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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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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영씨에게

등록 2006-12-14 15:00 수정 2020-05-02 19:24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인영’이라는 가명을 붙여 답장을 띄웁니다. 혹시 실명을 쓰는 게 불편함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637호(12월5일)가 표지이야기로 다룬 외고 유학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격려이든, 항의이든, 제보이든 많은 연락과 이메일이 왔습니다. 인영씨처럼 멀리 미국의 대학에서 글을 보내준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시 유학반 이야기를 띄우는 것은 고마운 관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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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가지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인영씨의 항의처럼, 모든 외고에서 유학반 내신성적이 ‘부풀려진’ 것은 아닙니다. 한영·고양외고가 70~80점대 성적에 A를 준 것이나, 서울·이화·한영외고가 AP(미국 대학과목 선이수 제도) 시험을 위해 중간고사를 면제해 준 것 등을 모든 외고의 사례로 예단해서도 안됩니다. 유학반의 정확한 실상을 확인하는 작업은 ‘현재진행형’ 상태이니까요.

더불어, 다른 독자의 말처럼 “충실히 학교 공부하랴 유학 준비하랴 3년간 죽도록 고생한 외고 학생들”도 불필요한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지만 인영씨, 인영씨가 보고 경험한 것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주길 부탁드립니다. 그 세상의 엿보기를, 종양이 터진 한영외고가 아닌 서울 시내 한 외고에서 근무하는 교사의 지난해 경험담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역시 저희에게 온 이메일의 일부입니다.

“유학반에서 처음 소집한 학부형 회의는 거의 회의라기보다는 싸움판이었습니다. 내신성적을 자체적으로 산정해서 성적표를 제작해달라는 식의 상식선에는 이해할 수 없는 학부형들의 요구들이 있었습니다. ○○교는 80점까지 A를 준다더라, ○○교는 정규 수업을 어떻게 해준다더라 등등의 학부형들이 근거로 내놓는 사실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사는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성적 부풀리기’에 관한 기사가 지금이라도 보도된 것은 다행입니다. 문제는 드러나야 치유가 되겠지요.”

기실 이 외고 유학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던지고 싶었던 화두는 학벌 지상주의에 내팽개쳐진 어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였습니다.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일부 유학반 학부모들과 학교가 어우러져 보여준 도덕성의 상실, 교육당국의 책임 방기 같은 것 말입니다.

의 고발은 작은 출발입니다. 굽은 유학반을 바로 펴는 단초로서의 공론화 과정일 따름입니다. 유학반 정상화를 위해 교육당국과 학교, 학부모 등이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 짐을 나눠 지는 크고 중요한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은 유학반의 치유 과정을 성실하게 추적할 겁니다. 물론 치유를 위해 곪은 환부를 드러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멀리 이국 땅에서 건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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