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타이완의 뜨거운 한류(韓流)

등록 2001-03-27 15:00 수정 2020-05-02 19:21

한국 음식·드라마 이어 대중음악도 인기절정 “HOT 해체하면 목 맬거야!”

물건을 사면 항상 계산기에 찍힌 액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서둘러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내밀었다. 대만에선 어색한 영어와 짧은 중국어로 ‘커밍아웃’하기보다 입을 ‘꾹’ 다물기로 진작에 작심했던 탓이다. 하지만 꼭 다문 입술을 뜻밖의 만남에서 열게 됐다.

한국어 랩이 쏟아지는 타이페이 거리

“그 뭐냐. 아줌마들은 차인표, 애들은 H.O.T. 요즘 난리야.”

대만의 한국거리 쫑싱지에(中興街)에서 만난 한국 출신 화교 아저씨는 한마디로 ‘한류’(韓流·중국 내 한국 대중문화 바람)를 요약했다. 90년대 말 클론이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시작된 ‘한류’는 디바 등 여자 가수들의 진출로 급류를 탔고, H.O.T를 통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최근 불어닥친 한국 드라마 열풍이 ‘한류’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두개 채널에서 매일 한국 드라마를 한다”며 화교 아저씨가 TV를 켜자 채널 29번에서 가 나왔다. 채널을 돌리자 이번엔 이 한창이었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송승헌, 송혜교, 원빈, 차인표 등은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드라마뿐이 아니다. 한국음식도 대만 사람들의 입맛을 파고들고 있다.

토요일인 3월10일 오후 6시. 명동처럼 휘황한 타이베이 시멘(西門) 거리에 들어서자 ‘제주’라는 간판을 단 한국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1, 2, 3층에 150석’이라고 쓰인 가게 안에는 벌써 손님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몇년 전부터 순두부 백반,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이 인기를 끌어 대만 거리 곳곳에 한국 음식점들이 생기고 있다. 반나절 시멘 거리를 쏘다니며 본 한국 음식점만 두세 군데. 이 거리에는 모두 다섯곳의 한국 음식점이 있다.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 출신 화교들이다. 한국에서 중국 음식을 팔던 이들이 이제 중국에서 한국 음식을 팔고 있는 것이다. 한 화교는 “꼭 한국 식당이 아니어도 김치를 내놓는 곳이 많다”고 전한다. 곳곳에 한국 음식점이 늘어나고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한류는 대중음악 분야에서 가장 거세다. 시멘 거리를 거닐며 한국 가요를 듣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야∼ 니가 속한 세상 속에 넌 너무너무나도 아름다운 세상 속에∼.”

후두두 쏟아지기 시작한 빗줄기에 맞춰 H.O.T의 랩이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번화가를 쏘다니는 추레한 외국인의 모국어 갈급증을 달래주는 건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 가요였다. 주로 시내 옷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산 댄스뮤직은 대만에서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이었다. 볼거리를 찾아 헤매다 서서히 지쳐갈 무렵 한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탤런트 송혜교, 원빈부터 핑클, 신화, 해산된 젝스키스까지. 스티커 사진을 찍는 가게 ‘포토 플라자’ 앞은 온통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심지어 S.E.S의 화장품 광고 포스터까지 붙여놓았다. 다닥다닥 붙은 포스터 사이의 비디오 모니터에서는 H.O.T의 공연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두 소녀가 이들의 히트곡 를 따라 흥얼거리며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흘러도 소녀들은 떠날 줄 몰랐다.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만국 공통어 “익스큐스 미”로 숨겨진 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다. “익스 큐스 미(Excuse me), 아임 어 코리안 저널리스트(I’m a Korean journalist).”

한국말 몇개쯤은 꿰고 있는 소녀들

“코리아”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소녀는 “안녕하세요”라며 어눌한 발음으로 인사를 한다. 이름을 물어보자 또박또박 한글로 ‘서혜정, 희소능’이란 이름을 적는 두 소녀. 자신들의 이름인 슈후이쩡(14·徐慧正)과 지샤오넝(14·姬笑能)을 한국 발음으로 쓴 것이다. 한국에서 온 화교인 친구 엄마가 알려줬단다. H.O.T 팬클럽의 상징색은 흰색, S.E.S는 보라색, 플라이 투더 스카이는 하늘색이란 사실까지 꿰고 있는 슈와 지. “이들이 같은 기획사 소속이란 걸 아냐?”고 묻자 즉시 “SM, 이수만”이란 대답이 튀어나온다. 신화의 혜성에게 팬레터를 썼는데 전할 방법이 없다며 “주소를 아느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하자 이번에는 오늘 샀다며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자랑한다. H.O.T가 표지로 나온 한국 잡지다. H.O.T의 팬이면서 신화의 팬일 수 있고, 더불어 god도 좋아한다는 두 소녀에게 ‘한국’은 하나의 호감어린 코드로 자리잡은 듯했다. 서투른 영어로 “언젠가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거듭 말하는 두 소녀와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 낯익은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오빠, 오빠.”

아까부터 주변을 얼쩡거리던 예닐곱명의 소녀들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몇은 악 소리를 지르며 포토 플라자 안으로 도망가고, 몇은 다가와 “대만 H.O.T 팬클럽”이라며 말을 건넨다. 대만 팬클럽은 H.O.T가 첫 대만 공연을 가진 직후인 99년 4월 결성됐다. 현재 팬클럽 회원은 2천여명. 2300만명의 대만 인구 중 2천명이니 1만분의 1이 넘는 인연인 셈이다.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우이징(23·吳怡靜)이 “회장”이라며 나서자 주변의 소녀들은 그를 “강타 엄마”라고 소개한다. 팬클럽을 하기에는 나이가 들어보이는 그를 놀리는 것이다. 이번엔 회장 옆에 있던 얼굴이 거무튀튀한 친구가 놀림감이 된다. 몇몇이 그를 가리키며 “기미, 기미!”라고 놀리자 그는 “하지마! 하지마!”라며 손사래를 친다. 자주 쓰는 한국말 몇개쯤은 꿰고 있을 만큼 이들은 한국에 관심이 크다.

대만은 음악분야를 국내음악, 동양음악, 외국음악으로 나누는데 지난해 발매된 H.O.T의 4집은 3주간 동양음악 음반 판매에서 1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등 대만 음악잡지의 동양가수 인기순위에서 H.O.T는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문화권에서 한국음악이 인기 높은 이유를 “중국어 랩보다 한국어 랩이 훨씬 강렬하게 들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8월에는 H.O.T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만큼 그들을 좋아한다는 팬클럽 회원들. “올 여름 휴가 때는 더 많은 회원들이 한국에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던 이들도 “가장 인기가 좋은 멤버가 누구냐?”라고 질문을 던지자 이내 대답이 엇갈린다. “강타!” “토니!” “우혁!”이란 답이 다투어 쏟아진 것이다. 서로 “강타!” “희준!” 하며 점점 목청을 높이더니 이내 “저스트(Just) H.O.T”란 말로 잠잠해진다. “한국 가수들은 다 좋다”던 슈후이쩡, 지샤오넝과는 달리 한국 가수에 대한 이들의 취향은 좀 더 세분화돼 있다. ‘S.E.S’ 하면 그저 “소 소(so so)”, ‘보아’ 하면 “노! 노!(no no)”, god하면 열을 내며 “안 돼! 절대 안 돼!”라고 외치는 식이다. 열광하는 스타에 대한 애정을 넘어 ‘오빠’의 인기를 위협하는 다른 스타에 대한 거부로까지 나간 한국의 팬덤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H.O.T 해체 위기설을 꺼내자 ‘기미’는 목을 매는 시늉을 한다. 팬클럽 회보와 이메일를 건네받고 떠나려는 순간 “한류”라며 다짜고짜 손을 끈다.

“우리의 생계는 HOT에 달렸다”

이끄는 대로 따라가보니 ‘한류풍’(韓流風)이란 가게가 나왔다. 대만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시멘에 한국 대중문화 전문점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평 남짓한 공간에 가요 악보, 연예인 사진 등속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한켠에 마련된 진열장에는 목걸이, 시계, 음료수 등 H.O.T 용품을 따로 모아놓았다. “예전엔 핑클, S.E.S 같은 여자 가수들도 인기가 좋았다”고 운을 떼는 가게주인 장전슈안(49·張振衒). 스무살까지 대구에 살다가 19년 전 대만으로 옮겨왔다는 이 화교의 생계는 지금 H.O.T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우리 장사 70%는 H.O.T가 해준다”며 “요즘 해체설이 나돌아 걱정”이라고 말한다. 가게 주인 부부를 친숙하게 “오빠! 오빠!” “언니! 언니!”라고 부르는 손님들. 한류팬들에게 나이 많은 남자는 무조건 ‘오빠’, 나이든 여자는 무조건 ‘언니’인 것이다. 한 소녀에게 주인을 가리키며 “‘오빠’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하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저씨, 아저씨”라고 대꾸한다. 비가 더욱 거세진 밤 10시께, 지하철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따라나선 소녀들과 함께 걸어가며 70∼80년대 몰아쳤던 한국의 ‘홍콩 영화붐’을 떠올렸다.
한국의 30∼40대는 사춘기 시절 이소룡의 영화 에 취했고, 20∼30대는 을 보기 위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의 중류(中流)는 거셌다. 그때 한국의 10대들은 이소룡의 “아뵤∼” 소리를 흉내내며 중국문화를 배우고, 주윤발처럼 성냥을 질겅질겅 씹으며 홍콩의 뒷골목을 이해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이들의 기억 속에 이소룡과 주윤발은 중국에 대한 원체험으로 남아 있을 터. 이처럼 사춘기를 장악한 문화체험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80∼90년대 한국의 10대들이 홍콩영화를 보며 동경과 호의를 키운 것처럼 대만의 한류팬들도 가요를 들으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키워가고 있다.

타이페이=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