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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나, 페로티시즘 | 김신명숙

등록 2005-06-30 15:00 수정 2020-05-02 19:24

▣ 김신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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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란 어떤 사람들일까? 일단 못생긴 여자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자들을 미워하거나 군대도 안 가면서 주제 넘은 권리의식만 가득 찬 뻔뻔스런 여자들?
그렇게 보건 저렇게 보건 그건 (남자인) 당신 자유다. 다만 누가 내게 페미니스트는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세계여성학대회에서 깜짝 놀라다

요 며칠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린 이화여대를 들락거리며 전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을 접하면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공적, 사적 영역에서 지역적 혹은 세계적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을 그들의 눈으로 다시 보고(re-view) 재고하고(re-think) 재해석하고(re-interpret) 재정의(re-define)하고 재구축(re-construct)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전쟁과 폭력, 모든 지배관계와 차별이 사라지고 시장의 타산과 무한경쟁이 극복된 사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돈이 아니라 사랑과 보살핌이 혈류처럼 흘러다니는 사회….

“전쟁도 없고 시장도 넘어선 사회? 꿈꾸고 있네!”라고 간단히 일축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자유다.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이런 세상은 당신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혹시라도 된다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당신을 긴장시킬 복병이 숨어 있다. 바로 성과 섹슈얼리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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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상상해보자. 만약 모든 여자들에게 성적 자유가 완전하게, 혹은 적어도 남자들만큼 보장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요동칠까? 모든 여자들이 성적 욕망에 눈을 떠서 그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미 교육과 직업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뤄내 자신감을 경험한 여자들은 이제 성범죄의 희생자라는 불쾌한 낙인을 거부하고 그동안 억압돼온 자신의 욕망을 찾기 위한 불온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여성학대회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한 참석자는 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 에로티시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성의 욕망에 기반한 페로티시즘(feroticism, female과 eroticism의 복합어)이란 새로운 개념을 소개했고, 다른 참석자는 현재 홍콩 여성들의 성생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정조가 목숨보다 가치 있게 여겨지던 시절 가볍게 그것을 비웃으며 혼외정사를 감행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던 신여성 나혜석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여성학대회 전날에는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 ‘포르노 포르나’라는 행사가 열렸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는 별 관련이 없이, 물화된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하고 학대하는 포르노를 반대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포르나’라는 새로운 용어를 세상에 던진 것이다.

당신은 긴장되는가

페로티시즘과 포르나, 이 두 새로운 단어는 남성이 독점하던 성과 섹슈얼리티의 세계에 그만큼 여성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전체를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그 공간이 얼마나 어떤 지형을 만들며 확장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여성의 성적 능력과 에너지가 가지는 잠재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여기서 당신의 긴장이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 닥칠 새로운 성애의 세계는 당신에게 준비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욕망의 대상으로, 수동태로 있던 여자들이 이제는 욕망의 주체로, 능동태로 일어서서 당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귀를 열어놓고 대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떡치고 따먹고 공략하고 갖고 노는’ 것이 섹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당신의 성생활에도 새로운 비전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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