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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우토로 9년6개월을 96분으로

등록 2008-12-31 05:28 수정 2020-05-02 19:25
김재범(42) 감독

김재범(42) 감독

9년6개월은 많은 일이 가능한 시간이다. 그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연인이 부부가 되는 시간일뿐더러, 필생의 사업을 도모해 마침내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시간 동안 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다큐멘터리만 찍는 김재범(42) 감독은 96분짜리 영화 하나를 만들었다. 9년6개월 만이다.

지난 12월14일, 일본에서 첫 시사회가 열렸다. 마을 근로자복지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영화를 봤다. 같은 시각, 일본 우익단체 회원 20여 명이 확성기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조선인은 조선 땅으로 돌아가라.” 반세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조선인은 그저 조선 땅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그들이 진작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1년, 일제는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2천여 명의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왔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공사는 끝났지만 1300여 명의 조선인은 방치됐다. 말 그대로 풀과 나무, 그리고 흙을 모아 하늘을 겨우 가리고 살았다. 그 조선인들의 동네가 바로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다. 군수기업체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닛산자동차가 그 땅을 서일본식산에 팔면서 재개발사업이 추진됐다. 1989년 우토로 주민들에게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긴긴 법정투쟁이 벌어졌지만,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주민들은 최종 패소했다.

김 감독은 패소 직전인 99년 6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인 징용자 마을의 비극적 최후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9년을 넘겼다. 그동안 김 감독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서울 대학로 주점에서 돈을 모아 경비를 마련했다. 1년에 한두 차례 우토로를 찾아 일주일 이상 머물렀다. 30~60분 분량의 촬영 테이프만 250개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딸에게 묻는다. “집이 철거당하면 넌 어떻게 할 거니?”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아이가 답한다. “그럼, 친구네 집에나 가야지.” 9년이 지나 갸름했던 어머니의 얼굴엔 살집이 붙었다. 아이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됐다. “우토로엔 할머니·할아버지만 남았어. 우리 세대는 별 관심이 없지. 우리한텐 우토로만이 아니라 이세다초 전체가 고향이야.” 어머니는 흐르지도 않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아무 말이 없다.

그동안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조선인과 결혼해 우토로에 살던 일본인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김 감독이 눈물을 삼킨다. 말을 잇지 못한다. 촬영 시작 무렵 그를 매혹시킨 것은 주민들의 생기와 활력이었다. 다들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였다. 유럽의 유대인처럼 ‘게토’에 격리당해 살면서도, 그들과 달리 궁핍에 찌들지 않고 오히려 생의 활력으로 넘쳐나는 우토로 주민의 ‘아름다움’이 김 감독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이제 우토로도 말린 오얏처럼 쭈그러들고 있다. 세월 때문이다. 99년 당시 320여 명 정도 됐던 주민이 지금은 200여 명으로 줄었다. 아이들은 젊은이가 되어 직장과 배필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지난해 절정에 이르렀던 세간의 관심도 줄었다. “우토로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아는 거죠.” 2005년부터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아름다운재단, 등이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7년 11월엔 국회에서 30억원 지원을 의결했다. 모금액까지 더해 44억여원이 마련됐다. 그러나 토지 매입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정부 예산은 아직 한 푼도 우토로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우토로 현지에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그 배경에는 이 지역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총련계 활동가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불신이 있다. 그러는 동안 환율이 올라 땅 매입 비용은 애초 44억원 규모에서 58억원까지 치솟았다.

9년6개월은 많은 일이 가능한 시간이지만, 결국 우토로 주민들에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그리고 민단과 조총련 모두 그들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다. 그러고도 살아지는 삶의 기록이 에 담겨 있다.

김 감독은 내년 2월 초까지 전국을 다니며 ‘공동체 상영 방식’의 시사회를 할 생각이다. “이 다큐를 완성하기까지 발로 걸어온 게 아니라, 무릎으로 기어서 온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건” 가서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다. 후원금 모금과 다큐 관련 문의는 우토로국제대책회의(www.utoro.net)와 아름다운 게토 카페(cafe.daum.net/beautifulghetto)로 하면 된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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