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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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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노래

등록 2009-04-08 02:00 수정 2020-05-02 19:25

달이 차오른다, 가자.
좌우가 엇갈리는 날갯짓으로 얼마나 높이 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장기하의 꾹꾹 눌러 담은 듯한 목소리에 엉덩이가 가볍게 들썩인다. 그래, 가자꾸나. 가사 속 소심한 소년의 나이 때부터, 나를 따라 걷는 낮달을 보며 혹은 밤하늘 속 은빛 눈흘김에 홀려 자꾸만 가슴이 부풀었던 기억. 삶의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면서도 늘 들떠서 내일을 기다리던 소년, 그리고 소녀.
얼마 전 장기하는 그가 존경하는 배철수가 사회를 보는 한국방송 에 심수봉과 짝을 이뤄 출연했다. 배철수는 “이 친구들 노래는 사실 우리 세대의 노래”라고 했다. 과연, 장기하와 심수봉이 함께 부른 는 1970년대와 2000년대를 잇는 시간터널 같았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냉정한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소년은 아직 슬픈 세상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구중궁궐 술자리에 앳된 여대생 가수가 불려나왔고 그 자리에서 권력자는 부하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먼 훗날 숱한 가수 중에 심수봉을 가장 좋아하게 된 무렵에야 알게 됐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소년도 기억하는데, 사랑은 그런 것인데, 사랑을 피우기 전에 꿈을 이루기도 전에 속절없이 무너져야 하는 젊음이 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30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힘있는 자들의 파티에 어떤 젊음들이 장식물로 동원돼야 하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도 다시 알게 됐다. 전설 속의 권력자를 숭앙하는 어떤 자들이 그 풍류 행각을 본떠 면면히 이어온 21세기의 전설에 대해.
포크와 록에 심취한 수많은 배철수들의 장발을 단속하는 데는 서릿발 같은 공권력이 정작 권력에 유린당한 인권을 신원하는 데는 한없이 소심한 소년 같았던 먼 옛날의 풍경이 다시 펼쳐지고, 공평한 법의 지배는 킁킁거리며 거드름 피우는 개들의 장난감으로나 딱 어울리는 세상이 재림하니,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백만 송이 장미를 피우기란 죽음보다 힘든 일이겠거니. 우리의 노래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년도 알겠지.
그래, 가야겠다. 저기 뜬 저 달이 아직도 너무나 떨리더라. 그 젊음들도 사랑을 하고 싶었을 터. 어떤 미래가 날 기다릴지 몰라도, 지레 무너지기는 싫었을 터. 오직 꿈꾸는 것이 있었을 터.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그대와 함께라면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저 달과 별의 떨림을 모르는 자들이 지배하는 땅, 지배하는 것 말고는 생각할 줄도 모르는 자들이 군림하는 땅, 그들의 영혼이 스스로 버려져 쓰레기처럼 썩어가는 땅. 단 한 송이 장미라도 피우려면 소년은 진저리치며 길을 떠나야지. 하지만 오늘도 여태껏처럼 그냥 잠들어버려서 못 갈지도 몰라. 용기가 없어서 혹은 어른이 되어서. 그 소년이 어느새 늙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러니, 가야겠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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