은 광고수익과 판매수익의 비율을 30.8% 대 69.2%까지 낮췄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이 그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5.

오늘의 이 모든 고백은 밝아오는 내일을 맞기 위한 결의의 표현이다. 모든 기자들이 언론사 입사시험장에 들어설 때 가슴 뛰게 되새기는 꿈,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꿈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몸짓이다. 진보언론의 위기 속에서 진정 독립적인 비판언론으로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과 소통하기 위함이다.

시민으로서 그 사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그 사회를 빚어가는 데 참여하도록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면, 그런 언론을 만들어감으로써 그 사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그 사회를 빚어가는 데 참여하는 게 시민의 역할이 아닐까. 그 맞물림 속에서 은 진실만을 말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을 새삼 다짐한다. 그리고 처럼 예쁜 별명을 속삭여주는 이들을 기다릴 것이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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