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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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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 불합격 68%가 미국산

수입 재개 1년 ‘눈물의 쇠고기’…
불합격 비중 압도적, 소비자는 외면, 협회 회장 업체까지 줄줄이 부도
등록 2009-06-23 05:02 수정 2020-05-02 19:25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지 딱 1년이 됐다. 광우병 위험성 보도 뒤 줄곧 매질당한 문화방송 〈PD수첩〉은 정정보도 판결을 받았고, 1주년을 기념하듯 제작진이 기소됐다. 청와대는 “광우병 방송이 총체적으로 조작됐다는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월별 검역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6월 이후 검역에서 불합격된 수입 쇠고기의 68%가 미국산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역을 통과 못한 189.4t 가운데, 미국산이 129t이다. 광우병, 관리체계 등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근거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6월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안 미국산 쇠고기 매장. 10분을 기다려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 소비가 급감하면서 여러 수입육 업체가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지난 6월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안 미국산 쇠고기 매장. 10분을 기다려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 소비가 급감하면서 여러 수입육 업체가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지난해 여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광우병 위험성이 큰 부위까지 수입한다며 국민은 분노했다. 버티던 정부는 지난해 6월19일 추가 협상으로 수입 조건을 최종 타결했다. 다음달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여당 정치인들까지 일제히 미국산 쇠고기를 ‘홍보’하고 나섰다. 보란 듯 시식회를 열고 “한우보다 맛있다”고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에 축산 농가는 “한국 정부인지, 미국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또 울었다.

대한민국이 미국산 쇠고기로 흘린 ‘눈물’이 너무 많다. 이젠 수입육 유통업체가 ‘적자늪’에 빠져 아우성이다.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정부 선전 상품’을 대규모로 사들였던 이들이다. 미국산 쇠고기로 웃은 자 누구인가? 말이 없는 미국산 쇠고기의 1년은, 말해 소용없는 ‘눈물’의 복기다.

# 2009년 여름 “메이저 업체 적자폭 100억~200억대”

‘필봉프라임엔터테인먼트’가 지난 5월 말 최종 부도 처리됐다. ‘미트코리아닷컴’도 지난 3월 문을 닫았다. 이곳 김태열 대표는 한국수입육협회 회장이다. 올 초 ‘미트마트인터내셔날’도 사업을 접었다.

메이저 수입육 업체 대부분이 적자폭이 100억~200억원대에 달한다고 업자들은 전한다. ㅋ사는 수입 자체가 두렵다. 영업부장은 한숨부터 토한다. 은행거래가 어려워진다며 업체명을 가려달라 한다. “적자폭이 50억원대”라는 회사 밖 구설에 “노코멘트하고 싶다”며 “지난해 10~11월 수입량을 정점으로 올 1월부턴 한 달 50t 안팎으로 줄였다”고 말한다. 50t은 컨테이너 5박스가 채 안 된다. ㅎ사는 해명 자체를 피한다.

중소 규모 수입업체에선 ‘만세’ 소리가 넘친다. 한국수입육협회 임원이 운영하는 한 회사 관계자는 “올해 부도난 곳만 해도 20여 곳이 될 것”이라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한 달 10억~15억원 정도 벌었던 업체들 가운데, 이름만 바꿔 다시 영업을 모색하는 곳들도 많다”고 말한다. 기존 업체를 부도 처리해 은행빚을 회피한 뒤 대표와 상호만 바꿔 사업을 이어갈 때 이 업계에선 ‘만세를 부른다’고 칭한다. 빚을 갚을 여력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는 얘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급감하고 있다. 올 1월 3843t 수입량이 지난 5월 1945t으로 반토막났다. 지난해 7월 4400t이 수입돼 10월 1만6773t으로 꼭짓점을 찍은 이래 등락을 거듭하지만 감소세는 꿈쩍 않는다.

#2009년 봄 철저히 ‘계급상품’으로

올 1월부터 3월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은 소폭 는다. 업자는 보통 2~3개월 전 주문을 한다. 시장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백화점 입점도 3~4월에 시작된다. 오판이었다. 소비는 더 준다. 업체는 재고량이 늘고, 재정 위기를 겪으며, 다시 수입을 줄인다.

대형마트 신세계 이마트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지난해 12월 416t이 팔린 이후, 올 1월 356t, 3월 330t, 5월 210t으로 판매량이 계속 감소한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12월 249t, 올 3월 180t, 5월 103t을 팔았다. 한국수입육협회 유보희 사무처장은 판매 부진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 △한우업계의 홍보 효과 △서민경제 위축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철저히 ‘계급상품’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 시점에서 판매 증가는, 서민 소비자가 염가의 혜택을 위해 식품 안전의 권리를 희생할 때라야 가능한 셈이다.

에이미트 박창규 사장(전 한국수입육협의회장)도 “젊은 층·서울·수도권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덜 먹는다”고 말한다. 실제 백화점 매출은 더 초라하다. 이곳에선 프라임, 초이스 등 고가의 1~2등급 고기가 유통되는데도 그렇다. 지난 4월 처음 매대를 마련한 신세계백화점(마산·죽전점)은 하루 평균 매출 20만원, 평균 손님 수가 5명 수준이라고 말한다. 롯데백화점은 아예 취급을 안 한다. 연탄을 팔지 않는 것과 같다.

수입 쇠고기 검역 불합격 내역/미국산 쇠고기 수입량

수입 쇠고기 검역 불합격 내역/미국산 쇠고기 수입량

이명박 대통령의 ‘예언’이 있었다. “우리는 사는 쪽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양보했다 안 했다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오픈(개방)하면 민간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일반 도시민들이 값싸게 먹을 수 있다.” 지난해 4월19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다. ‘계급상품’에 불과하기에, 이 대통령은 당시 그리 여유로웠는지 모른다.

#2008년 겨울 ‘값싸고 질 좋아진’ 한우 시장

미트마트인터내셔날의 최아무개 대표는 지난 4월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이 과장되면서 판매 부진과 늘어나는 경영 압박으로 근 10년간 키워왔던 기업이 50억원 손해를 입고 부도가 나 올해 1월29일 최종 폐업 처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담지 않은 진실도 있다. 2008년 1천원대에 머물던 환율이 9~11월 1500원대까지 뛰었다. 일찌감치 대량 주문을 했던 기업들이 털썩거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허덕 팀장도 “(해당 업계의 위기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워낙 많이 수입했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우 정육식당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4~5단계의 유통 과정을 줄여, 축산·도매업자가 직접 소비자를 만나 가격 인하를 꾀했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는 따로 생겼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염려도 ‘광기’라 매도하기 어렵다. 의 분석 결과, 지난해 6월 이후 정부에 의해 검역 불합격된 오스트레일리아산 쇠고기는 45.2t에 불과한 반면, 미국산 쇠고기는 129t에 달했다. 지난해 9·10월을 빼곤 수입 재개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산 수입 물량이 항상 미국산을 앞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합격품 중 차지하는 비중은 더 압도적이다. 변질, 이물질 검출, 위생조건 위배 등의 이유로 적발된 건수만 따지면 전체 수입산 쇠고기의 99건 가운데 미국산이 80건이다. 오스트레일리아산은 14건에 불과했다.

지난 5월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광우병 위험은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정부가 공언했던 미국 현지 도축시설 점검은 지난 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화된 사료 조처’도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8년 가을 미국산 지지 ‘시국선언’ 후폭풍

앞서 보수언론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홍보는 대단했다.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미국산 쇠고기 할인행사를 하는 직영판매점을, 11월27일 처음 매대를 설치한 대형마트를 르포 기사로 다뤘다. “미 쇠고기 본격 출하… 주부들, 광우병 우려 가라앉은 듯 많이 찾아” “추석 특수 미 쇠고기 판매 급증, 대대적 판촉행사… LA갈비 등 잘 팔려” 등이 당시 제목이다. 고위 인사들은 너도나도 시식회에 나섰다. 지난해 7월부터다. 보수 쪽 인사들도, 한나라당 의원이나 정부 고위 관료들도 기자들을 불러 카메라 앞에서 미국산 스테이크를 먹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지지하는 ‘시국선언’이었다.

지난해 11월27일 오전 대형마트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구입하고 있다. 수입 재개 이후 처음 대형마트에 시판된 날이다. 사진 연합 김주성

지난해 11월27일 오전 대형마트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구입하고 있다. 수입 재개 이후 처음 대형마트에 시판된 날이다. 사진 연합 김주성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9~11월 판매량은 실제 정점을 이룬다. 대형마트에서만 거래 나흘 만에 200t을 팔아치우기도 했다. 하반기 수입량도 최고를 찍는다.

하지만 이때 시류를 타고 주문한 미국산 쇠고기는 2~3개월 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광우병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문제삼는 이들의, 시장 수요에 대한 ‘무리한 낙관’이 문제가 됐다. 이런 청사진을 그들 혼자 그렸을 리는 없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언론광고까지 불사했다.

그런데도 한국수입육협회 유보희 사무총장의 말마따나 지금 미국산 쇠고기를 단체급식하는 정부기관은 없다. 군납도 이뤄지지 않는다. 업계가 어려움을 더 호소하는 이유다.

#어느 해 여름 그 많은 호주산 갈비세트는 호주산일까

2009년 미국산 쇠고기는 사실상 팔면 팔수록 손해다. 수입가보다 30~40% 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수입 단가가 많이 내렸음에도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의 수입물가지수는 지난해 7월 112.75에서 계속 감소해 지난 4월 75.6으로 바닥을 찍고, 지난 5월 81.71을 기록했다. LA갈비는 1파운드당 4달러에서 현재 2달러15센트 정도로 떨어졌다. 수입물가지수의 100이 2005년 기준이므로, 그때보다 달러 기준 단가만 20% 정도 하락한 셈이다.

추가 협상이 이뤄지며 101t이 처음 수입되던 지난해 6월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그해 여름처럼, 어느 다른 계절 미국산 쇠고기의 앞을 전망하긴 여전히 어렵다. 미국산은 당장 오스트레일리아산에도 고전한다. 안전성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뒤진다.

원산지 등급표시제, 정육식당 확산 등으로 품질 대비 가격 우위를 갖추며 국내산 육우 또한 한시름을 놓는다. 우려와 달리 꾸준히 사육 두수가 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245만 두에서 오르내리던 게 이달 6월 258만5천 두에 이르렀고, 9월 261만2천 두까지 내다보고 있다.

그사이 미국산 쇠고기를 중국에 내다파는 업체가 등장한다. 오스트레일리아산으로 둔갑시킨다는 말도 곳곳서 새어나온다. 이제 미국산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수입유통업자 김아무개씨는 “오스트레일리아산 수입량은 뻔한데, 올 초 설만 해도 그렇게 많이 유통된 오스트레일리아산 갈비세트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묻는다. 미국산 쇠고기는 또 다른 ‘피해자’를 불러 분노를 나누면서, 눈물은 두 배로 키운다.

얼마나 길어질까? 박창규 사장은 “2003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ㅋ사 영업부장도 “최소한 1년은 한 달 50t 정도의 수입 규모만 유지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알 수 없다.

정부와 보수세력은 여전히 ‘집단광기’라는 불도장만 들이대고 있다. 한 유통업자는 “광우병 검사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도, kg당 200~300원 인상밖에 안 될 텐데, 왜 전수검사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검찰만 분주하다. 〈PD수첩〉 취재진을 기소하며, 수입업자들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도 적용했다. 줄도산 위기에 직면한 여러 수입업자들이 웃을지 울지 또한 알 수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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