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부터 달동네들이 자취를 감추며 도시 빈민들의 숙소로 떠올라… 화재 참사 이후 사회의 ‘공적’이 됐지만 그곳마저 없어지면 또 어디로…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것들이 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거북선에는 거북이가 없으며, 개떡에는 개가 없고, ‘고시원’(考試院)에는 고시생이 없다. ‘고시’란 말에서는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의미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일상어 속 형태소의 뜻같이 생경한 느낌이 난다. 2006년 8월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고시원’은 어느새 도심 빈민들이 이용하는 쪽방이나 여인숙의 다른 이름이 됐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파노라마
지난 7월19일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잠실 나우고시텔 화재 사건 이후 고시원은 사회에서 몰아내야 할 공적이 됐다.
언론들은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고시원을 고발하는 기사들을 쏟아냈고, 이에 화답하듯 소방방재청은 7월24일 “고시원에 대한 긴급 특별점검을 벌이고,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소방방재청은 2006년 1월1일 현재 전국에 4211개의 고시원이 있다고 말했지만,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하는 곳”을 뜻하는 ‘전통적’ 의미의 고시원은 서울 신림동을 빼곤 찾아보기 힘들다.
고시원은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일까. 정원오 성공회대 교수는 “정확한 시기는 알기 힘들지만 대략 1980년 안팎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주택 재개발 열풍으로 서울의 이름난 달동네들이 아파트 숲으로 바뀌어갔고, 도심 빈민들이 값싸게 들어가 살 수 있는 집들도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고시원의 ‘쪽방’화가 이뤄진 것은 그 무렵부터다. 소설가 박민규는 2004년 6월 에 발표한 단편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 그 시기의 정점을 1991년으로 꼽고 있다. “아무튼 1991년은 일용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의 종업원들이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자, 그런 고시원에서 아직도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
그렇지만 사회가 그 변화를 알아채기까지는 2~3년 정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신문 지면에 변화된 고시원의 모습이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들어서면서부터다. 1994년 2월4일치에 실린 기사 ‘고시원에 직장인 붐빈다’를 시작으로 ‘고시원 가출·탈선 10대 은신처’( 1998년 6월12일치), ‘두 평의 둥지 고시원 각광, 한 달 10만~30만원에’( 1998년 8월27일치), ‘벌집 강남에 우후죽순/ IMF 이후 100여 곳 생겨 성업’( 1998년 9월26일 19면) 등 비슷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저소득층 주민들이 한데 모인 쪽방·비닐하우스촌·영구임대아파트에 견줘 접근이 어려운 고시원은 적절한 사회적 개입을 받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로 방치된다. 그사이 서울의 고시원 수는 2001년 811개, 2002년 1229개, 2003년 1507개에서 2006년 2814개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고시원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얽혀 산다. 성공회대 보고서에는 심층면접이 이뤄진 고시원 거주자 15명의 생애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람들은 갑자기 닥쳐온 불행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이삿짐센터 일용노동자 안아무개(46·이하 당시 나이)씨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한때는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요리사였지만 형사사건의 공범자로 오인돼 구속됐다가 3심에서 무죄로 풀려나왔다. 이후 외환위기가 닥쳤고 다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매달 이삿짐센터에서 등짐을 지고 60만~70만원을 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영등포 주위의 고시원 3곳을 전전했다. 그는 이따금 영등포 무료급식소를 찾아 밥을 먹는다.
또 다른 쉼터, 서울역 근처 만화방
일용 노동자 김아무개(61)씨는 서울이 고향이다. 그는 서대문 충정로에서 나고 자랐다. 고시원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1년 7월부터다. 예전에 백화점 판매원으로 벌어먹었고, 1998년 부산 서면에서 구두 공장을 운영하다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는 한동안 노숙자로 생활하다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 ‘자유의 집’에서 1년 동안 머문 뒤 고시원으로 이동했다. 옌볜에서 온 조선족 정아무개(45)씨는 액세서리 공장에 다니는 불법 체류자고, 1996년 경영하던 무역회사를 말아먹은 양아무개씨는 과일 하역작업을 해 먹고산다. 천안에서 올라온 조아무개(27·여)씨는 여의도 쪽의 직장에 다니는데 목돈이 없는데다 집에 손을 벌리기도 싫어 고시원에 입주했다. 그는 사무경리직으로 6년 동안 일했고,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그 고시원에조차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서울역 근처 만화방이다. 염천교에서 서울역 광장을 지나 숙대입구역 쪽으로 걷다 보면 천국만화·광장만화·쉼터만화·경일만화·제일만화 등 허름한 만화가게 간판들이 행인의 눈길을 끈다. 이곳에 만화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이다. 천국만화 주인 김동순(51)씨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우리 가게 단골”이라고 말했다. 천국만화는 2층에서는 만화를 보고, 3층에서는 잠을 자는 구조다. 그는 이곳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15명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을 ‘식구’라고 불렀다. “우리 가게는 사실상 그분들 집이에요. 주거지이면서 인력시장 기능도 겸하고 있죠. 고시원은 아무래도 답답하고, 사람들끼리 어울리지 못하니까 이곳을 찾는 거죠. 일자리 정보도 많이 돌아다니고요.” 그는 이곳을 인수한 지 올해로 4년째 된다고 했다. 입장료는 3시간에 2천원, 잠을 자려면 4천원, 하루 종일 있으려면 8천원, 한 달치를 한꺼번에 끊으면 15만원이다. 3층에 올라가보니 사우나 수면실 의자 20여 개가 배치돼 있었는데, 김씨는 “지금은 비어 있지만 모두 주인이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라면은 공깃밥을 얹어 2500원에 팔고, 세면과 빨래도 가능하다. 제일만화에는 사물함 35개를 만들어 이곳을 찾는 일용직 노동자나 노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제일만화에 7년 동안 단골로 다니던 ‘남씨’는 이제 가게의 종업원이 됐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한때 건설 인부로 일했던 60대 노동자다. 그는 “언제부터 이곳에 머물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난 잘 모른다”며 답하지 않았다.
판자촌, 쪽방, 비닐하우스촌, 고시원…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고시원에 익숙해졌다. 고시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큰 불로 사람들이 숨졌을 때뿐이다(2003년 이후 일어난 7번의 고시원 사고에서 14명이 숨졌다). 그에 따라 고시원 기사는 신문의 사회면이 아닌 부동산면이나 재테크면을 장식하게 된다. 2000년 8월11일치 재테크면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명예퇴직을 당한 뒤 “지하에는 사우나, 2층에는 고시원”을 열어 성공한 최아무개(당시 43살)씨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그는 ‘치밀한 사전 조사’로 7억원을 투자해 한 달에 2158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사고 이후, 소방방재청은 현재 등록제로 돼 있는 고시원을 신고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고시원의 수는 줄어들고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그보다 더 열악한 공간으로 이동을 강요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고시원에서 화재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거리에서 노숙의 고단함을 견뎌야 한다. 소설가 박민규는 소설에서 “그후 겨울이 왔을 때, (고시원)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 이후 1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고시원 사람들은 여전히 눈을 들어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한다. 1950~60년대 ‘하꼬방’과 ‘판자촌’에서 쪽방·무허가건물·비닐하우스촌·고시원까지 자주 이름을 바꿔왔지만, 삶의 냉혹함은 그때 그 시절에 견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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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은 가뜩이나 불완전한 우리나라 사회복지 그물망의 ‘블랙홀’이다. 고시원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화재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2006년 7월25일치)에서 드러나듯 대형 사고만 나지 않으면 그만인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데 머물고 있다.
학계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된 쪽방·비닐하우스촌 등과 달리 고시원을 주제로 작성된 연구는 2004년 12월에 발표된 연구보고서 딱 1권(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취약계층의 도심생활 실태와 정책적 함의-서울 도심지 고시원 이용자를 중심으로)뿐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섣불리 고시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 도심 빈민들이 값싸게 머무를 수 있는 주거지가 사라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시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는 안전하고 값싼 주거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수행의 계기는.
=그동안 도심 빈민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노숙자들이 상황에 따라 쪽방·찜질방·고시원·만화가게 등을 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시원을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최근의 현상이어서, 최근 변화된 빈곤의 특성과 빈곤 양상의 변화를 잘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구는 어떻게 이뤄졌나.
=연구자 2명이 서울 동대문과 영등포 쪽 고시원에서 2주~1달 동안 직접 생활하면서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채록했다. 고시원 안에는 20대 학생에서부터 77살 노인, 유흥업소에 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중국에 가족을 놓고 온 조선족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시원의 폐쇄적인 특성상 관찰자들의 내밀한 얘기를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곧 성공해 이곳을 나가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대안은 뭔가.
=고시원은 매우 열악한 주거 공간이다. 가장 좋은 대안은 이런 나쁜 주거 공간을 모두 없애는 것이지만, 그곳에서라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는 결과를 낳을 게 뻔하다. 시설 안전점검을 강화하고 고시원을 주로 이용하는 계층인 독신자들을 위한 값싼 주거 공간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매입형 임대주택 사업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심 주변에 값싼 연립주택을 사들인 뒤 개조해 고시원의 수요 계층인 저소득층 독신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대안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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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의 특징은 보증금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한 달에 20만원 안팎의 돈으로 안정적인 잠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업주 처지에서도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현금 장사를 할 수 있어 쏠쏠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화재 등의 사고다. 고시원에는 비상구·소화기·유도등 같은 안전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화재가 나면 단번에 대형 사고로 연결된다. 전국의 4211개 업소 가운데 75개는 지하에 있고, 3712개소는 150㎡(45평) 이상이다. 방 1개당 면적을 약 1평으로 계산하면, 고시원 1곳에 20개 이상의 객실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2004년 성공회대 조사 결과 고시원 사람들의 평균 생활비는 ‘50만원 이하’, 직업은 ‘단순노무직’이 가장 많았다(그래프 참조).
고시원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시작된 것은 2002년부터다. 소방방재청은 ‘소방법 시행규칙’을 바꿔 2003년 1월17일 이후 새로 지어지는 고시원에는 비상구 등 안전시설을 설치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기존 고시원들은 2006년 5월30일까지 안전시설을 갖추도록 못박았지만, 업주들의 반발로 시행이 1년 유예됐다. 소방방재청은 “그 때문에 이번 참사가 난 것이 아니냐”는 언론의 추궁을 받기도 했다. 법을 지키려면 방마다 소화기·비상벨·비상등을 구비해야 한다.
소방방재청은 7월24일부터 보름 동안 전국 4211개 고시원을 대상으로 일제 점검에 나섰다. 불법 용도변경이 드러나면 건축법에 따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피난·방화시설을 잠그거나 못쓰게 만든 경우 2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3월 제정) 시행령·시행규칙을 만들 때 고시원 등의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고시원의 주무 부서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소방방재청이란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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