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엄마가 아이를 부른다. 엄마는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엄마 품에 달려와 안긴다. 아이는 엄마의 가슴을 만지면서 자신의 성기를 잡아당긴다. 그런데 아이가 작은 쾌감을 느끼면서 엄마의 목에 팔을 두르려고 할 때, 엄마는 받아주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 아이가 엄마의 다른 쪽 가슴을 마저 쥐려고 하면, 엄마는 아이의 뒷머리를 리드미컬하게 쓰다듬는다. 만족하지 못한 아이가 짜증을 내면 엄마는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본다. 만일 아이가 엄마를 때리면, 엄마는 화내는 모습 없이 공격을 가볍게 걷어낸다. 이런 상호 작용이 몇 번 반복되면, 아이는 마침내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면서 스스로 놀게 된다.
절정의 추구를 회피하다
이는 1940년경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에서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는 인류학자가 관찰한 것이다. 베이트슨은 발리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발리의 생활양식이 서양 문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성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에서도, 절정(climax)에 점층적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문화 형태다. 반면 위의 예에서, 아이는 절정에 이르기를 원하지만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제지당한다. 그래도 아이는 마침내 다른 놀이에서 더 큰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엄마의 행동이 ‘신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돼야 하겠다.) 베이트슨의 보고에 따르면, 발리에서는 이 일화처럼 생활 곳곳에서 절정의 추구를 회피하고 예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트슨은 이 대조를 꼭대기가 있는 산과 높고도 평평한 고원(高原)의 비유를 들어 분명히 했다. “아이가 발리의 삶에 보다 충만하게 적응함에 따라, 연속적인 강렬함의 고원이 꼭짓점(절정)을 대체한다.” 그러니까 발리의 문화양식은 마음과 신체가 고원 상태를 형성하도록 습관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이 짧게 왔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쾌감’이 아니라 길고 강렬하게 유지되는 ‘쾌활함’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은 외부의 쾌락적 자극을 장시간 유지시킨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습관을 통해 마음과 신체의 경향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에 맞게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주저 의 제목을 여기에서 가져왔다. 이 저서는 뾰족한 절정에 집착하게 하는 것들, 어느 하나의 존재에 고착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고발한다. 국가권력, 종교, 화폐, 정신분석학의 기표, 자아의 내면으로 회귀하는 것까지도. 기쁨의 고원 상태는 ‘많은’ 변용과 정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제도들과 맺는 ‘외적’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감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베이트슨은 자신의 책 제목을 라고 붙였다. 이 제목은 흥미롭다. 생태학은 원래 생물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학문인데, 인간의 마음에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생태학’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생태학의 모토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면, 마음의 생태학의 원리는 ‘지속 가능한 기쁨’이다.
마음의 생태학의 원리 ‘지속 가능한 기쁨’어떻게 높고 강렬한 고원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일반적인 원리를 말할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방법들을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막연하다고? 참고할 만한 텍스트는 많다. 우선 문학작품은 변용과 정서의 실험실이다. 문학은 새로운 삶의 요소들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면의 기록 또한 중요하다. 반 고흐의 편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세잔의 대담은 구체적인 실험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블로그는 동시대의 경험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블로거들은 당신의 실험 보고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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