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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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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의 ‘다중인격’

등록 2009-11-18 14:25 수정 2020-05-03 04:25

취재를 하면서 슬픔과 분노와 배신감이 뒤범벅이 되어 애꿎은 벽에 주먹질을 했던 경우는 적지 않았다. 아니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파동을 가장 극심하게 느끼게 만든 취재 대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할 것이다. 그것은 ‘교육계’다. 즉, 학교와 교육 관련 관청들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에게서 삶의 보람을 거두는 대다수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이리라. 사회 전체가 ‘바담풍’이라고 읽더라도 너희는 ‘바람풍’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시는 강직한 사표(師表)들께는 송구스런 맘 금할 길 없다. 그러나 안 된 일은, 응당 그러하리라 간직했던 믿음의 극적인 전복을 직업상 여러 번 목격했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다중인격’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교과부의 ‘다중인격’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정직 3개월과 파면의 기준

학교 앞에서 ‘사이코’라 불리며 놀림의 대상이 되는 지적장애 아주머니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학교에서 아주머니의 딸은 소문난 왕따였다. 쓰레받기에 담긴 먼지를 딸의 도시락에 쏟아붓는 등 떠올리기도 싫은 괴롭힘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담임 교사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왕따 아닙니다.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예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항의하러 간 아버지에게는 심드렁하게 전학을 권유했다. 어디 친척집 없냐고. 당신 딸이 문제라고. 이 선생님에게 보람이란 자라나는 새싹들을 바라봄이 아니라 야금야금 늘어가는 교원 연금 액수가 아니었을까.

뉘 없는 쌀이 어디 있으랴. 극히 일부의 예로서 전체를 매도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하지만 교사나 교장 개개인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정책을 좌우하고 일선 학교를 지휘·감독한다는 조직에서 선보이는 예상 밖, 기대 이하의 행태와 마주할 때 나는 할 말과 남아 있던 믿음을 동시에 잃곤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커닝을 했다고 해서 100대의 매질을 퍼부은 여교사가 있었다(아, 100대는 과장이고 80대였다고 한다). 체력적으로 버거웠는지 쉬는 시간마다 스무 대씩 ‘야구하듯 풀스윙으로’ 때렸다. 얼마 뒤 또 한 여자 아이에게 심각한 매질을 퍼부었고 그 피멍 든 볼기짝이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해당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내린 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다. 아이를 성추행한 교사도 정직 3개월이었으니 대단한 중징계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그 바로 한 달 뒤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권리를 알려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선생님들은 정직도, 해임도 아닌 파면을 당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교육기관이 제시하는 도덕적 기준과 잣대란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가. 아이를 성추행한 자도 석 달만 마늘과 쑥을 먹고 견디면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현신해 다른 학교 교단에 서는 판에, 아이들의 권리를 밝힌 교사들에게는 사형선고 같은 파면장이 기탄 없이 내던져지다니.

얼마 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를 않겠다(엄밀히 말하면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교육과학기술부는 그야말로 펄펄 뛰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도 징계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며 직무이행 명령은 물론 고발까지 하겠다며 세우는 서슬은 시퍼렇다 못해 시커멀 정도였다.

성마름과 여유로움의 공존

그러나 선거법상 공개가 명시된 재산을 누락시킨 혐의로 고발된 서울시교육감이 대법원 최종 유죄판결로 퇴장하기까지, 교육부가 무슨 조처를 취했다는 얘기는 꿈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누구의 직무유기인가.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는데도 어서 징계하라고 으르대는 성마름과, 3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꿈쩍도 않는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교과부의 ‘다중인격’에 당혹감을 금하기 어려운 가운데, 진하게 우러나는 질문 하나가 있다. 대관절 교과부는 무슨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형을 길러내고 싶기에 이런 산뜻한 모범을 보여주시는 것일까

김형민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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