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고 특례, 사회공헌인가 장삿속인가

다문화 자녀 등 20% 배려, 현지 진출과 연계 관측… 군인 자녀도 은행들 마케팅 표적

제746호
2009.02.04
등록 : 2009-02-04 14:29 수정 : 2009-02-05 18:40
최근 한 경제주간지에서 ‘한국의 금융 CEO 50인’을 뽑았다. 금융시장 영향력, 창조경영, 사회적 책임 등 3개 항목을 놓고 재계 최고경영자(CEO)나 재무담당책임자(CFO), 금융 관련 연구소 원구원, 경제·경영학자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여 순위를 매겼다.

‘사회적 책임’ 항목에서 은행 CEO들이 1~4위를 독차지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1·2위였는데, 점수는 100점 만점에 각각 77점과 57점이었다. 뒤를 이어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신상훈 신한은행장이 53점·24점으로 3·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15위에 머물렀다. 사회적 책임 점수로, 김승유 회장은 8점을 받았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3점에 그쳤다. 은행 CEO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다. 은행에 비해 사회적 책임에서 좀더 자유로운 카드·증권·손해보험 CEO들에 견줘서도 떨어졌다.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129 일대 하나고등학교 부지에는 터닦이 작업이 한창이다. 2010년 개교 예정인 하나고는 정원의 20%를 하나금융 직원 자녀에게 특례입학하도록 해 특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한 시중은행 임원은 “하나금융이 최근 하나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때문에 전문가 그룹이 낮게 평가한 것 같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추진한 일이 오히려 제 밥그릇 챙기기로 비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이 자립형 사립고 설립에 나선 것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으로 양질의 교육을 보편화하겠다”는 김승유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처음으로 세워지는 자립형 사립고에 전체 정원의 20%를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에게 배정하는 ‘특별전형’을 추진하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쪽은 “하나은행 임직원 자녀뿐만 아니라 다문화 자녀, 군인 가족,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소년·소녀 가장, 환경미화원 가정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20% 선발하기 때문에 (임직원 자녀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호찌민 사무소·인도네시아 은행 인수 앞두고…

하지만 하나금융은 애초부터 이런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사회적 배려는 생색내기에 더 가까웠고, 오히려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아 학교 이미지를 끌어올리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나금융이 서울시교육청에 하나고 설립계획안을 낼 당시에는 일반전형으로 65%, 특별전형으로 35%를 뽑을 계획이었다. 특별전형에서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 20%는 그대로였지만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10%에 그쳤다. 대신 예체능 특기자와 수학·과학 경시대회 은상 이상 수상자, 국제 올림피아드 수상자로 정원의 5%를 뽑으려 했다. 하지만 성적 우수자 전형은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폐기됐다.

결국 사회적 배려 대상자 특별전형 비율이 20%로 늘어난 것을 놓고도 ‘마케팅 차원’이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하나금융은 지난 2007년 11월 서울 삼청동 주한 베트남대사관에서 ‘베트남·한국 가족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이날 베트남 출신 남녀와 국제결혼을 한 2만5천여 가족을 위한 공연이 벌어졌다. 당시 김승유 회장은 “평소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사회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이를 위해 다문화 가정 육아 지원은 물론 내년쯤 자녀 장학 지원까지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마케팅 전략이 아닌 순수 사회공헌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해 하나금융은 호찌민 사무소 개설을 필두로 베트남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같은 해 하나은행은 인도네시아 은행 인수를 앞두고 국내 체류 중인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 80여 명을 초청해 전통 축제를 재현하기도 했다.

하나금융의 사회공헌 활동이 마케팅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한 시중은행 부장은 “다문화 가족과 군인 가족은 은행권에서 눈독을 들이는 계층이다. 현재 직업군인만 16만 명에 이른다. 하나금융이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어 군인 자녀를 배려할 경우, 다른 은행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겠나. 다른 은행들도 학교를 세워 영세 상공인 자녀를 위한 특례입학, 중소기업 임직원을 위한 특례입학 등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교육은 무너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의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학생 선발이나 교육과정에 부분적인 자율이 허락되는 것이다. 또 설립재단은 의무적으로 학교 예산의 20%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고 터를 만드는 데 서울시 예산 651억원이 투입됐다. 서울시는 학교 터를 하나금융에 50년 동안 장기 임대할 계획이다. 임대료는 토지 조성 원가(651억원)의 0.5% 수준이다. 서울시민의 혈세가 하나금융에 특혜로 지원된 셈이다. 포항제철고와 광양제철고의 경우는 정원의 60~70%를 임직원 자녀로 선발하고 있지만, 국가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고와 같은 특혜 논란이 일지 않았다.

교총도 “사회적 합의 안 돼” 반대 표명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비판적 지지’를 밝혀온 한국교총도 하나고의 특례입학 제도에 대해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하나금융에선 포항·광양제철고 사례를 들어 직원 자녀 특례입학을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첫째는 서울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둘째는 국민 정서다”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그동안 지방에 설립됐던 자립형 사립고와 달리 하나고는 교육열이 남다른 서울에 들어서는 첫 자립형 사립고다. 하지만 설립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나금융에 과한 특례가 아니냐’는 게 국민 정서다.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학교를 세웠을 경우 그 직원 자녀에게 특례입학을 허용하는 것이 온당한지, 만약 특례입학을 허용할 경우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국민적인 공감대 역시 부족하다는 얘기다. 김 대변인은 구체적인 대안으로 “교원단체와 시민단체, 교육행정기관, 서울시 등 교육 관련 기관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 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삼제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제도기획과장은 “하나고와 관련한 특례입학 문제는 1년 내내 논쟁을 거쳤다. 더 이상 추가 논의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이 학교를 만든 뒤 그 자녀의 특례입학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성 과장은 “지난해 말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선 자율형 사립고의 입학 전형을 시·도교육감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 문제와 관련해선 시·도교육청에서 다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는 2010년 2월 시범운영이 종료될 예정이다. 앞으로 자립형 사립고는 자율형 사립고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는 2010년 전국적으로 30여 개의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학교를 세운 기업의 임직원 자녀 특례입학에 사회적 합의를 세워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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