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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1년6개월? 간통은 성매매보다 나쁜가


위헌소송에 이은 옥소리의 용감한 항변 “부부의 불륜을 함께 판단하라”, 선고는 12월17일
등록 2008-12-05 02:36 수정 2020-05-02 19:25

누군가가 헌법에 호소한다는 것은 ‘끝장’을 보자는 이야기거나, ‘끝내’ 자신의 권리를 양도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배우 옥소리(40)씨가 간통죄를 규정하는 형법 제241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것은 지난 1월30일이다. 남편 박철씨가 그를 간통 혐의로 고소한 뒤다. 이 소식은 사회 담당 기자보다 연예 담당 기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인간 옥소리가 어떤 권리를 주장했는지보다 배우 옥소리가 어떤 해프닝을 벌였는지가 초점이 됐다. 그는 이미 ‘결혼을 하고서도 외국인 요리사, 연하의 오페라 가수 등 두 명의 남성과 관계를 가졌다’는 ‘혐의’로 갖은 비난을 받아온 상태였다.

옥소리씨는 간통 혐의로 고소당한 뒤, “간통죄가 성적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가 개인의 성적결정권을 어디까지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연합

옥소리씨는 간통 혐의로 고소당한 뒤, “간통죄가 성적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가 개인의 성적결정권을 어디까지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연합

2001년 1명에서 2008년 5명

그의 성관계는 징역 1년6개월짜리였다. 적어도 검찰이 보기엔 그랬다. 11월26일 경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옥씨에게 징역 1년6개월형을 구형했다. 간통죄의 최고 형량은 징역 2년이다. 이 공판에서 옥씨는 남편 박씨의 ‘성관계’에 대한 법의 판단을 요구했다. “(남편인) 박철은 억대 수익을 벌어도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룸살롱·술집·안마시술소에 다니면서 다 썼다. 여러 여자들과 함께 문란한 성생활을 했다. 나와는 11년간 성관계가 10번에 그쳤다. (내가) 박철보다 죄질이 무겁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라면 죗값을 달게 받겠다.”

여성의 불륜만이 아니라 부부의 불륜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고 항변한 것이다. 나아가 부부의 ‘상호불륜’을 법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단죄할 수 있는지 물은 것이다. 그런 질문을 던진 게 옥씨가 처음은 아니다. ‘간통죄’는 1990년, 1993년, 2001년 세 차례에 걸쳐 이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섰다. 세 번 모두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 가족생활의 보장을 위해 간통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합헌 결정을 받았다.

시대가 변했으므로 헌법으로 표상되는 사회의 이성도 변했을 것이라고, 옥씨와 그 변호인 쪽은 믿었던 것 같다. 지난 10월31일 헌법재판소가 기대에 답했다. 간통죄를 규정한 현행 법률은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9명의 재판관 가운데 5명이 ‘헌법 불합치’ 의견을 냈다. 합헌 의견을 낸 4명 가운데 1명의 재판관만 입장을 바꿨다면, 위헌 결정의 정족수인 6명을 채울 수 있었다. 2001년만 해도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1명에 불과했다. 7년 동안 한국의 ‘헌법적 이성’은 딱 그만큼 좌표를 이동했다.

‘축첩제’ 폐지를 목적으로 1908년 일본 형법에서 본떠 만든 간통죄를 일본은 이미 1947년에 폐지했다. 1969년 프랑스, 1975년 독일, 1978년 스페인, 1990년 스위스, 1995년 아르헨티나, 1996년 오스트리아 등이 차례로 간통죄를 폐지했다. 지금 한국은 도덕의 영역을 국가가 규율하는 드문 사례로 남게 됐다.

간통죄 존치를 주장하는 주된 근거인 ‘여성 보호론’은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는 “‘간통죄’는 여성이 이혼할 때 위자료 청구나 양육권을 찾는 데서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도구적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며 “그러나 그렇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권익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자유를 제한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보다 이혼 때 양육권과 재산분할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민사법상의 세심한 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나 학계의 주장이다.

바람은 배신인가, 범죄인가

옥소리씨의 위헌심판 제청은 묻는다. ‘바람’은 배신인가, 범죄인가. 그리고 그녀의 항변은 묻는다. 혼인관계에서 간통은 성매매보다, 혹은 부부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보다 더 지탄받을 일인가. 임재련 전 한국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은 “옥씨가 ‘간통을 저질렀다’는 사회적 비난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국가가 간통을 처벌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물은 것은 굉장히 용감한 일”이라며 “옥씨 사건을 계기로 간통제 폐지에 관한 논의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태도 변화에 이어 법원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옥씨에 대한 선고는 12월17일 내려진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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