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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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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자가 되어가는 여자들

영화 <3×FTM>에 나오는 ‘하리수 반대편’ 명진·무지씨
“‘되고 싶은’처럼 꿈같은 이야기 아니에요”
등록 2009-05-29 11:21 수정 2020-05-03 04:25
그들도 우리처럼,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3×FTM>의 세 주인공 김명진, 한무지, 고종우씨(위 부터).

그들도 우리처럼,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3×FTM>의 세 주인공 김명진, 한무지, 고종우씨(위 부터).

“하리수 반대편?”

자신의 존재를 타인의 이름을 빌려서 말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니 자신의 얘기를 말해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은 남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리수 반대편”이라는 말로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 하리수를 통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자’(MTF·Male Toward Female Transgender) 얘기가 그래도 알려졌다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자’(FTM·Female Toward Male Transgender)의 얘기는 여전히 침묵의 벽장 속에 갇혀 있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가 만든 은 성전환 남성(FTM)의 목소리를 담은 한국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꼭꼭 닫혔던 벽장 문을 열어젖혔다. 다큐는 벽장을 열고 나온 FTM 세 명의 커밍아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6월4일 의 개봉을 앞두고, 세 명의 주인공(고종우·김명진·한무지) 중에 두 명인 명진·무지씨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유쾌하고 뭉클했던 다큐와 대화를 재구성했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마법’ 수술 뒤

그들은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어가고 있는’ 여자”라고 말한다. 명진씨는 “‘되고 싶은’이란 말은 꿈같은 거란 뜻이지만, 우리는 그런 꿈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느 순간에 남자가 되고 싶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고민과 경험 속에서 그렇게 되었단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적잖은 사람들은 이들이 남자가 되고 싶어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을 원한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엄마 뱃속부터 남자였고”(종우), “남자로 보여야 했고”(무지), “남자가 되어야 했던”(명진) 생애를 말한다. 일단 다큐 속으로 고고!

종우씨의 여름은 남들보다 무덥다. 오토바이를 타고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그는 셔츠도 벗어야 시원할 여름에 가슴에 압박붕대를 찬다. 남들에게 신체의 여성적 특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압박붕대, 러닝셔츠 그리고 윗옷. 가슴 절개수술을 하지 않은 대부분의 FTM 남성들이 여름에도 이렇게 입고 다니는데, 명진씨는 이것을 “갑옷”이라 불렀다. 여름에도 갑옷을 입고 살얼음판 세상으로 나선다. 언제나 ‘시선의 테러’를 의식하며 살아온 명진씨는 “집의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언제나 살얼음판 같았다”고 말했다. 살얼음판 세상은 일찍이 시작됐다. 근육질의 남성성을 꿈꾸는 종우씨에게 ‘생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단어다. 중학교 1학년, 하필이면 흰색 바지를 입었던 날에 초경이 터졌다. 또 하필이면 반 아이들이 모두 책상에 올라가 기합을 받고 있었다. 당시까지 친구들에게 남자로 보였던 종우씨는 “그날 이후로 장난꾸러기였던 성격이 얌전하게 변했다”고 돌이켰다.

생리와 가슴은 FTM 남성의 가슴을 때린다. 하필이면 압박붕대를 하지 않았던 날에 무지씨의 선배가 그의 MP3 플레이어가 예쁘다며 다가왔다. 선배의 팔이 그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에 무지씨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무지씨가 마침내 가슴 절개수술을 받았다. 그에게 그것은 “불안에서 벗어나는 마법”. 마침내 자신의 성에 자신의 몸이 조화하는 느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퀴어퍼레이드에서 웃통을 ‘깠다’. 그리고 춤췄다. 이전에 남성호르몬 주사를 처음 맞았을 때의 느낌도 잊히지 않는다. 무지씨는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고, 당장 배우 최민수씨 목소리처럼 될 것 같았다”고 돌이킨다.

자신의 몸뿐 아니라 피붙이에게 인정받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무지씨의 여동생이 나와서 가족의 얘기를 들려준다. 이제는 “언니”가 아니라 “오빠”로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동생을 보면서 무지씨도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그에게 수술은 끝이 아니다.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1’이 아닌 ‘2’인 그는 “연봉 2700만원에 자신을 팔았다”며 한탄한다. 이직을 하려고 인터넷 취업 사이트를 통해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사진 보고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시네요”라고 했단다. 취업 사이트에 등록하면 주민등록상 성별이 뜨기 때문에 FTM 남성은 여성으로 분류된다. 그도 얼떨결에 “제가 남자 못지않게 일하죠”라고 대답했다. 통신기술자인 그는 ‘2’ 때문에 경력에 견줘 적은 월급을 받는다. 그는 다큐에서 지인에게 “월세 내는 생활이 지긋지긋하다”며 “이제는 전셋집에서 살고 싶다”고 나지막이 절규한다.

그러나 주민번호가 바뀌어도 아름다운 신세계가 열리지는 않는다. 명진씨는 2006년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 판결을 받았다. 주민번호 뒷자리가 ‘2’에서 ‘1’로 바뀌어 법적인 남성이 되었다. 그는 “이제는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혹시나 성별이 드러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날들과 마침내 작별이라 기대했다. 성별이 바뀌며 연봉도 올라갈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다큐에서 그는 오히려 ‘사기죄’로 고소당해 경찰서에 불려간다. ‘여자고등학교’를 나온 ‘죄’다. 이력서에 ‘여자’를 지웠던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회사는 그를 권고사직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는 “누구도 속이지 않았다”며 “살기 위해 애썼을 뿐”이라고 호소한다. 다행히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가 되지만 그에게 남은 상처는 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인지상정 아닌가. 여고를 졸업한 남성을 받아줄 회사가 도대체 어딜까. 명진씨는 “혹시나 발각이 될까봐 항상 긴장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행여나 인사과에서 칭찬을 하려고 불러도 불안했다”며 “다큐 촬영이 끝난 뒤에도 다른 회사에서 같은 이유로 명예퇴직을 당했다”고 말했다.

다큐 출연, ‘너는 어떠니’란 말 걸기

그래도 씩씩한 명진씨, 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이번엔 성전환 남성(FTM)에 대한 신체검사 기준을 바꾸는 싸움을 벌였다. 그는 성별 정정 이후에 여권을 만들러 구청에 갔다. 여권을 만들려면 병역 의무를 다했다는 서류가 필요하단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병무청에선 그에게 윗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가슴 수술을 받지 않았던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음에 그는 성별 정정을 증명할 신체사진과 진단서를 갖추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바지를 벗으란 요구를 받았다. 사진도, 서류도 믿지 못해 굳이 눈으로 봐야 한단 것이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헌법상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국방부에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개정을 권고했다. 국방부는 2008년 1월 규칙을 개정해 성전환자는 신체검사를 서류로 대신한다. 이렇게 성별 정정도 차별의 끝이 아니다. 무지씨는 “수술 등을 거칠수록 FTM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마치 성전환 남성이 아니라 비성전환 남성처럼 느끼게 된다”며 “그러나 FTM이란 나의 정체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큐에 나왔다”고 말했다.

남성성을 둘러싼 FTM 안의 차이도 있다. 종우씨는 “FTM에게 여자란 과거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지씨는 “과거를 지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FTM이 생각하는 정체성도 제각각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이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FTM’ 안에서 동거하고 있다. 이들의 차이를 말하기엔 한국 사회의 기초가 너무나 허약한 탓이다. 무지씨는 “나는 이런 경험을 했는데 너는 어떠니, FTM이 대중에게 말 걸기 할 기반을 만들고 싶어서 다큐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절박한 이유로 이들은 다큐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커밍아웃하는 위험을 감수했다. 명진씨는 “현관을 나가면 살얼음판을 걷는데, 이제는 살얼음판에 망치질하는 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래도 출연한 단 하나의 이유는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나의 얘기를 사람들이 진실하게 들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지씨도 “관객 중에 직장 상사의 자제가 있을지, 거래처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며 “그럼에도 다른 FTM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내가 받았던 상처는 다시 겪지 않으리란 희망으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커밍아웃으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적이 있다”며 “다가올 상황이 눈에 보이면 덜 두려운데, 뭉뚱그려 무서우면 두려움이 더 커진다”고 털어놓았다.

의 가장 단호한 사나이, 종우씨도 다큐의 마지막에 고백한다. 아무리 남들이 남자같이 보인다고 해도 자신은 안다고. “어깨도 넓지 않고, 엉덩이도 작지 않아서” 완벽하게 생물학적 남성처럼 보이기 어렵다고 말이다. 그리고 막걸리를 걸친 그가 속내를 풀어놓고 한숨처럼 내뱉는 한마디에 객석에선 흐느낌이 흐른다. “자신을 사랑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 그렇게 이들은 이성애자 남성과 다르다. 그래서 종우씨는 스스로를 “특별한 경험을 한 남자”라고 말한다.

외동아들이 가장 모시고 싶은 관객

이렇게 ‘조금 다른 남자’ 안의 차이도 있다. 은 단순히 이들도 남성이라고 재현하는 방식을 넘어 FTM 남성 안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그것은 텔레비전 다큐가 보여주기 어려운 세계다. 그리고 거기엔 평생을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던, 앞으로도 끝없는 자문을 멈출 수 없는 존재들의 ‘피의 언어’가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다만 유쾌한 웃음과 함께. 그래서 이들의 사연은 사회가 정한 기준을 어떤 이유로든 한 발짝 넘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순간을 떠올리며 공감할 얘기로 넓어진다. 그렇게 은 양더창 감독의 에서 꼬마가 얘기한 것처럼, 우리가 흔히 보는 서로의 앞통수가 아니라 뒤통수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당신이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결코 듣지 못할 이야기가 극장에서 기다린다. 외동아들 명진씨는 가장 모시고 싶은 관객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김일란 감독 인터뷰
“오해 위험 있지만 차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일란 감독.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일란 감독.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엔 차별의 비극적 드라마는 없다. 성소수자에 관한 다큐라면, 주먹에 맞고 따돌림을 당하고… 수난을 재현하는 장면을 은근히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나 은 ‘굳이’ 그런 비극에 기대지 않았다. 김일란 감독은 “가시화된 차별만이 차별은 아니다”라며 “다름을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서 하는 행동도 간혹 차별이 될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런 차별에 대한 폭넓은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큐엔 2006년 10월~2008년 3월 성전환 남성(FTM) 세 명의 일상을 담았다.
첫 FTM 다큐를 만드는 이로서 고민도 컸다. 그는 “모든 정체성처럼 성별 정체성도 흔들림 없는 것이 아닌데, 흔들림 없이 구축된 것처럼 보여주어야 소통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혹시나 FTM의 표준적 경험담과 다른 서사를 전하면 오해의 근거가 된다. 그는 “자칫 FTM이 혼란의 와중에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해의 위험이 있지만, 남성성 안의 차이를 놓칠 순 없었다. 그것이 FTM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남자로 태어났다, 남자가 되고 싶었다, 남자가 되어야만 했다는 세 명의 각각 다른 말이 사실은 세 명의 삶에 모두 있다”며 “이렇게 같으면서 다른 FTM의 남성성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전환 남성은 성전환 여성(MTF)이 받지 않는 질문도 받는다. 남자가 되어서 남성 권력을 누리고 싶냐는 것이다. 김 감독은 “FTM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비성전환 남성이 누리는 권력을 갖지는 못한다”며 “오히려 남성의 영역을 침범했단 거부만 돌아온다”고 말했다. 가끔은 감독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다큐는 흘러갔다. 그는 “FTM과 여성, FTM과 레즈비언의 접점은 생각했지만 FTM과 게이의 만남은 다큐를 찍기 전에 생각지 못했다”며 “종우씨가 촬영 중에 게이로 오인받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것이 게이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FTM에 대한 낯섦이 만나는 지점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 얘기를 통해 두 정체성 사이에 함께 고민해볼 만한 지점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다큐를 찍으며 감독도 배웠다.
은 김일란 감독의 영화이자 ‘연분홍치마’의 작품이다. 김일란 감독이 함께하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는 커밍아웃 3부작을 만들고 있다. 에 이어 한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였던 최현숙씨와 선거운동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홍지유·한영희 공동감독)를 완성했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함께 남성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을 다룬 (이혁상 감독)을 제작 중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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