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철거로 뿔뿔히 흩어진 영등포 도시빈민들 90명 추적조사… 71명중 54명이 근처에서 쪽방생활 계속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매일 오후 12시10분, 서울 영등포 롯데백화점 민자역사 서쪽에 자리한 ‘영등포 쪽방촌’에서 점심식사가 시작된다. 밥때가 되면 이곳 560여개 쪽방에서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서울 광야교회 앞은 대목 맞은 장터 골목같이 활기를 띤다. 1990년대 초반 광야교회는 무료 급식을 시작했는데, 몰려드는 사람들로 예배당이 비좁아 2003년 9월부터는 건물 밖에 천막을 치고 밥을 퍼주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하루 평균 800여명이 공짜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언뜻 보면 이들의 식사가 무질서해 보이지만, 이는 외부인의 ‘편견’일 뿐이다.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은 천막 뒤편으로 길게 줄을 선다. 사람이 많으면 이 줄은 골목 건너편 인도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오가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줄은 골목을 가로막지 않는다. 줄 선 사람들은 떠들고 웅성거리며 순서를 기다릴 뿐, 새치기를 하거나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았다.
2003년 10월의 충격적인 사건
식사는 철저한 분업 속에서 이뤄진다. 충현교회·지구촌교회·영락교회·삼일교회 등에서 요일마다 당번을 정해 찾아오는 자원봉사자 6명이 익숙한 솜씨로 반찬과 밥을 담고, 밥을 다 먹은 사람들은 재빨리 설거지 담당에게 식판을 건넨다. 광야교회 김형옥(35) 간사는 “밖에서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쪽방 안에는 이곳 나름대로 질서가 있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기차가 오가는 시끄러운 철로변에서 살아 움직이기 위해 줄을 서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광경은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듣는 것같이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4월19일 영등포 쪽방촌의 점심 반찬은 콩나물 무침, 무 조림, 김치 등 3가지 반찬에 미역 된장국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조인희(63)씨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반갑게 웃으며 자리를 터주고, 술에 취해 잠이 든 김종대(40대 중반)씨를 깨워 밥이 든 식판을 내밀었다.
영등포 쪽방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002년 펴낸 <쪽방 사람들>을 보면, “해방 이후 초기 형성기를 거쳐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60~70년대 규모가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혀 있다. 이곳 쪽방촌은 ‘미아리 텍사스’나 ‘청량리 588’ 같은 성매매업소 집결지역이었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영등포 주변에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줄기 시작했다. 쪽방촌에서 경인로를 건나 ㅎ철공소 뒤편으로 가면, 성매매 업소 10여곳이 남아 한때 이곳이 번창했던 성매매 집결지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2003년 10월27일 새벽 6시, 영등포 쪽방 50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날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영등포1동 618-5 일대 쪽방 200여동(1545㎡)에 철거반을 투입해 건물을 허물었다. 영등포역으로 향하는 철로변은 70년대 중반 ‘시설녹지’로 지정된 시유지로, 쪽방을 허물고 남은 터에 나무와 풀을 심기 위해서였다. 공사는 2004년 1월에 끝났고, 쫓겨난 사람들은 3개월치 생활비로 계산된 주거이전비(420여만원)나 임대아파트 입주권 가운데 하나를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2년 전 쪽방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을까.
<한겨레21>은 이때 쪽방에서 내몰린 도시 빈민들의 이동 경로를 뒤쫓아보기로 했다. 영등포구는 이르면 올해 5월께 영등포2동 422 일대 쪽방 60여 가구(1702㎡)를 추가 철거할 계획이어서 이곳 쪽방은 다시 한번 깊은 정적에 빠져 있다.
추가철거 앞두고 깊은 정적에 빠져있어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들은 종로구·용산구·영등포 등 도심에 자리한데다,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반상업지구로 용도가 정해져 개발 압력에 노출돼 있다. 그렇지만 도심 빈민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쪽방을 철거했을 때, 주민들이 받게 되는 충격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서울시가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3년 철거된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1동 일대 쪽방 거주민 명단’을 보면, 철거된 쪽방 200여동에서 114명이 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주거이전비를 받은 사람들은 101명이고, 공공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신청한 사람들은 13명이다. 공공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으려면 임대보증금 1천여만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목돈이 없는 쪽방 사람들은 대부분 현금을 받았다.
<한겨레21>은 4월18일부터 광야교회의 도움을 받아 쪽방 철거 2년 뒤 보상을 받고 쪽방을 떠난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명단에 포함된 114명 가운데 광야교회에서 ‘집주인’으로 지목한 24명은 추적에서 제외해 추적 대상은 90명으로 줄었다.
추적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쪽방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이 예전에 살던 영등포1동 618-5 일대의 반경 1km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추적 대상 90명 가운데 34.4%인 31명은 예전 쪽방과 붙어 있는 영등포2동 쪽방으로 옮겼고, 골목 건너 문래동으로 옮긴 사람은 11.1%인 10명, 대부분 철거되고 얼마 남지 않는 영등포1동 쪽방으로 옮긴 사람은 2명이었다. 쪽방 철거로 영등포역 주변 쪽방 수가 모자라자, 예전 쪽방 지역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진 도림동과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근처 쪽방으로 이동한 사람은 각각 4명과 3명이었다. 4명이 노숙자가 되었고, 2명은 숨을 거뒀다. 보증금을 마련해 공공임대아파트로 이사 간 사람은 5명밖에 없었다. 1명은 몸이 아파 은평시립병원으로 입원했고, 동대문 등 다른 쪽방 지역으로 터를 옮긴 사람은 9명이었다. 19명은 추적에 실패했다. (그래픽)
추적할 수 있었던 71명 가운데 외부 유출자(9명), 임대아파트 입주자(5명), 사망자(2명), 병원 입원자(1명)를 뺀 54명이 영등포 쪽방촌의 생활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지역으로 옮긴 사람들도 익숙한 쪽방 공동체를 잊지 못해 자주 이곳을 찾고 있다. 평소 만져보기 힘든 400여만원의 주거이전비를 받고 흩어졌지만, 주거환경이 나아진 사람은 공공임대아파트로 이사한 5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광야교회 관계자는 “주변 쪽방으로 흡수된 사람들은 비슷한 주거환경 속으로 수평 이동했다고 봐야 한다”며 “오히려 쪽방 수가 모자라 월세가 3만~4만원씩 올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거이전비를 어디에 사용했을까.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과 도박에 돈을 허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돈을 다 써버리고 노숙자가 됐다.
“정신없이 술 먹고 보니까 한달 만에 돈이 다 떨어지더만. 사람들 꾐에 빠져 호프집에서 아가씨들 불러가며 한두잔 마시다 보니까 하룻밤에 20만~30만원씩 돈이 쑥쑥 빠지더라고. 돈 다 쓰고 후회했는데, 뭐 어쩔 수 있나. 어차피 ‘공돈’이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김기수(46·가명)씨가 말했다.
김씨는 예전에 살던 영등포1동 집주인의 소개로 영등포2동 2층 다락방으로 이사왔다. 그는 “다른 데 가서 방 얻을 바에야 평소 아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오는 게 마음도 편하고 여러모로 좋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서 방값이 18만원에서 24만원으로 33%나 올랐다. 그의 집은 슬레이트 지붕 바로 아래 깔린 다락방으로 4월인데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김씨는 “여름철에는 거의 한증막이라 집 안에 있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이정복(53)씨도 예전에 살던 집에서 10m 이동해 지금의 쪽방으로 이사왔다. 그 와중에 월세가 18만원에서 24만원으로 올랐다. 그는 “받은 돈을 사기당해 진 빚을 갚느라 다 썼다”고 말했다. 2002년 여름에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다고 해 인감을 10장 떼준 게 화근이었다. 몇달 뒤부터 카드회사에서 독촉장이 날아왔다. 그의 한달 수입은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에게 나오는 34만원과 장애수당 9만원, 합쳐서 43만원이 전부다. 이주비로 받은 돈 400만원을 톡톡 털고 나서도 남은 빚이 1천만원이 넘는다.
술과 도박으로 날아간 주거이전비
김신정(57·가명)씨도 속임수에 빠져 보상금을 모두 날렸다. 그는 “신용카드를 잠깐 빌려주면 공짜로 그릇을 준다고 해 카드를 줬는데 돈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씨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한다. 노숙자가 된 김종대씨와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돈을 합리적으로 관리한 사람들도 몇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관리했다고 해봐야 돈의 일부를 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나머지 돈을 치료비나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경우다. 최인식씨는 지난해 7월에 한강성심병원 부근 쪽방으로 집을 옮겼다. 보상금으로 보증금 200만원(월세 18만원)을 걸고, 예전에 있던 월세 18만원짜리 방보다 훨씬 좋은 집으로 옮겼다. 그는 공공근로를 하면서 하루에 2만1천원을 받아 한달에 40여만원을 번다. 그는 “보증금이 있는 방이라 예전 쪽방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다”고 말했다. 박노수(63·가명)씨는 보상받은 주거이전비로 “틀니를 해넣고 침을 맞느라고 다 썼다”고 말했다.
김정수(69)씨도 철거된 영등포1동 쪽방에 살다 지금 같은 건물 2층에 사는 강윤성(55)씨의 소개로 지금의 쪽방으로 이사왔다. 그는 1992년 2월 공사판에서 일을 하다 허벅지 고관절을 다쳐 장애인이 됐다. 그는 “돈을 받아 가끔 맛있는 것을 사먹으며 요긴하게 썼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16만원짜리 방에 살았지만, 방값이 18만원으로 올랐다.
조인희(63)씨는 극적인 경우다. 그는 지난해 5월20일 서울 양천구 신정7동 공공임대아파트(14평)에 입주했다. 그는 “먹고 싶은 것 안 먹어가며 악착같이 임대보증금 990만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 돈을 모으는 동안, 살고 있던 13만원짜리 쪽방보다 싼 10만원짜리 쪽방 등을 2년 동안 옮겨다녀야 했다. 그는 “한달 수입이 이것저것 합쳐 40만원 정도 되는데, 20만원은 임대료와 전기세 내고 2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천구로 이사갔지만 이곳을 잊지 못해 한달에 3~4번씩 잊지 않고 교회에 들른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돈을 모았다는, 60대 노인의 고통을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나처럼 편한 집 하나 만드는 게 이곳 사람들 모두의 소망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도시 외곽에 집단수용시설 만들자?
전문가들은 “쪽방촌 사람들이 그곳 생활을 편안하게 생각해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쪽방 주민들을 두번 죽이는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8월 전국 11개 쪽방 지역 주민 382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4.3%인 284명이 “기회만 된다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쪽방에서 계속 살겠다”고 대답한 96명도 쪽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어차피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58.3%)이라는 자포자기성 이유가 가장 많았다. 이에 견줘 “오랜 생활에 익숙해져 아무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란 대답은 8.3%에 머물렀다. 난방·악취·습기·화장실·방 크기·임대료·목욕시설 등 주거생활과 관련된 15가지 항목에 대한 질문에는 교통·이웃관계·치안 문제를 빼고 “만족한다”는 의견이 30%를 넘지 않았다.
돈을 건네주고 쪽방 주민들을 내모는 것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을까. 영등포구는 쪽방 문제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솔직히 저런 쪽방은 이런 도심이 아닌, 경기도 어디에 모아놓고 집단수용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이 용두동·마장동·숭인동·창신동 등 청계천변 주민 20만명을 경기도 광주 대단지로 내몬 이른바 ‘광주 대단지’ 사건이 터진 게 1969년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1998년 펴낸 <철거민이 본 철거>를 보면 “이때 강제 이주된 주민이 20만명이 넘는다”. 생활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주민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했다. 3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도시 빈민들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시각은 좀처럼 바뀔 줄 모른다.
남원석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건설교통부가 지난해 도입한 다가구 매입임대주택 등을 잘 활용하면 쪽방 철거민들을 영구임대아파트 수준의 값싼 주거 공간에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는 2008년까지 전국에 다가구 매입임대주택을 1만호로 늘릴 예정이다. 물리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도시 빈민들을 사회에서 배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료들의 시각이 더 큰 문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꼭 총이나 칼만은 아니다. 쪽방에서 만난 김신정(57)씨가 “더운데 수고한다”며 박카스 한병을 내밀었다. 4월 햇빛에 달궈진 슬레이트 지붕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부채를 하나씩 들고 슈퍼마켓 앞 장기판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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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쪽방은 모두 몇개?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내놓는 통계는 서울 영등포·돈의동·창신동 등 전국 11개 쪽방 상담소가 보고한 수치를 집계한 것이다. 주변에 상담소가 없는 쪽방은 쪽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04년 현재 쪽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대도시는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 등 전국 5곳, 11개 마을뿐이다. 전체 쪽방 수는 9030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6545명으로 파악된다.
쪽방은 싼가?
그렇지 않다. 1평이 채 못 되는 쪽방의 한달 월세는 어림잡아 20만원 안팎이다. 시중금리를 연 5%로 놓고 월세를 전세로 환산하면 4800만원짜리 방이란 계산이 나온다. 이에 견줘 쪽방 대부분은 부엌·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월세는 철저히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입원이 된다.
쪽방 거주자는 노숙자인가?
그렇지 않다. 거리 노숙자는 일정한 수입이 없고, 돈을 벌려는 의지도 없다. 이에 견줘 쪽방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가 일해 월세를 벌거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지정돼 고정 수입이 있다. 삶에 대한 애정과 집착도 강한 편이다. 쪽방 사람들은 △사업 실패 △실직과 불완전 고용 △질병 △가족 해체 등을 거쳐 쪽방촌으로 내몰렸을 뿐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잠시 노숙 경험이 있었을 수는 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8월 쪽방 생활자 382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노숙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체의 42.9%(163명)로 절반에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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