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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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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억울한 모터사이클

등록 2005-07-13 15:00 수정 2020-05-02 19:24

미국·일본·유럽에선 다 허용하지만 우리나라는 금지
동호인들 “거꾸로 된 법 고쳐달라” 도로교통법 58조 폐지운동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골목에서 차가 나오면 보이지만, ‘오토바이’는 안 보여. 불쑥 튀어나온다구!”

<한겨레21> 류우종 사진기자는 평소 순한 사람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은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주행을 허하라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대한 류 기자의 반응이었다. 6월 중순의 토요일 오후, 서울 남산으로 ‘Seoul/Korea 전용/고속도로 통행을 위한 모임 R.G’(cafe.daum.net/twowheel)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고속도로가 뭐야, 시내에도 못 다니게 해야 해”라고 투덜거렸다. 그는 이날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이륜차’ 모터사이클에 대한 ‘사륜차’ 자동차 운전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차를 몰고 남산을 오르자 남산도서관 근처의 주차장에 250㏄ 이상의 육중한 대형 모터사이클 10여대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 저런 오토바이면 괜찮지…”라고 꼬리를 내렸다.

“고속도로가 일반 도로보다 4배 안전”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혈기왕성한 폭주족이 아니었다. ‘철가방’도 ‘퀵서비스’도 아니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라이딩 재킷을 갖춰입은 중후한 남성들이 모터사이클 주변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바지를 입은 ‘피터 김’ 선생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는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와 전용도로 진입을 위한 모임인 ‘전용/고속도로 통행을 위한 모임 R.G’(R.G·cafe.daum.net/towwheel)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모터사이클은 도심도로보다 고속도로에서 더 안전하다”며 “제발 거꾸로 된 법을 제대로 알려달라”고 인사를 건넸다. 원래 고속도로가 모터사이클의 금지구역은 아니었다.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은 1972년 당시 내무부 고시에 의해 금지당했다. 법률상의 금지조항은 나중에 만들어졌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도로교통법 제58조가 만들어지면서 모터사이클은 법에 의해 고속도로는 물론 자동차 전용도로 진입도 금지됐다. 당시는 ‘마이카’의 열풍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마이카 열풍과 함께 교통사고 사망률도 치솟았다. 피터 김씨는 “당시 교통사고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부가 모터사이클을 희생양 삼아 비판 여론을 무마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도로교통법 58조는 아직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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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터사이클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지적했다. 그들은 “모터사이클은 고속도로에서 일반도로보다 4배 이상 안전하다”며 “이같은 사실은 미국 등 여러 나라 통계에서 확인된다”고 말했다. 피터 김씨는 “이륜차 사고는 대부분 도심지 우측도로에서 발생한다”며 “쭉 뻗은 도로에서는 오히려 사고가 훨씬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다른 회원들도 “실제 외곽도로나 국도를 달려보면 훨씬 안전함을 느낀다”고 거들었다. 현재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 등 몇곳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한국과 비슷한 규제를 해오던 일본도 최근 대형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을 허용했다.

자동차처럼 취득세·등록세는 내는데…

그들에 따르면, 모터사이클의 사고율은 자동차의 사고율보다 낮다. 단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치사율이 높아서 위험한 교통수단으로 오해받을 뿐이다. 하지만 가장 사고율이 낮아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여겨지는 비행기도 사고 발생시 치사율은 높다. 회원들은 “위험은 추상적 개념이고, 구체적 통계가 모터사이클의 안전성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이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R.G 회원 이호준씨는 “모터사이클을 사면 자동차처럼 취득세, 등록세 등 세금은 다 내야 한다”며 “세금은 내면서 권리는 왜 박탈당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R.G는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을 위해 청와대에 청원을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지만, 아직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피터 김씨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정도로 발전했지만, 모터사이클 산업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모터사이클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경제적 손실까지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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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모터사이클은 건전한 레저활동이다. 이날 모임에는 흰색 라이딩 점퍼에 흰색 바지를 입은 중년 신사가 눈에 띄었다. 올해 쉰다섯살의 김흥록씨였다. 김씨는 72년부터 모터사이클을 타온 베테랑이다. R.G 회원 중에는 김씨처럼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이 금지되기 전부터 모터사이클을 타온 역전의 노장들도 여럿 있다. 그들도 입을 모아 예전의 즐거움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모터사이클은 교통난 해소의 좋은 대안일 뿐 아니라 건전한 레저활동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말이면 아내와 청재킷으로 커플룩을 맞춰입고 교외로 ‘라이딩’에 나선다. 이처럼 아내를 뒷좌석에 태우고 주말 나들이를 나서는 모터사이클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R.G 회원들은 “모터사이클을 타면 술도 줄고 건강도 좋아진다”고 입을 모았다. 그냥 앉아서 운전하는 자동차와 달리, 모터사이클을 운전하려면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R.G 회원들은 대형 모터사이클이 부유한 사람들만의 비싼 레저활동이라는 선입견도 버려달라고 당부했다. R.G 열성회원 중 막내격인 손영권(37)씨는 “나도 처음 타기 시작할 때는 전셋집을 줄여가면서 모터사이클을 샀다”고 말했다. 손씨처럼 모터사이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적지 않다. 이날 모임에 모터사이클을 몰고 나온 탤런트 전현씨는 “모터사이클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 모터사이클을 먼저 사둘 만큼 처음부터 빠져들었다”며 “요즘도 솔직히 여자보다 모터사이클이 더 좋다”고 ‘고백’했다. 다만 그들도 “모터사이클 운전자들이 자동차 사이로 불쑥 끼어드는 것처럼 잘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국도와 고속도로가 더 안전

사진 촬영을 위해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산 일주를 했다. 모터사이클 뒷좌석에 오랜만에 타보았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기분이 상쾌해졌지만, 커브길을 돌 때는 슬쩍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마도 나의 상쾌함과 불안함은 평균적 감수성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탈수록 걱정보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그들은 “법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몰라서 잘못된 법을 만들고 고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촬영을 마친 모터사이클 운전자들은 이날 편안한 도로를 찾아 국도로 나선다고 했다. 지그재그로 늘어선 10여대의 모터사이클은 ‘더 안전한’ 도로를 찾아 서울 도심을 벗어났다. 참, 모터사이클 뒷좌석에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 모험을 감행한 류우종 기자도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역시 역지사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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