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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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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과 동아일보, 지독한 데자뷔

<동아일보> 탄압했던 유신독재 정권의 재림인가…
당시 고문당한 <동아일보> 최 기자가 최시중 위원장 ‘아이러니’
등록 2008-11-07 07:44 수정 2020-05-02 19:25

#1. 2008년 10월6일 YTN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노조원 6명을 해고하고 8명을 감봉, 13명을 경고 조처하는 등 대규모 징계를 단행했다.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 ‘낙하산 사장’을 거부하는 운동에 나섰던 이들에 대한 보복이었다. 경영진은 사내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노동조합은 주총 이후 80여 일 동안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등 언론 역사에 전례 없는 불법 투쟁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징계받지 않은 조합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된 동료들을 위해 ‘전례 없이’ 수천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2. 1975년 3월8일 는 심의실과 편집국 기획부, 과학부, 출판국 출판부를 없애고 소속 기자 18명을 해고했다. 정부의 사전 기사 검열 등 언론 자유 탄압에 기자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하고 나서자 중앙정보부가 에 광고를 못 싣도록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했는데, 회사가 이에 굴복해 취한 조처였다. 김상만 당시 사장은 “광고 해약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 기구를 축소했다”고 해명했지만 “차라리 우리 모두의 봉급을 깎자”는 기자들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데자뷔(dejavu).
뭔가를 처음 봤는데 이전에도 본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기시감(旣視感).

1974년 10월 유신체제에 맞서 언론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선언을 발표한 뒤 해직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들이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로부터 종로5가 기독교회관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동아투위 제공

1974년 10월 유신체제에 맞서 언론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선언을 발표한 뒤 해직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들이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로부터 종로5가 기독교회관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동아투위 제공

“기자들 때문에 회사 망해” 똑같은 협박

최근 언론계 동향을 보며 데자뷔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33년 전 와 오늘날 YTN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74~75년 유신독재 시절 백지광고 사태와 1980년 언론 통폐합 사건 이후 거의 30년 만에 ‘권력(과 회사)에 의한 기자 해직’이 재현됐기 때문이다. 데자뷔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권력층의 태도를 한번 보자.

1975년 2월3일 박준규 당시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은 미국 〈UPI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업체 광고가 사라진 사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는 지금 기자들 지배 아래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가 발행이나 편집인들의 지배 아래 놓여지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태 해결은 손쉬울 것입니다. 의 주장이 통일되고 규율이 잡히기 전에는 아무도 (광고 재개) 이니셔티브(제안 또는 발의)를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가량 앞선 1월6일에는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 서리가 기자회견에서 “() 광고 문제는 광고를 내달라고 부탁한 사람과 신문사의 관계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시끄럽게 구는 기자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백지광고 사태는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와, 광고는 기업과 언론사 사이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33년이 흐른 2008년 10월1일. 정병국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와의 인터뷰에서 “이달 안에 방송통신위원회가 YTN 재허가 여부를 심사하게 되는데, YTN이 이 사태를 풀어갈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재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재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회사 존속의 문제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9월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YTN이 노조원들을 형사 고발한 것은) 정상적으로 추천을 통해 뽑힌 사장인데 사장실 진입을 못하게 하고 업무를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 구제를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33년 전과 똑같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논리와 한 기업체 내부의 문제인 만큼 법대로 하면 된다는 주장이 공존하는 것이다.

33년 전 와 현재 YTN 사이에는 데자뷔뿐 아니라,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어떤 극적 상황에서 예상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일치하지 않고 거꾸로 나타나는 현상 말이다.

유신정권의 서막이 준비 중이던 1972년 1월28월. 이날치 1면에는 옥외 집회·시위 조처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작성자는 입사 7년차인 정치부 최아무개 기자. 이튿날 최 기자는 서울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 무차별 몽둥이 찜질을 받았다. 정부 기밀을 누설해 사회 혼란을 불러왔다는 이유였다. 취재원을 대라는 요구와 함께 모진 고문이 계속됐다. 하지만 최 기자는 끝내 입을 다물었고, 대신 사표를 쓴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언론계에 잔잔한 파장을 가져왔다. 박권상 당시 편집국장이 직접 최 기자의 집을 찾았고, 너무 부어 사람을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된 최 기자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독한 성고문까지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 9월25일 회사로부터 고발당한 YTN 기자들은 경찰 출두에 앞서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지난 9월25일 회사로부터 고발당한 YTN 기자들은 경찰 출두에 앞서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퇴진은커녕 월급 끊은 ‘낙하산 사장’

중앙정보부의 모진 고문을 받았던 최 기자는 현재 방송통신위원장인 최시중씨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인 최 위원장은 김회선 국정원 2차장,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등과 비밀리에 만나 한국방송 대책을 논의했고, 비슷한 시기 구본홍 YTN 사장과 따로 만나기도 했다. 정부의 언론 장악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총사령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언론 자유 탄압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우두머리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지난 10월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안병욱)는 ‘ 광고탄압 및 강제해직 사건’을 “중앙정보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가와 회사에 사과와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권력과 회사에 의해 길거리로 내쫓겨진 100여 명이 무려 33년 만에 공식 복권된 것이다.

하지만 YTN 사태는 구본홍 사장 출근거부 투쟁 100일이 넘도록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원들은 물론 다른 언론사 기자들, 언론학자들, 언론단체들까지 나서 구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지만, 구 사장은 퇴진은커녕 10월 월급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노조원들의 목을 죄고 있다. 또 10월24일 구 사장에 의해 새로 임명된 강철원 보도국장은 부·팀장 회의에서 “노조에 동조하는 부·차장은 스스로 밝혀라. 이들과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의 태도 또한 완강하다. 매일 수십 명의 조합원들이 나서 구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10월29일에는 고의적인 임금 체불 혐의로 구본홍 사장을 서울지방노동청에 고소하기도 했다. 힘과 정의 가운데 어느 쪽이 승리할지는 아직 미지수인 셈이다.

과연 YTN 사태의 결론은 33년 전 사태 결론의 데자뷔일 것인가, 아이러니일 것인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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