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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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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삼성과의 싸움, 나는 도전한다”

등록 2004-04-23 00:00 수정 2020-05-03 04:23

계열사에서 해고된 뒤 ‘삼성일반노조’ 만든 김성환 위원장… 삼성 정규노조와의 ‘이름소송’에서 승리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지난 4월8일 인천지방법원에서는 국내 법조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판결이 하나 나왔다. 삼성생명보험노동조합이 삼성그룹 계열사의 해고 노동자들로 구성된 한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행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해고 노동자들과 정규 노조와의 소송에서 법원이 해고자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판결을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삼성생명노조는 어용노조다”

이번 판결을 가장 환영한 사람들은 당연히 삼성그룹 해고 노동자들인데 그 중에서도 ‘삼성일반노동조합’ 김성환(47) 위원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김 위원장은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8년여 동안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그의 싸움을 성서에 나오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한다.

김 위원장과 삼성일반노조를 소개하려면 우선 이번 소송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삼성계열사 하청노동자와 해고자들과 함께 지난 2003년 2월 삼성일반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해고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규약 때문에 인천시로부터 “근로자가 아닌 해고자를 가입시켰으므로 노조로 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노조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현행 노동법상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법외 노조’가 된 것이다.

그러자 삼성계열사 중 거의 유일한 노조인 삼성생명보험노조가 지난해 10월 삼성일반노조와 김 위원장을 상대로 ‘삼성노조’와 ‘samsung’이 들어간 인터넷 도메인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명칭사용금지 소송을 냈다. 삼성생명보험노조는 “삼성일반노조라는 명칭이 마치 삼성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노조이고 삼성생명 노조가 그 산하기관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으며, 성명서 등을 내면 삼성그룹 계열사 근로자들의 의사표시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지법 제4민사부(부장판사 양현주)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조 상급단체들은 ‘총연맹’ ‘총연합’ 등의 명칭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삼성일반노조라는 이름이 삼성생명노조의 상급 단체로 오인될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현행법에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단체가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요건을 충족한 정규 노조가 그렇지 못한 단체에 대해 ‘노동조합’ 명칭사용금지를 청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기각 사유를 덧붙였다. 재판부의 판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삼성생명노조의 주장은 지나친 월권 행위라는 것이다.

삼성생명노조가 이처럼 무리한 소송을 낸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곧 삼성일반노조 설립의 이유가 된다.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생명노조가 어용노조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김 위원장은 “정상적인 노조라면 해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데, 삼성생명노조는 오히려 해고 노동자들을 궁지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며 “이름만 노조일 뿐 다른 삼성계열사의 노사협의회와 마찬가지로 회사 노무관리 조직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일반노조는 이런 삼성계열사 노조들의 ‘어용성’을 고발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라고 말했다.

생계 팽개치고 현장노동자 민심탐방

이번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법원이 삼성일반노조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삼성일반노조는 그동안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 설립 방해 행위를 비난해왔다. 재판부는 “삼성은 그 규모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공적 인물에 비견되는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설립 방해 여부는 공적 관심사에 해당된다”며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비판한 것은 회사의 명예를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안태윤 변호사는 “이 판결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는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한 것으로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성환 위원장은 지난 1996년 이천전기(주)에서 해고됐다. 업무 시간에 ‘불법 유인물’을 배포하고 ‘불법 단체’를 구성했다는 게 해고 사유였다. 이천전기는 삼성그룹이 93년부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97년 완전 인수한 뒤 곧바로 계열 분리한 회사다. 이천전기에는 당시 어용노조가 있었는데, 김 위원장은 96년 노사협의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민주노조 설립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특히 이천전기가 삼성으로 넘어갈 경우 발생할 대규모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김 위원장이 회사쪽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어느날 점심시간에 노조 민주화와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렸는데,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더니 잘라버리더군요.”

김 위원장은 곧바로 복직 투쟁을 벌였다. 회사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유인물도 돌렸다.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출퇴근 때마다 회사 동료들이 전해주는 덕담과 위로가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삼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묘한 회유책으로 김 위원장과 함께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일했던 동료들을 ‘격리’시켰다. 김 위원장은 점점 고립됐다. “3개월 정도 지난 뒤 별 성과가 없어서 포기하려고 했죠. 나도 먹고살아야 되니까 다른 직장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노조 설립은 노동자의 기본권인데, 여기서 중단하면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 아닙니까.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죠. ”

김 위원장은 복직투쟁을 하면서 자신처럼 부당하게 해고된 삼성계열사 노동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조직적인 싸움을 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SDI와 삼성중공업, 삼성생명에서 해고된 노동자들과 함께 지난 2002년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복직투쟁은 쉽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동료들은 그 원인을 치열하게 분석한 결과, 복직 문제는 삼성 내에 민주적인 노조가 설립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지난 2003년 삼성해복투를 삼성일반노동조합으로 전환해 삼성계열사의 민주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김 위원장은 전국의 삼성계열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조에 대한 ‘민심’을 파악했다. “삼성 노동자들도 노조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쪽은 삼성의 노동자들이 다른 업체들에 비해 보수가 높다고 선전하지만, 그건 그만큼 잔업과 특근을 많이 하기 때문이죠. 삼성의 노동자들도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정, 저임금,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 노-노 차별과 그에 따른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과의 싸움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한계가 컸다. 현장 노동자들한테서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으고 있지만 조직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김 위원장은 한달에 한차례씩 지방을 돌아다니며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위원장 가족의 생계는 전적으로 부인의 몫이다. “단 한푼도 집에 가져다 주지 못하고 오히려 용돈을 타서 쓰고 있으니 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죠.(웃음)” 올 초에는 대안학교에 진학하는 큰 아이의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삼성쪽서 소송… 유죄 인정되면 구속

삼성쪽은 김 위원장을 상대로 크고 작은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3년 7월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삼성쪽은 또 명예훼손 혐의로 김 위원장을 고발했는데, 재판 결과 유죄가 인정되면 집행유예 기간 중이기 때문에 구속을 면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삼성의 ‘노조관’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대거 진출했으니까 앞으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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