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한국문학, 아시아에 말을 걸다

등록 2005-06-29 15:00 수정 2020-05-02 19:24

빈곤한 한류를 보충한 아시아문화네트워크 문인들의 12일 대장정
타이·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문인들과 훈훈한 동질감을 느끼다

▣ 자카르타·방콕·하노이·호치민·마닐라= 길윤형 기자 chcharisma@hani.co.kr

15년 전쯤의 일이다.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스물 네개의 눈동자>라는 소설을 읽게 됐다. 이 책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일본 소설로, 작가는 쓰보이 사카에라는 일본 여성이었다.

그날 받았던 충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책은 일본의 작은 어촌 마을 분교에 입학한 학생 12명(그래서 눈동자가 24개다)의 삶의 궤적을 좇는 성장소설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저마다 푸른 꿈을 안고 뿔뿔이 흩어진다. 공부를 잘했던 아이는 명문대에 진학해 작가의 꿈을 키우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직업을 찾아 돈을 번다. 그리고 느닷없이 전쟁이 터진다. 남자 아이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여자 아이들은 과부나 성매매 여성이 된다. 작가는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또렷이 응시할 뿐, 섣부른 감정을 싣지 않았다.

타이 학생 “한국대표작가는 귀여니”

그때 처음, 일본 사람들의 몸에도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한국 교과서가 가르쳐온 일본 사람은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적의 항공모함을 향해 비행기째 몸을 던지는 ‘냉혈한’이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어리석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 자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아시아 국가들을 향한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이 이어질 때마다 분노보다 측은한 감정이 앞서게 됐다. 그것은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로는 도달할 수 없는 ‘문학의 힘’이었다.

[%%IMAGE1%%]

2005년 <겨울연가>와 <엽기적인 그녀>를 앞세운 ‘한류’가 동아시아를 휩쓰는 이때, 한국 문인들의 아시아 마주보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시아 문화연구와 교류활동을 추진해온 작가들의 모임인 ‘아시아문화네트워크’가 6월14일부터 12일 동안 타이·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을 거치는 대장정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나섰다. 장정에는 소설가 김원일, 김영현 실천문학 대표, 소설가 김남일, 방현석, 김인숙, 이명랑, 연극배우 김지숙, 시인 최두석, 평론가 김재용, 박수연 등 20여명의 한국 문인이 참석했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소설가 김남일씨는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한류를 좀더 확산시키고 삼숭(삼성) 반도체, 훈다이(현대) 자동차, 엘지 PDP를 좀더 팔기 위한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류’는 어느새 동아시아를 한데 묶는 대표 코드가 됐다. 아시아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배용준, 최지우, 권상우 등의 이름을 줄줄 외운다. 타이에서의 한류는 2002년 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시작됐다. 그 뒤를 이어 <엽기적인 그녀>가 성공을 거둬 한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하노이 국가 인문사회과학대에서 만난 화후아마이(23·한국학과 4)는 “감독 중에서는 김기덕과 홍상수를 좋아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별로였다”고 말했다.

한국사람은 백혈병에 너무 잘 걸려요!

현지에서 바라본 한류는 어떤 모습일까. 6월15일 타이 부라파대학 한국학연구센터는 아시아문화네트워크 방문단을 맞기 위해 심포지엄장 앞에 타이어로 번역된 한국소설을 진열하는 성의를 보였다. 오른쪽에서부터 읽어나간 소설의 제목은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1%의 어떤 것> <가을동화>였고, 이따금 <아홉살 인생> <괭이부리말 아이들> 등이 눈에 띄었다. 이지은 타이 시나카린위롯대학 한국어과 교수는 “타이 학생들에게 한국의 대표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귀여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IMAGE2%%]

그동안 한류의 원인에 대한 논란은 많았지만, 이 흐름이 동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묶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분석은 이뤄지지 못했다. 평론가 김재용(원광대 교수)씨는 “아마 그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한류 열풍은 80~90년대 이어진 일본 B급 문화나 홍콩 누아르 영화의 수입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좀더 성장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 수출되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너무나 정상적이고 사소한 현상이다. “일본 잡지 <논노>나 <드래곤 볼>이 히트를 쳤다고, 우리가 일본을 더 잘 이했다고 볼 수는 없겠죠.” 6월17일 ‘한국의 여성작가들과 나의 소설 쓰기’라는 제목으로 특강에 나선 소설가 김인숙씨에게 하노이 국가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생들은 “한국 사람들이 피가 하얀 병(백혈병)에 너무 잘 걸려 걱정된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원일씨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이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이 아시아를 새롭게 본다고 말할 때 그것은 아시아인들의 공통의 ‘기억’에 대한 말걸기를 뜻한다. 한국이 아시아에 말을 걸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젊은 작가들은 1995년 10월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베트남 모임)을 출범시켰고, 베트남 작가 휴띤의 시집 <겨울 바다>,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 반레의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등의 소설을 번역·소개했다.
소설가 방현석씨는 6월20일 베트남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생들에게 “한국 사람들은 바오닌과 반레의 소설을 읽고 나서야 <람보>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학 3학년의 꾸지민응옥이 대뜸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의가형제>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다시 한국인의 몫이다. “지난 2000년 한국의 잡지 <한겨레21>에서 그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잘못된 전쟁에 참여해 베트남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현석씨가 답했다.
아시아에 말걸기에 나선 한국 작가들의 첫 움직임에 대한 아시아 문인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2005년 6월15일 타이 부라파대학 한국학연구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타이 작가들은 “문학의 여러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인간 집단이 겪은 공통의 기억에 대한 것”이라는 소설가 김남일씨의 강연에 깊은 동감을 표시했다. “문학은 기억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체를 기억하는가, 혹은 선택적으로 기억하는가입니다. 적어도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베트남에서 마주 보고, 기억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지지합니다.”탓사니 탄따아닛 부라파대학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이 말했다.
[%%IMAGE3%%]


우리는 비슷한 ‘몽키’들이다

6월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립 인도네시아대학에서 진행된 강연에서도 공통의 관심사를 찾으려는 두 나라 문인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평론가 김재용은 “프라무디야 아난타 토르의 <밍케>라는 소설에서 네덜란드 교사(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인도네시아 학생을 원숭이(몽키)라고 부르다 자신도 흠칫 놀라 밍케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구절이 나온다”며 “이 장면을 통해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같은 아픔을 가진 형제의 나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소설가 마난 마라야나도 “인도네시아와 한국 모두 전쟁과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에 대한 소설이 많다”며 “이번이 첫 만남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 낯을 대하는 타이와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5~6년 동안 꾸준한 만남을 이어온 베트남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베트남 작가 투이즈엉은 6월16일 베트남 하노이 작가동맹 사무실에서 발표한 ‘가깝게 좁혀진 간격’이라는 글을 통해 “문학만이 인간이 민족과 나라와 함께 지내온 세월을 꽤 분명하게 그려주는 특별한 통로 역할을 한다”며 “문학이라는 통로를 통해 한국을 심연으로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민족문학작가회의)과 베트남(베트남작가동맹)의 문인들은 수년 동안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난 2002년 10월30일 “한국과 베트남의 문학인들은 지난 세기 두 나라 사이에 존재했던 불행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며 “두 나라 문인들이 참다운 기억의 연대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떼어놓겠다”는 공동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베트남 작가들은 베트남어로 변역된 소설가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통해 “과거의 빚에 대한 양심의 격렬한 자문이 한국의 많은 세대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IMAGE4%%]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시아 ‘몽키’들이 서로에게 말걸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이해관계를 떠나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만남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반을 이뤘습니다.” 찐따나 풋타메타 타이 시나카린위롯대학 타이어과 교수가 말했다.
아시아 이웃들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결국 구원받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소설가 김인숙은 “우리는 외국 또는 국제화를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우리를 말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인정했을 때, 구원받은 것은 한국인 자신이었다. 그 글은 다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림을 남겼고, 한국과 베트남을 하나로 묶는 토대가 됐다. 소설가 김남일씨는 “한류와 ‘훈다이’ 자동차가 실패한 곳에서 문학만이 아시아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믿는다”며 “그것이 우리가 문학으로 아시아에 말을 거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학 17곳에서 한국어 교육 중"

[인터뷰/ 탓사니 탄따아닛 타이 부라파대학교 한국학연구센터 소장]

<아홉살 인생>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수천권 팔려


[%%IMAGE5%%]
탓사니 탄따아닛 부라파대학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은 “타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 한국어를 주전공으로 택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며 “한국과 타이가 가까워지기 위해서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타이를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라파대학 한국학연구센터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타이에서 한국학으로 첫손에 꼽힌다. 1999년에 처음 한국어를 선택과목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선택과목이었는데, 부전공을 거쳐 전공이 됐다. 한국어 외에도 한국의 역사와 문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1년에 한번씩 한국재단(Korea Foundation) 등의 지원을 받아 국제 세미나를 연다. 지난 1월18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세미나의 이름은 ‘한국, 과거·현재·미래’였다. 올해 1월에 타이 내 ‘대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열기도 했다.
주로 소개되는 한국 문학은 어떤 것인가.

아직은 인터넷 소설이나 드라마 등 사랑 얘기들이 많다. 순수 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 가운데서는 <아홉살 인생>과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소개돼 수천권 정도 팔렸다. (류정용 주타이 한국대사관 홍보관은 “<아홉살 인생>의 경우 어려운 일이 닥쳐도 열심히 사는 한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타이에서도 배워야 한다는 신문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타이 대학에서 한국어의 위상은.

2005년 1월 현재 타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17곳이다. 그 중에서 우리 대학을 포함해 4개 대학이 전공으로 가르치고, 2개 대학이 부전공으로 가르친다. 나머지 대학에서는 선택과목으로 배울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166명이고 한국인 강사 4명과 타이인 강사 4명이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더 많은 타이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것으로 생각한다. 타이와 한국은 한국전쟁 때부터 좋은 관계였다(타이는 한국전쟁 참전국임). 타이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친한 친구로 생각한다. 타이와 한국이 서로 이해하고 배우고 협력하면 관계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인이여 꺾이지 말라

[인터뷰/ 인도네시아 대문호 프라무디아 아난타 토르]

번역된 한국소설 없지만 교류기대… 진취적인 참여문학 지향


[%%IMAGE6%%]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디아 아난타 토르(81)는 수하르토 정권 아래서 당한 심한 고문으로 몸이 불편한데도 먼 곳에서 찾아온 한국 문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먼 곳에서 찾아온 한국 문인들이 반갑다”며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에서도 꺾이지 않는 일관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6년 노벨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네덜란드 식민통치기와 수하르토 독재 체제를 거치면서 18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밍케>라는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한국 작가들을 보니까 어떤가.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먼 나라인데 단체로 오신 것이 놀랍고 반갑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좀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요새 작업 중인 작품이 있는가.

없다. 작가로서 평생 동안 쓸 것은 모두 다룬 것 같다. 창작보다는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있다. 1960년대 초 학교에서 역사·문학을 가르쳤고, 인도네시아 역사를 다룬 역사물을 많이 썼다(2002년 미국 의회에서 선생이 평생 수집한 자료를 복사해 가기도 했다).
접해본 한국 문학은.

인도네시아에 번역된 한국 소설이 아직 없다. 한국말로 번역된 인도네시아 소설은 몇개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두 나라 사이에 문학 교류가 많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평생을 지탱해준 원형의 뿌리는 무엇인가.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진취성을 좋아한다. 나는 문학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칠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참여문학이다. 문학이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인류에게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접 연관되지는 않지만, 인도네시아 문학이 한국에, 한국 문학이 또 인도네시아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한국 문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요즘은 기억력이 떨어져 창작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 건강할 때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다.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다. 또 주변의 말에 너무 마음쓰지 말기를 바란다.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한국현대소설선, 동남아서 번역출판

해외 문학교류에 의욕적인 아시아문화네트워크의 계획들

우리나라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아시아인과 마주 보기를 시작한 것은 1995년 10월 수교 이후 베트남에 관심을 갖게 된 작가들이 모여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면서부터다. 이들의 활동은 지난 2002년 10월30일 한국 민족문화작가회의와 베트남의 작가동맹이 문학에서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선언과 2004년 7월 팔레스타인 작가들과 ‘사랑과 정의, 평화의 연대를 위한’ 아시아 작가 평화선언을 발표하는 데 이른다.
한국 작가들은 아시아문학연구소, 아시아문화자료실, 아시아문화의 집 추진모임 등으로 나누어 진행되던 교류 창구를 단일화하기 위해 2004년 4월30일 아시아문화네트워크로 기구를 확대 통합했다. 그 첫 사업으로 지난해 6월29일 한국, 베트남, 몽골, 팔레스타인, 이라크 작가 30여명을 서울에 초청해 아시아 문화교류를 위한 아시아 작가 간담회를 열었다. 또 해외 한국학 관련 학과에 대한 한국 도서 보급사업에도 나서 베트남 국립 하노이대학교에 200여권의 한국 문학 관련 자료를 기증하기도 했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는 6월14일부터 이어진 아시아 4개국 방문을 통해 내년 7월까지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한국현대소설선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 출판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방현석 아시아문화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올 10월께 베트남,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몽골, 이라크, 팔레스타인, 우즈베키스탄 등 그동안 교류를 맺어온 아시아 작가들을 서울로 초청해 문학을 통한 아시아의 교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