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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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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보다 무서운 용산 경찰

장례식장에서 사진 채증해 유가족에 집요한 추궁… 직장·집까지 들이닥친 형사들
등록 2009-02-10 02:19 수정 2020-05-02 19:25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작은아버지 윤용헌씨를 잃은 조카 윤상호씨는 서울 순천향병원 빈소에 있던 지난 1월24일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용산경찰서 형사과 소속 형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가 다짜고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아까 당신 차량에 동승한 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이 윤씨의 차량 번호판을 추적해 그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아내 전화를 건 것이다. 윤씨는 동승한 사람이 사촌 윤경구씨임을 밝혔지만 형사는 집요했다. 계속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 물어보며 괴롭혔다. 보다 못한 윤상호씨의 아버지가 전화기를 가로채 “형제가 죽으면 왕래하는 게 당연하지, 뭐가 궁금하냐”며 버럭 화를 냈을 정도였다.

용산 철거민 참사 유가족들과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월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구속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 민원실로 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용산 철거민 참사 유가족들과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월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구속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 민원실로 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장례식장에서 복면 차림으로 정보수집도

사흘 뒤 용산경찰서 소속 형사 두 명은 아예 강원 홍천에 있는 윤씨의 직장까지 찾아왔다. 윤씨에게 전화해 마치 고객인 것처럼 “사무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에 대답해줬는데, 알고 보니 형사였다. 또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경찰은 윤씨와 사촌 경구씨가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건물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사진을 들이밀며 “이 사람이 경구씨냐, 사촌이 맞느냐”고 물었다. “전철련 간부를 찾고 있는데, 경구씨가 그 간부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렇다”는 게 형사들의 설명이었다. 경찰이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사진 채증 작업을 벌인 것이다. 윤씨는 과의 통화에서 “내가 알려주지 않은 정보로 추적해 자꾸 전화하고 직장까지 찾아와 불쾌했다”고 말했다.

형사들은 이날 경기 남양주 덕소에 사는 윤경구씨 집에도 찾아왔다. 형사들은 이번엔 그날 새벽 일어난 경찰차량 방화사건과 관련해 유가족들이 당시 현장에 있었는지 캐물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유가족들에게 닥치는 대로 알리바이를 대라고 종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주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서 집요하게 번호를 물었다고 윤경구씨는 말했다. 윤씨는 “나는 차도 없고, 내 휴대전화 번호도 (경찰이) 모르는데, 어떻게 내 집을 알고 찾아왔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경찰의 무차별적인 수사를 비난했다.

윤상호씨의 동생 상석씨는 “경찰이 자꾸 전화하고 지방까지 찾아다니고 하니까 집안 어르신들이 ‘이러다 우리도 빨갱이로 몰리는 것 아니냐’며 많이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무리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다 유가족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2월5일 유가족들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 항의 방문 갔을 당시 빈소가 차려진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검은 복면을 한 남자가 돌아다니다 남아 있던 유가족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유가족들과의 몸싸움 끝에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임을 밝히고 풀려날 수 있었다. 경찰은 1월27일 경찰차량 방화사건 때는 ‘현장에서 전철련 옷을 입은 사람을 봤다는 증언이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흘려 전철련과 용산철거민참사범국민대책위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대책위 유가족지원팀의 김덕진 활동가(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는 “예전엔 경찰이 유가족들에게만은 예의를 지켰는데, 지금은 마구 도발을 해 유가족들이 힘든 상황”이라며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친 유가족들을 계속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려는 행태에 대해 대책위 차원에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서장 “걔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

이에 대해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도 사실관계를 밝히려고 하는 것일 뿐 절대 무고한 사람은 (수사)하지 않는다”며 “(2월5일 사건과 관련해) 어떻게 정보 상황 보고하는 경찰을 20여 명이 확 달려들어서 폭행하고 30분간 감금을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백 서장은 되레 대책위 쪽을 향해 “걔네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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