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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광우병 PD 결혼한다

문화방송 김보슬 PD가 같은 시사교양국 조준묵 PD와 ‘꽃처럼 웃는 날’
등록 2009-04-14 15:58 수정 2020-05-03 04:25
4월19일 결혼식을 올리는 김보슬PD(왼쪽)와 조준묵 PD가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앞마당에 나란히 서 있다.  〈한겨레21〉박승화 기자

4월19일 결혼식을 올리는 김보슬PD(왼쪽)와 조준묵 PD가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앞마당에 나란히 서 있다. 〈한겨레21〉박승화 기자

특종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의 수사 진전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이다. 나중에 인터뷰 원본 요구하지 말고 기사 문장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김보슬 문화방송 PD가 4월19일 낮 12시30분, 서울 ㄱ구 ㅊ동 ㅊ웨딩홀에서 결혼한다. 신랑은 같은 방송사 조준묵 PD다.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의 첫 부부 PD가 되는 셈인데, 이 대목은 수사에 별 도움 안 되니 신경 꺼도 되겠다.

결혼식을 연기한다 만다, 문화방송 사옥에서 식을 올린다 만다,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신랑·신부는 예정했던 날짜에 평범한 웨딩홀에서 백년가약을 맺기로 최종 결정했음을 독점 확인했다. 혹여 막판에 변경될 경우, 서울중앙지검은 “바뀔 줄 알았으면서도 결혼한다고 허위 보도했다”며 의 책임을 묻고 싶어질 텐데, 현재 시점에서 이들의 결혼식장이 ㅊ웨딩홀이라고 보도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기왕이면 웨딩홀 이름을 그대로 밝혀주길 바라겠지만, 아무리 언론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검찰이라 해도 부적절한 광고효과는 피하는 게 언론윤리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정 업체명이 궁하면 기자의 전자우편을 뒤지는 방법도 있음을 귀띔해두겠다.

검찰 수사 덕분에 신혼여행을 포기했으므로, 공항에서 대기하는 수고를 일내어 하실 필요는 없겠다. 신부에 대한 체포영장만 있으면 수색영장 없이도 신랑 집을 뒤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기묘한 융통성을 다시 한번 발휘한다면(검찰은 지난 3월 김 PD에 대한 체포영장만 가지고 조 PD의 집을 수색했다), 예식장에서 당당히 신부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31번지 문화방송 사옥 로비에는 부부의 앞날을 응원하는 다음과 같은 펼침막이 걸려 있는데, 신랑과 신부는 매일 밤 이 문장을 읽으며 결혼식 강행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검찰, 너희를 역사가 심판하리라.”

뭇 시선의 합리성을 배반한 결혼

“왜 안 나오는 거야?” 발로 걷어찼다. 두 손은 바지춤에 찔러넣고 있었다. 또 찼다. 버럭 소릴 질렀다. 막판 편집 작업에 진전이 없으니 열받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음료수가 안 나온다고 자판기를 발로 걷어차다니. 신입 PD 김보슬은 생각했다. ‘저 선배, 한 성깔 하는구나.’ 8년 위 선배인 그는 기피 대상이었다. 그랬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까지가 인생의 오묘함이다. 그래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왜 이 정도의(옆 사진을 참조하시라) 김보슬 PD가 이런 상태의(같은 사진을 참조하시라) 조준묵 PD와 굳이 결혼해야 하느냐 말이다. 이리저리 캐물었으나 신부는 끝내 신랑을 흉보지 않았다.

“일하다 정든 거죠. 이 아저씨 성격은 다 알아요. 볼 거 안 볼 거 다 봤지요. 같이 프로그램 만들면서 혼나서 운 적도 있어요. 그래도 방송 끝나면 ‘정상인’으로 돌아와요. 방송일 하는 때를 제외하면 ‘사람’처럼 굴기도 해요.” 구박받던 시절은 생각도 안 난다는 표정으로 신부는 신랑을 바라본다. 연애는, 그리고 결혼은 뭇 시선의 합리성을 배반한다. 오롯이 두 사람만의 진실이다. 신랑은 북극에서 그 진실의 일말을 발견했다.

“다큐를 제작하느라 작년에 북극에 다녀왔어요. 그곳에는 아무 소리가 없어요. 쏴아 하는 바람 소리만 있지요. 세상 천지가 하얗지요. 하루 종일 썰매를 타고 달려도 못 닿을 산이 눈앞에 있어요. 소리 없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코앞에 있지만 가닿지 못할 산을 보면서, 만년설 위에 똥을 쌌어요. 세상 모든 일이 잡스럽게 느껴졌지요. 인생 참 속절없다고 생각했어요. 빨리 결혼해서 애라도 낳아야겠다 싶었어요.”

그가 북극에서 돌아온 지난해 11월, 김 PD는 방송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에 대한 〈PD수첩〉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 등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직후였다. 잡스런 세상사에 휘말린 후배 PD를 보고 번다한 인생에 도통해버린 선배 PD는 ‘딴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감정에 대해 신랑은 “불쌍하고 안돼 보이더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곧 사랑임을 북극에 다녀오면 알게 된다. 청혼도 북극의 방식이었다. “우리, 이럴 거면 결혼해야겠다.”

결혼이 열흘 앞이지만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가려고 며칠 동안 스케줄을 짰지만, 결국 위약금 100만원을 내고 취소했다. 신접살림을 차릴 집은 구하지도 못했다. 결혼식이 끝나면 딱히 갈 곳이 없다. 아마도 방송사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신부는 검찰 수사에 대한 반박 자료를 준비하느라 회의실을 지킬 테고, 신랑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막느라 로비를 지킬 것이다.

“오늘 아침에 누가 나를 흔들어 깨웠어요. 검찰이 온다고 하더군요.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막상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었어요. 잡혀가는 상황이 오면 담담해져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시각, 신랑은 문화방송 노조원 300여 명과 함께 사옥 정문 앞에 있었다. 4월8일 오전 9시50분께,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 수사관 15명을 데리고 문화방송을 찾아왔다. 〈PD수첩〉 제작진 체포와 보도 원본자료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방송센터 앞에서 1시간여 동안 노조원들과 대치하다 빈손으로 돌아갔다.

4월8일 오전, 문화방송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직원들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 본부 조합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한겨레21〉류우종 기자

4월8일 오전, 문화방송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직원들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 본부 조합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한겨레21〉류우종 기자

“왜 자꾸 정치적 게임을 하죠?”

지난 20년간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 시도는 1989년 , 2003년 SBS, 2007년 등 모두 세 차례 있었지만, 사전 연락이라는 ‘정치적 모양새’조차 생략하고 언론사에 들이닥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도 원본 테이프를 내놓으라는 검찰의 요구도 세계 언론 사상 유례가 없다.

“솔직히 저는 검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되 법정에서 진실을 다퉈보자는 쪽이에요. 그런데 검찰은 자꾸 정치적 게임을 하고 있어요. 한 방 치고, 또 치고, 계속 치는 거죠. 완전히 무릎 꿇린 상태로 들어오게 하겠다는 태도예요. 이렇게 되면 나처럼 생각할 여지는 더 줄어들죠. 좋다, 계속 싸우자, 이런 생각만 남죠. 압수수색 없었던 셈치고, 무릎 꿇고 출두하라고요? 그렇게는 못해요.”

아마도 신랑과 신부는 ‘타협책’에 대해 여러 번 의논했을 것이다. 잡스런 세상, 오지게 사는 일의 피곤함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는 못 나간다는 생각을 굳히기까지 정부, 검찰 그리고 보수 언론의 역할이 컸다. 〈PD수첩〉에 대한 검찰 등의 논리는 간단하다. 광우병 환자로 의심되는 사례로 등장했던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이 ‘인간광우병’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왜곡해 보도했다는 것이다.

“비열하고 유치하고 졸렬한 공격이에요. 아레사 빈슨은 인간광우병을 의심받는 환자였고, 그 때문에 부검까지 받았어요. 굳이 잘못이 있었다면, (인간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를 ‘걸렸다’고 했어요. 오역이죠. 그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그것 역시 팩트(사실)에 대한 것이니까,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대목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바로잡고 사과도 했어요. 이걸 모르지 않는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어요. 오역을 왜곡으로, 다시 선동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한 PD라고 낙인찍고 있어요. 제 양심에 비춰 결코 그들이 말하는 왜곡·조작 따위를 하지 않았어요.”

김보슬 PD는 2003년에 입사했다. 2005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에 대한 〈PD수첩〉 보도를 당시 한학수 PD와 함께 이끌었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제작해 지난해에는 한국PD협회가 주는 ‘올해의 PD상’을 받았다. 프리랜서로 일했던 2년여를 더하면 벌써 8년째 시사 프로그램만 만들고 있다.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에서 오랜 단련을 거쳤다. 언론계의 평판을 검찰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은 중앙 일간지 기자들이 시샘할 정도로 탐사보도의 새 지평을 줄기차게 개척해왔다.

“방송 3시간 전에 대본 고친 것을 조작의 증거라고 내밀던데, 방송이 나가는 중에도 우리는 대본을 고쳐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본과 자막을 고치면서 편집하는 게 방송이고 PD의 일이죠. 자막으로 장난을 쳤다는 주장도 하던데, 영어가 무슨 스와힐리어입니까. 한국어로 더빙도 하지 않고 영어 인터뷰 그대로 내보냈어요. 어지간한 사람들은 금세 오역을 알아차릴 텐데 그걸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요? 하긴 청와대 대변인은 모두 알아듣는 영어도 이상하게 번역해서 한-미 정상회담 내용을 엉뚱하게 브리핑하더군요. 시사교양 PD들은 방송을 그렇게 만들지 않아요.”

‘거짓말 방송’? 명예훼손감이야

신랑과 신부는 요즘 ‘명예훼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거짓말 방송”이라고 말했다. 문화방송과 해당 PD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두 사람은 생각한다. 대통령은 지난해 촛불 정국 때,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두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운천 전 장관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사람이 있다면, 〈PD수첩〉이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두 사람은 생각한다. 정부 잘못을 따지는 보도를 명예훼손이라며 정부가 고발하는 기상천외한 일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명예훼손이기도 하다.

양가 부모님은 구태여 따져묻지 않으신다. 걱정이 많을 뿐이다. 신부의 아버지는 폐암과 싸우고 있다. 어머니는 삼계탕을 방송사에 들고와 딸과 사위에게 먹인다. 휴대용 버너에 탕을 끓이면서 “빨리 해결돼야 할 텐데” 혼잣말처럼 하신다. 신랑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혼자 되신 어머니는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어도 아들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준묵이가 보슬이 데리고 도망 중일 것’이라 마음을 굳게 먹고 혼자 버티셨다.

4월19일 결혼식을 올리는 김보슬PD와 조준묵 PD는 청첩장을 만들었지만 보내지는 못했다. 〈한겨레21〉박승화 기자

4월19일 결혼식을 올리는 김보슬PD와 조준묵 PD는 청첩장을 만들었지만 보내지는 못했다. 〈한겨레21〉박승화 기자

‘꽃처럼 웃는 날.’ 청첩장의 맨 앞쪽에 그렇게 적혀 있다. 두 집안의 부모님들이 하객에게 보내려고 예전에 만들어뒀다. 만들고는 그냥 쌓아두기만 했다. 4월의 신부와 신랑은 서로를 보며 슬며시 웃지만, 아직 꽃처럼 활짝 웃지는 못한다. 여의도의 벚꽃은 그런 것도 모르고 저 혼자 천연하게 피어젖히고 있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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