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호 ‘삼성전자, 백혈병 공포 확산’ 보도 뒤, 다른 반도체와 LCD로 제보 범위 넓어져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월6일 오후 6시, 서울 남대문로 삼성 본사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활동가들과 삼성 해고노동자,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음향 장비가 설치된 5t짜리 트럭을 몰고 와 민중가요를 틀었고,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전시물을 설치했다.
“LCD 쪽 공장 여건이 더 나쁜 편”
김재광 노무사는 연단에 올라 “오늘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에 걸려 숨진 지 1년 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집회장 구석에 마련된 황씨의 영정 사진 앞에는 촛대 두 개, 하얀 국화꽃 몇 다발, 타다 남은 심지가 꽂힌 향로 등이 놓여 있었다. 황씨의 부친 황창기(54)씨는 “딸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닭장차’ 세 대를 끌고 와 현장을 지킨 의경들은 서둘러 밥을 먹었다.
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이종란 노무사는 “황씨가 숨지고 나서 지난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황창기씨의 제보로 시작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진상규명 활동은 지난해 11월20일 대책위 발족을 가능케 했다. 대책위는 두 달 남짓한 활동 끝에 지난 1월31일 노동부의 삼성반도체 노동자 건강실태 일제 조사를 이끌어냈다.
대책위의 홈페이지(cafe.daum.net/samsunglabor)에는 반도체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또는 그와 유사한 혈액암에 걸렸다는 제보가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제보의 범위가 삼성을 넘어 하이닉스 등 다른 반도체 생산업체 쪽으로, 또 반도체를 넘어 생산 과정이 비슷한 LCD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못한 한 여성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청주에 있는 LG반도체(현 하이닉스반도체)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다 감기와 비슷하게 열이 나고 몸에 멍이 들어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말했다. 대전 성모병원에서 확인한 병명은 혈액암의 일종인 재생불량성빈혈이었다. 그는 1999년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다. “제가 병에 걸리기 6개월 전쯤 같이 일하는 아저씨도 백혈병으로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기자의 메일로 사연을 전해온 한 남성 엔지니어는 “공장의 여건은 LCD 쪽이 더 나쁜 편”이라며 “실제로 3년 전 백혈병으로 숨진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이름과 소속을 밝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을 씁니다. 회사 내에서 환경조사는 하고 있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회사 몰래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삼성 관계자 “전체 평균보다 낮은 수준”
그러나 삼성전자 쪽에선 백혈병 발병률이 높지 않으며, 업무 조건과 백혈병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삼성 관계자는 “1998년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은 7명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백혈병은 우리나라에서 2만3천 명 가운데 한 사람 정도가 걸리는 병인 것으로 확인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책위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기흥과 온양 공장의 백혈병 발생 빈도를 따져봤더니 우리나라 전체 평균보다 낮은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일단 반도체와 관련해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결과를 기다리는 게 먼저다.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대책위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소개돼 최근 현장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백혈병과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 유해물질은 벤젠뿐으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벤젠은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책위 쪽에서는 “다른 유해물질이 백혈병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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