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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울어버린 ‘용산 법정’

용산 참사 첫 공판 “그들이 폭행당하고 물포 맞을 때 법과 정의는 어디 있었나”
등록 2009-04-28 14:43 수정 2020-05-03 04:25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4월22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열렸다. 철거민들과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100여 명이 법정에 모였다. 검은 상복을 입은 사망자 유가족 3명은 방청석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들의 눈은 정면만을 향했다.
검찰이 모두 진술을 시작했다. “피고인들은 호람건설이 관리하고 있던 타인 소유의 남일당 건물에 망루를 세우고 시너와 염산 등 인화 물질을 미리 준비했으며, 화염병을 던져 공공의 질서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했습니다. 또 망루에 진입하는 경찰특공대원들을 향해 준비했던 화염병을 던져 한 특공대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억양 없는 목소리가 법정을 메우는 사이, 방청석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미리 연락을 받고 모인 농성자들은” “사전에 준비한 인화 물질을 이용해” “망루를 만드는 연습을 한 뒤”…. 이어지는 검찰의 설명에 유가족들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이 4월23일 오전 서울 효자로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이 4월23일 오전 서울 효자로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검찰 진술이 끝난 뒤 변호인단의 모두 발언이 시작됐다. 긴 법정 다툼을 예고하는 듯 열띤 분위기였다. 황희석 변호사가 첫 발언을 시작했다. 황 변호사는 “우리는 무엇보다 이들이 왜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책대여점과 옷가게를 하던, 음식점과 술집을 운영하던 피고인들이 그 추웠던 1월19일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주와 건설사들만의 돈잔치, 그리고 그들의 사주를 받은 용역업체의 폭력 사이에서 우리의 이웃과 같던 피고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황 변호사가 사진으로 공개한 용산 4구역 현장은 전쟁의 한복판 같았다. 호람건설 등 용역업체는 아직 삶터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세입자들에게 점령군과도 같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황 변호사가 소개한 용산 4구역 주민 인터뷰는 하나같이 용역업체 직원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용역들이 눈만 마주치면 욕을 합니다. 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마시다 눈이 마주치자, ‘왜 쳐다보느냐’며 때렸습니다.” “사람이 떠난 빈집과 거리에 온통 낙서를 했습니다. 목을 매달고 있는 사람과 식칼, 해골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그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겁이 납니다.” “영업을 방해하기 위해 밤에 가게 유리창을 깼습니다. 죽은 비둘기나 쓰레기를 가게 앞에 놓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째 철거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성폭력도 빠지지 않았다. 황 변호사는 “이런 것까지 다 말씀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용역 직원들은 길거리에서 여성과 마주치면 의도적으로 가슴을 밀치거나, ‘거지 같은 년’ ‘○○에서 냄새 나는 년’ 따위의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인화물질 존재 모른 채 특공대 진입”

이어 발언에 나선 변호인단 간사 권영국 변호사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화를 불렀다”며 “농성자들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찰의 작전을 정당한 공무로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검찰이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수사기록 가운데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었다며, “직접 작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이 망루 안에 위험한 인화 물질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진압 작전에 들어가는 대원들이 인화 물질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것은 농성자뿐만 아니라 대원들의 안전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작전 결정이었음을 방증한다는 설명이다. 권 변호사는 또 “경찰은 이들을 ‘도심 테러집단’처럼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을 향해 공격하는 용역과 경찰에 대항해서만 화염병을 투척했다”며 “일종의 긴급피난과 같은 형태”라고 말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재개발을 둘러싼 ‘그들만의 돈잔치’에 집중했다. 이 변호사는 “용산지역 재개발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림산업 등 시공사와 땅주인들이 얻는 이익이 1조4천여억원에 달한다”며 “실제 3.3㎥당 700만원 선이던 용산 4구역의 땅값이 재개발이 확정된 뒤에는 8천여만원까지 뛰어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세입자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2500만원에 불과한데 이들이 그 돈으로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참사를 통해 이같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검찰은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운동장에 1만 명을 모은 뒤 그들에게 1억원씩을 나눠주면 그게 1조원이라는 이 변호사의 설명에 방청석에서는 경악의 신음 소리가 터지기도 했다.

“아들 같은 용역에 얻어맞은 아버지의 눈물”

열띤 모두 발언의 분위기는 지난 1월20일 불길 속에 숨진 고 윤용헌씨의 아들이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남긴 글이 공개되며 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로 번 월급으로 어버지 양복을 맞춰드리고 싶었다는 속깊은 아들의 ‘사부곡’에는 하룻만에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들은 “10년 넘게 식당을 하시며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장난을 걸며 다음에는 어디로 놀러가자고 말씀하셨던 아버지였다”며, 농성장에 가면서도 “며칠 있다 올 테니 밥 잘 챙겨먹고 엄마랑 잘 있으라”고 말했던 아버지를 추억했다.

강제 철거를 경험하면서 목격한 아버지의 약한 모습은 아들에게도 상처로 남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울먹이며 말을 남겼다. “오늘 용역이 쳐들어왔어. 근데, 네 나이 또래한테 얼굴을 얻어맞았어….” 용역업체 직원들이 거리와 벽마다 빨갛게 해골을 그리고 세입자들을 때리는데도 경찰들은 그저 구경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많이 야윈 어머니의 얼굴과 애써 울음을 참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일이 견디기 힘들다는 아들은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드리고 보내드렸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죄송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용기가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보도 듣도 배우지도 못한 이런 일들이 제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말처럼 아들은 이제껏 배운 것과 전혀 다른 세상과 맞닥뜨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했다. “제발 들어주세요. 저의 아버지, 우리 유가족 모두는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황 변호사가 애써 마음을 누르며 낭독을 마친 순간, 방청석에서 연방 눈물을 찍어내던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은 신음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구속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용산 4구역 철거대책위원장 이충연씨는 ‘용산 참사’에서 잃은 아버지 이상림씨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떨궜다.

울음이 잦아들고 숨소리마저 고요해졌다. 모두 할 말을 잃은 듯 숙연해진 재판정에서 황희석 변호사는 말했다. “검사님께서는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분들을 기소하셨다 했습니다. 과연 이들이 용역에게 폭행을 당할 때, 보상금 몇 푼에 살고 있던 곳에서 떠밀릴 수밖에 없었을 때, 결국 그 추운 겨울 물포를 맞으며 망루를 오를 수밖에 없을 때, 법과 정의는 어디에 있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청석 앞자리에 앉아 검찰을 바라보던 유가족의 검은 상복 위, 머리에 질끈 동여맨 하얀 매듭이 처연하게 빛났다.

노현웅 기자 한겨레 법조팀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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