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해방 뒤에도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강제징용 귀국자들을 실은 배가 폭발해 수천 명이 수장당한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들, 일본군에 복무하다가 전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 처벌받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시베리아 억류자들이 겪어야 했던 개인적인 피해는 유별나다. 우선 피해자 상당수가 종전 직전인 1945년 8월 초에 입대한 이들이다. 피해자 모임인 ‘시베리아 삭풍회’ 회원들 가운데 1945년 8월 입대자가 절반을 넘을 정도다. 이재섭(84)·최용관(84)·황석창(86) 할아버지는 1945년 8월1일, 원봉재(84)·박수복(84) 할아버지는 6일, 이병수(85)·이후녕(84) 할아버지는 7일, 이병주(84) 할아버지는 9일, 김제두(84) 할아버지는 10일에 강제징집됐다. 전쟁 말기 광기에 빠진 일제는 훈련도 안 시킨 조선 청년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전장에 내몰았고, 이들은 군인이 된 지 며칠 만에 포로가 돼 3~4년씩 강제노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강제노역만으로도 억울한데, 그 기간마저 일본인들보다 더 길기도 했다. 황희성(84) 할아버지는 “어머니는 조선 사람이고 아버지는 일본 사람인 야마사키라는 사람이 수용소에 함께 있었는데, 조선인 수용소에 있으면 빨리 보내줄 줄 알고 ‘어머니가 조선 사람인 만큼 나도 조선 사람’이라고 주장해 우리들이 있는 수용소에 옮겨왔다가 그게 아니니까 다시 일본인들이 있는 수용소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조선인과 일본인 구분 없이 일본 군복을 입은 사람은 모두 포로로 취급한 소련군 탓이 크다. 하지만 배경에는 남과 북의 분단이 있었다. 북한 당국이나 미군정 모두 대결에 힘쓰느라 억울한 처지에 놓인 조선인들에게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실제 조선인 포로들이 송환을 주장하면 소련 당국자들은 “당신들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어 안 된다. 통일되면 곧바로 보내주겠다”며 무마했다는 증언도 여럿이다.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점은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다. 일본과 소련은 1956년 국교를 재개하면서 전쟁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해 서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일본 포로 강제노역 문제는 일본 정부와 합의가 된 사안’이라 주장하고, 일본은 ‘한국인 전쟁 피해 보상은 1965년 한-일 협상으로 청구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 모두 조선인 억류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삭풍회 총무를 맡아온 김기용(84) 할아버지는 “한-일 협상은 1945년 8월15일까지의 피해에 대한 협상일 뿐이고, 우리는 그 이후에 피해를 당했다”며 “우리 정부가 나서 이 점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대꾸조차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 민주당 ‘억류자 특별 법안’ 발의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1979년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가 꾸려져 종전 이후 강제노동에 대한 미지불 임금 지급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등 진즉부터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국제 관례상 강제노동에 대한 책임은 포로 소속국이 진다). 관동군 소속으로 포로가 됐던 군인이 60만 명이 넘어 우리나라처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일본 사법부는 ‘전쟁 피해는 전사자나 공습 피해자 등 모든 국민이 감수해야 한다’며 기각결정을 내렸다.
최근 야당인 민주당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책 등을 담은 ‘전후 강제 역류자 특별조치 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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