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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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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과 ‘성모’ 중 선택하시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로비 농성에 참여했다가
구사대에 의해 ‘갖다버려진’ 에세이스트 김현진씨 기고
등록 2008-10-10 18:05 수정 2020-05-03 04:25

서울 강남성모병원은 병원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보건의료노조의 협약에 사인하지 않은 유일한 대형 병원이다. 그 이유에 대답하지 않은 것은 물론, 불과 얼마 전에도 일방적으로 구내식당을 외주화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강남성모병원은 9월30일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을 잘 써먹은 28명의 비정규직 간호보조 노동자들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9월30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병원 로비에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2년에서 5년을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계약 마지막 날이었다. 한겨레 이종찬 기자

9월30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병원 로비에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2년에서 5년을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계약 마지막 날이었다. 한겨레 이종찬 기자

“피 검사 어디서 해요?”라고 묻는 환자들

이들이 해온 일은 의료물품 이송과 의료기구 세척·소독·교환, 약품 정리, 환자 대소변 치우기, 환자 목욕과 이송, 침대 시트 갈기, 약 타오기, 중증 환자 체위 변경 등 가장 궂은일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도 숙련도가 필요하다.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 간호보조 노동자들은 이런 일에 충분히 익숙해 있을 뿐 아니라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등 전문성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이 해고되고 처음부터 환자들을 다시 파악해야 하는 파견노동자들로 대체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동안 이들의 손길에 보살핌을 받아오던 환자들이 되는 셈이다.

병원 일은 1분 1초가 아깝도록 바쁘게 돌아간다. 이를 위해서 숙련도는 가장 필요한 전문성 중의 하나다. 해고된 간호보조 노동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 점이다.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돌보고 회복되는 것을 지켜봐온 환자들을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는 것, 익숙지 않은 손에 소중히 돌봐오던 환자들을 넘겨줘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들이 예고된 해고에 저항하기 위해 단어조차 낯선 ‘농성’이라는 것을 하려고 서투르게 병원 밖 공터에 천막을 세우자, 병원 쪽은 농성 하루 만인 9월17일을 시작으로 용역들을 동원해 세 차례나 농성장을 침탈했다. 여성 조합원들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마침내 계약의 마지막 날 9월30일을 맞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로비 농성을 강행했다.

농성이라고 해야 별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몇 명이 침묵하며 로비에 앉아 있는 것이다. 우리 여기 있다고, 제발 자르지 말아달라고, 일하고 싶다고, 오직 피켓과 플래카드로 애원하면서 침묵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초라한 자리에 먹을 것만은 차고 넘친다. 환자들이 오다 가다 음료수며 음식을 챙겨준다. 심지어 중병 환자가 자기 휠체어에 간식을 실어다주며 울고 가기도 했다. 환자들도 이들의 간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환자들은 로비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에게 “피검사 어디서 해요” 하며 친근하게 병원 돌아가는 사정을 묻는다. 이들을 병원의 일원으로 보지 않는 것은 오직 병원 쪽뿐이다.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자, 그리고 본 대로 쓰자는 나름의 상도덕을 확정했기 때문에 기륭전자에서는 단식농성에 합류해 실컷 굶었고, KTX에서는 고공농성을 위해 철탑에 올라갔다. 그리고 강남성모병원에서는 10월1일부터 2일까지 농성장을 사수했다.

바로 10월2일 아침 8시께였다. 그 시각 로비에는 조합원 3명과 나까지 달랑 여성 네 명만이 남아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사대가 올 텐데…. 병원 열기 전에 밀어내려고 할 텐데….” 하필이면 그 시각, 남자들은 밤을 새운 나머지 잠깐 눈을 붙이거나 식사를 하러 가고 없었다. 그렇게 달랑 여자 네 명이었다.

8시 병원 열기 전 닥친 구사대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세 개의 로비 입구로 50명가량의 구사대가 밀려들어왔다. 선봉에는 병원 직원들이, 후방에는 고용된 용역들이 뒤따랐다. 피켓과 플래카드를 뜯기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병원 직원들은 평소 간호보조 노동자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이영미 조합원 대표는 이렇게 직원으로 구성된 구차스러운 구사대에 대해 “그저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고 말한다.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지만, 자기 양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자기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 연민까지 느껴진다”고 잘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라고 말하던 입으로 그들은 소리쳤다. “다 갖다버려!” 그것은 피켓과 플래카드 따위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포함된 말이었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히기 때문에 주먹질이나 발길질이야 없었지만 여성 한 명당 남성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 폭언과 욕설을 해대는 것은 물론, 팔로 발로 몸의 온갖 곳을 밀치고 개처럼 질질 끌고 나갔다. 나도 신발까지 다 벗겨진 채 같이 질질 끌려가는 중 인사팀 여직원이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소리쳤다. “야, 넌 또 누구야! 넌 여기서 일하는 애도 아니잖아!” 여자 4명 대 용역을 포함한 50명. “갖다버려!” “치워버려!”라는 외침 속에 현관까지 내동댕이쳐지기는 순식간이었다. 지나가던 수녀들은 익숙하게 외면했다. 플래카드에 매달려 끌려가며 생각했다. 세상에 ‘갖다버’리고 ‘치워버’릴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주님이 여기에 계셨다면 틀림없이 독사의 자식들아, 회 칠한 무덤 같은 자들아, 라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을 것이다.

강남성모병원은 드디어 그 이름자에 쓰는 단어 중 하나를 택할 때가 왔다. ‘강남’과 ‘성모’, 두 가지 모두 가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아침, 울부짖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함께 개처럼 질질 끌려나가 내동댕이쳐지면서 확실히 알았다. 적어도 이들이 택한 것이 ‘성모’ 쪽은 아니라는 사실을. 차라리 종교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구호로 새 병원의 개관을 축하해야 할 것 같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욕설과 폭언과 폭력을 망설이지 않는 노도와 같은 기세를 보니, 문제도 아닐 것 같다. 너희 중 헐벗고 가난하고 아픈 자가 다 나였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어머님 되시는 성모님이 보고 계신데….

성모님, 눈을 가리소서

그러나 성모님이 보고 계시건 말건 정문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나서도 폭력은 중단되지 않았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조단식 중이었기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굳이 플래카드를 빼앗겠다는 용역들과 뒤엉켜 10분 넘는 실랑이를 계속했다. 인사팀의 다른 여직원이 와서 플래카드를 뺏으며 삿대질을 해댔다. “야, 넌 니네 직장 가서 니 일이나 해!” 이 무례함은 아까의 상사 여직원에게 배운 모양이다. 다른 플래카드는 위험천만하게도 사람들이 뒤엉킨 그 아수라장 속에서 병원 인사팀 직원들이 가위를 들이대 조각조각냈다. “굳이 막말 나오게 할 거야?” 하며 윽박지르다가 지겨웠는지 지쳤는지 어쨌든 우리를 ‘갖다버린’ 데 성공한 용역들은 “야, 됐어. 그냥 놔둬”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사라졌다. 다 구겨진 플래카드를 껴안은 채 맨발로 서 있는데, 조합원 하나가 오더니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같이 우는 수밖에 없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너희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다. 저들이 저들끼리만 즐거워하니,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것은 누가 하란 말인가.

로비 농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갖다버려’도 또 들어가 앉아 있다. 10월2일 아침 이후 3일까지 더이상 폭력은 없었지만 그들은 또 ‘갖다버’릴 것이고 내가 하루 겪은 이 일을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매일 겪어야 할 것이다. 정문 앞에 서 계신 가엾은 성모님 눈에 눈가리개라도 해드리러 가야겠다. 그러나 성모께서 눈을 가리신다 해도 이 노동자들이 침묵한다면 돌들이라도 소리칠 것이다. 누군가는 이들과 함께 계속 소리쳐야 한다. 이들이 넘어지면, 다음은 바로 당신의 차례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의.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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