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황우석 교수의 연구용 난자 취득 과정에 대한 윤리 논란이 본인의 사과 기자회견으로 마무리되기가 무섭게, 지난 5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황 교수 논문의 ‘데이터 조작 의혹’이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처음 문제 제기를 한 문화방송은 취재 과정에서 보인 비윤리적 태도 때문에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할 명분을 잃고 보수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 있어, 문제의 본질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데이터 조작 가능성에 대한 증거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생명과학 분야의 젊은 교수들이 서울대 총장에게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진상조사의 주체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화방송 <pd>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때에는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우세했고, 지금은 서울대나 정부가 나서서 진상조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황 교수 스스로 후속 논문을 통해 연구에 대한 신뢰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언론의 의혹 제기는 당연한 책무
그러나 이것은 과학자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자정능력’을 이해하지 못해 나오는 목소리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먼저 과학자의 연구결과에서 연구결과 진위에 대해 누구든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면 언론이 제기하더라도 과학자들은 귀담아들어야 하며, 어쩌면 이것은 언론이 해야 할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황우석 교수 연구결과에 대한 진위 의혹을 문화방송이 제기한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으며, 황우석 교수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보자면 오히려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비윤리적인 취재 태도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통상적으로 과학자 사회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해당 대학이 위원회를 조직해 진상조사에 나서는 일이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황 교수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참여연구원들을 면담해 일말의 의혹까지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사이언스>를 포함해 국제 과학계에 상세히 알려야 한다. 이는 황 교수 자신을 위해서도 더없이 필요한 절차인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설령 본인이 결백하더라도 국제 과학계에서 향후 그의 연구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황 교수의 연구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국익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황 교수의 연구논문이 일부 조작됐다 하더라도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서울대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지고 황 교수 스스로 ‘수정’하거나 심각할 경우 ‘철회’한다면 다음 연구를 진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그것은 과학계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황 교수의 후속 연구로 검증받겠다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황 교수뿐만 아니라 한국 과학계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이며 국익을 훼손하는 일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연구결과의 진위는 결국 밝혀질 것이며, 국제 사회는 반드시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들은 그때 무엇을 했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황우석 교수 자신이 풀어야 한다. ‘반나절 실험’이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검증을 거부하고 병상에 누워 ‘연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황 교수를 보면서, 황 교수의 연구를 신뢰하던 많은 과학자들도 의아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모든 검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보여주면 오히려 신뢰를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후속 연구로 검증하는 일은 황 교수가 아닌 ‘다른 과학자들’이 할 일이다).
논문 편수로 직장이 결정되고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한 편으로 수억 원의 연구비가 좌지우지되는 과학계의 현실에서, 모든 과학자들은 데이터 조작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이런 때일수록 대학은 이런 유사한 문제가 다시 발생하더라도 투명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황우석교수 논란’에서 배울 수 있는 큰 교훈이다.</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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