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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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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남긴 ‘진보의 미래’

윤곽 드러난 노 전 대통령 유고집…
고인이 남긴 연구주제에 학자 25명가량 참여해 10월께 발간될 듯
등록 2009-07-21 13:38 수정 2020-05-03 04:25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고집의 윤곽이 드러났다. 책 제목은 ‘진보의 미래’가 유력하다.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라는 제목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책은 오는 10월 발간 예정이다.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25명 정도의 학자가 집필을 맡았다. 일반 시민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서를 지향한다는 계획이다. 전체 분량은 400여 쪽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40여 개 소주제들은 노 전 대통령의 질문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회고록 발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08년 7월1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의 자료를 빼돌렸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세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회고록 발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08년 7월1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의 자료를 빼돌렸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세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 입수한 ‘ 목차와 연구과제’ 자료를 보면, 책은 10개 장, 44개 소주제로 구분돼 있다. 연구 및 집필 책임을 맡은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8월 말께 초고가 마무리되면 순서 등을 세부 조정해야겠지만, 각 장과 소주제의 제목은 거의 확정적이며 필자 섭외도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각 소주제별로 200자 원고지 30~40매 분량의 짧은 글을 실을 예정이어서 10월 발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집필진의 판단이다.

40개가 넘는 소주제 항목이 일찌감치 정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썼던 ‘질문’들을 그대로 유고집의 목차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 6월7일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 노 전 대통령의 유고 두 편을 공개한 바 있다. 참여정부 보좌진 출신의 학자, 진보 진영 일부 학자, 측근 참모 등 30여 명만 가입할 수 있었던 비공개 온라인 연구카페에 생전의 노 전 대통령이 올렸던 글이다.

이 글들은 노 전 대통령이 3월16일과 20일에 직접 쓴 것으로 “진보와 보수, 진보의 나라와 보수의 나라, 또는 진보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잡아 “보수의 시대와 진보주의의 대응,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평가, 진보주의의 국가 전략, 인류의 미래와 진보주의 등”을 책에 담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은 연구 주제로 삼으려는 내용 수십 가지를 의문문의 형태로 제기했는데, 그 질문의 대부분을 이번 유고집에 그대로 담게 됐다.

초안이긴 하지만 유고집의 개략적 얼개를 보면 △보수 시대와 진보 시대 △보수의 나라, 진보의 나라 △진보주의의 대안과 전략 △진보주의의 미래 △시민의 역할 등 10개 질문을 독립적인 장으로 잡았다. 각 장에는 다시 3~5개의 소주제가 배치됐다.(표 참조)

<진보의 미래> 목차와 연구과제 초안

<진보의 미래> 목차와 연구과제 초안

이정우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질문’을 소주제의 제목으로 뽑고, 유고에 남겨진 고인의 단상과 생전의 관련 발언을 앞부분에 제시한 뒤, 각 집필자가 그 물음에 상세히 답하거나 해설하는 방식으로 책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실릴 대부분의 유고는 올 1∼3월에 노 전 대통령이 비공개 카페에 올린 내용으로 “짤막한 메모와 단상을 중심으로 애초 생각을 바꾸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구상과 메모에 기초해 만들어지는 책인 만큼,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는 방안도 내부 검토 중이다.

집필자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참여정부 당시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는 물론, 참여정부에 다소 비판적이었던 학자들도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 또는 집필에 관여하고 있는 참여정부 인사로는 총괄책임을 맡은 이정우 경북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를 비롯해 김수현 세종대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김창호 전 명지대 교수(전 청와대 국정홍보처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성경륭 한림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 있다. 반면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 등은 참여정부에 비판적이었거나 다소 거리를 뒀던 인물들이다.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미세한 차이는 처음부터 개의치 않았다. 필자들 가운데는 (참여정부를) 비판했던 분들이 꽤 있지만, 진보의 관점에서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함께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책 평가 등 이견까지 품는 쪽으로 정리

이와 관련해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을 기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고를 보면, 반성적·성찰적 요소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과연 진보적 정부였는지, 유럽형 제3의 길의 잣대에 비춰볼 때도 미진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고 있다. 바로 그런 성찰적 회고가 유고집 출간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참여정부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제기한 반성적·성찰적 지점에서 참여정부의 주역과 이에 비판적이었던 세력이 새로운 연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외에 두 권의 책도 조만간 발행될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 쪽은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진보주의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네티즌의 글을 모아 별도의 책을 만드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과 육성 기록을 모은 책도 낼 예정이다. 이정우 교수는 “아마도 올 하반기 중에 책 세 권이 잇따라 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 주무를 맡아, 민주정부 10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총서를 발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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