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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1호의 날개는 꺾이는가

등록 2006-10-24 15:00 수정 2020-05-02 19:24

양쪽 가슴 절제 수술 뒤 전역 통지서 받은 헬기 조종사 피우진 중령… 군 생활 전혀 문제 없는데도 ‘구닥다리’ 시행규칙은 심신장애 2급 판정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한민국 1호 여성 헬기 조종사의 날개는 결국 꺾이고 마는 것일까. 피우진(51) 중령은 10월15일 다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건물을 찾았다. 퇴역 논란이 있은 뒤, 10번은 넘게 국방부를 찾아온 것 같다며 피 중령은 씁쓸하게 웃었다.

가장 남성적 조직에서 ‘여군’으로 살다

이날 피 중령은 ‘퇴역처분취소’ 소청장을 국방부 민원실에 제출했다. 피 중령의 소청장을 받아든 민원실의 여군도 맏언니 격인 피 중령을 알아보며 인사했다. 피 중령은 “‘짬밥’으로 보면 여성 군인 가운데 내가 두 번째로 높다”고 말했다.

피 중령은 가장 남성적인 조직에 들어와서 여성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그 일터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자르고, 그는 전역 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한국 최초 여성 헬기조종사는 이미 육군 헬기 UH-1H의 조종간도 놓았다.

“하늘을 날고 싶어서 조종사가 된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내 부하 여군들을 낙하산에 태워서 땅으로 뿌려주고 싶었지요.”

피 중령이 입대한 건 1979년. 당시 여군은 따로 관리받았다. 병과는 ‘여군’이었다. 행정·기술·전투·의무·법무와 같은 병과와 ‘여군’은 동격이었다. 여군에겐 이같은 보직이 없었다. 여군이 보직이었다. 여군은 군 사령부급 부대를 지원하는 수밖에 없었고, 수행 업무란 게 행정 지원이 전부였다. 그러던 1981년 육군 항공단에서 여성 헬기조종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붙은 것이다.

피 중령은 남성 군인들과 똑같이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똑같이 비행 조종술을 익히고 지옥같은 체력 훈련을 통과했다. 34명이 들어가서 수료할 때 나온 군인은 19명뿐. 여군 지원자 3명은 모두 수료했다. 피 중령은 그해 지금은 전역한 김복선 대위, 윤명숙 중위와 함께 육군항공단의 첫 여성 헬기조종사라는 영광을 안았다.

피 중령과 함께 하늘을 누빈 건 수송헬기 UH-1H였다. 헬기와 한 몸이 되어 하늘을 날면 좋았다. 비행 궤적으로 그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군임에도 임무(비행)가 주어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파견’요원이었어요. 소속은 여전히 ‘여군’이었던 거죠.”

부조종사, 정조종사, 교관조종사, 시험기 조종사 등 승급을 해야 했지만, 파견 여군에게는 이에 필요한 교육 훈련의 기회가 제한됐다. 남성 동기들은 진급했지만, 이들은 뒤처지기만 했다. 두 여성 동기는 이미 전역했고, 1985년 피 중령은 다시 여군으로 복귀했다.

그러다가 1989년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여군에게도 병과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피 중령도 육군 항공단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6년여의 공백 때문에 계급에 비해 비행 시간은 적었다. 그는 “경력을 만회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군 생활에서 항상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멀쩡한 걸 잘라서 지키고 싶었는데…”

“1995년 2군단에 배치됐는데, 그때 나에게 소대장을 하라고 했어요. 당시 내가 소령이었는데, 어떻게 소령을 달고 소대장을 하느냐고(소대장은 보통 소위나 중위가 맡는다)… 난 안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군은 명령으로 시작해 복종으로 끝나는 곳이었다. 그는 소령 계급을 달고 여섯 달 동안 소대장 생활을 했다. 그해 가을 중령으로 진급하고 나서야 중대장을 줬다. 그래봤자 ‘중령 중대장’이었다. 보통이라면 대위가 중대장을 맡을 터였다.

그렇게 피 중령은 군 생활을 버텨왔다. 하지만 하늘은 냉혹했다. 그는 2002년 10월 왼쪽 가슴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여태까지의 삶처럼 단호했다. 그가 낸 소청장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소청인(피 중령)은 유방 절제에 대해서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데다 평소 항공비행이나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유방을 양쪽 다 절제해달라고 의사에게 요청했습니다. 의사는 왜 멀쩡한 오른쪽 유방까지 절제하느냐고 반대했지만, 항공 조종사라는 소청인의 특수한 신분을 고려해 마침내 양쪽 절제수술을 했습니다.”

피 중령은 “군 생활을 하면서 항상 가슴이 거치적거렸다”며 “소신껏 한 행동이므로 후회는 없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소속부대인 육군항공학교의 도움으로 한 달 만에 군에 복귀했고, 별 탈 없이 항공학교 학생대장으로 조종사의 길을 걸었다.

비극이 시작된 건 2005년이었다. 육군 논산병원에서 현역 간부 정례 신체검사를 받던 중 심전도 검사에서 양쪽 유방이 없는 것을 본 간호장교에 의해 이 사실이 정식으로 보고됐고, 논산병원 일반외과는 “육군 규정에 따라야 한다”며 항공조종장교 불합격을 선언했다. 이어 10월에는 추가 의무조사를 통해 심신장애등급 2급을 판정받았다. ‘양쪽 유방 절제’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심신장애등급 2급에 해당된다. 장애등급 1~9급이면,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전역 처분된다. 멀쩡한 유방 하나를 잘라서라도 조종사로서의 삶을 지키고 싶었던 피 중령의 꿈이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남성 군인과 똑같이 가슴이 없다는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군 생활과 무관한 신체 일부가 없다는 이유로 복무 희망자를 강제 전역시키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나의 복무 능력은 충분합니다.”

피 중령은 지난해 체력검정 보고서를 보여줬다. 팔굽혀펴기 23회 특급, 윗몸일으키기 58회 특급, 1.5km 달리기 9분30초 1급. 그런 피 중령의 주장에 국방부도 공감했고, 이어 인사·의무 등 관련 부서가 모여 현실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 시행규칙 개정 작업을 벌였다. 전역심사위원회도 이런 사실을 감안해 피 중령에게도 ‘6달 동안 전역을 보류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여태껏 규칙은 개정되지 않았고, 보류 기간인 여섯 달이 지나 피 중령은 9월19일 최종 퇴역 처분을 받았다.

마지막 희망은 인사 소청심사

국방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관련 부서가 모여 정책회의를 벌이고 있는 중이지만, 시행 방법을 두고 이견이 있어 올해 안에 제정해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 중령뿐만 아니라 다른 암 질환자들이 관련돼 있어서 복잡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피 중령이 마지막으로 걸고 있는 희망은 인사 소청심사다. 하지만 이미 내려진 전역 처분을 뒤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25년 동안 1300여 시간을 날았다. 남성의 하늘에서 끝내 추락하지 않고 버티던 피 중령의 날개는 이대로 꺾이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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