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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팽나무? 유명해지면 나무는 죽는다

경남 창원 ‘우영우 팽나무’ 주변 풀 깎고 하루 수천 명씩 밟으면서 ‘가뭄 현상’ 나타나
인간의 이기 속에 신음하는 보호수들은 팽나무의 미래?
등록 2022-08-25 23:56 수정 2022-08-26 10:32
2021년 9월 촬영한 ‘우영우 팽나무’의 모습. 지금은 흙바닥으로 드러난 팽나무 주변이 풀로 뒤덮여 있다.

2021년 9월 촬영한 ‘우영우 팽나무’의 모습. 지금은 흙바닥으로 드러난 팽나무 주변이 풀로 뒤덮여 있다.

‘우영우 팽나무’가 있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부마을은 대산평야 북쪽 낙동강과 맞닿은 낮은 구릉(석암산)에 있다. 2022년 8월11일 오후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주말엔 1만 명이 왔고, 평일에도 2천~3천 명이 찾는다”고 안내 요원이 말했다. 생수와 음료를 파는 간이 판매점도 생겼다. 마을 담벼락 곳곳에 돌고래 벽화가 그려졌고,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팽나무 굵은 줄기 아래를 감싼 금줄에는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면서 꽂아놓은 1천원 지폐 수십 장이 매달려 있었다.

여름 낙엽, 창원시는 “알락진딧물 때문”

“예년 이맘때는 잎사귀들이 촘촘하게 덮어줘서 이 나무 아래에 서면 어두컴컴했습니다.” 기자와 동행한 박정기 ‘노거수(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가 팽나무 아래에 서서 말했다. “7월 하순부터 2~3일에 한 번씩 나와서 상태를 살펴보고 기록하는데, 7월27일 낙엽이 지기 시작해 보름 만에 잎이 10%가량 떨어졌어요.”

아래를 보니 노랗게 된 팽나무 잎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위를 보니 잎 없는 빈 가지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박정기 활동가는 2015년 초 ‘동부마을 팽나무’가 현존하는 국내 팽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생육 상태가 좋다는 사실을 언론 등에 알렸고, 창원시에 보호수 지정을 건의했다. “지금은 잎이 한창이어야 하는데 낙엽이 집니다. 멀리 있는 잎부터 연노랑으로 색이 바뀐 뒤 형태 변화 없이 떨어지는 건 수분 부족 때문입니다. 창원시는 알락진딧물 때문이라고 보던데, 진딧물 피해는 잎이 유(U)자 또는 둥글게 말리며 떨어져서 다릅니다.”

박 활동가는 창원시가 나무 관람을 위해 주변 풀을 모두 베어버린 일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현재 흙바닥인 언덕은 1년 전만 해도 초원이었다. 허리춤까지 자란 풀은 땅속 수분을 잡아주는 구실을 한다. 7월24~25일 창원시는 팽나무 주변 풀을 완전히 제거했다. “풀을 베어낸데다 하루에 수천 명씩 사람들이 잔뿌리가 있는 땅을 밟자 땅이 굳어져 나무가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이지 못해 ‘가뭄 현상’이 나타났어요. 나무가 살아보려고 멀리 있는 잎부터 떨어내는 겁니다.”

이 팽나무의 상태를 사진으로 살펴본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는 “유명해지면 나무는 죽는다”고 걱정하면서 “저 팽나무의 수관폭(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최대 폭·그림 참조)에는 펜스(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 일부터 긴급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쪽에 설치된 시멘트 석축도 걷어내고 그 위에는 나뭇잎을 10㎝가량 덮어줘야 한다”고도 했다. 2019년 전남 광양 유당공원 이팝나무 보호수를 조사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이 명예교수는 “공원을 재개발한다고 원래 있던 수관폭 내 울타리를 없앴다. 많은 사람이 잔뿌리 위를 밟고 다니면서 상태가 아주 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2022년 8월11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동부마을에 있는 팽나무 보호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22년 8월11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동부마을에 있는 팽나무 보호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북서울꿈의숲 보호수의 고사 원인은 복토

나무의 잔뿌리는 동물로 치자면 음식을 먹는 ‘입’이다. 나무를 지탱하는 구실을 하는 굵은 뿌리에서 자라난 연한 잔뿌리는 흙 속의 빈 곳을 찾아 파고들어 틈틈이 자리잡은 물과 양분을 섭취한다. 특히 수관폭 아래 1.5~3배 면적에 있는 20~30㎝ 깊이의 흙은 나무의 잔뿌리가 양분과 수분을 가장 왕성하게 섭취하는 곳이다. 이곳이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됐거나 10㎝ 깊이 이상 흙으로 덮여 있으면, 즉 복토가 되면 잔뿌리가 굶어죽고 가지와 잎은 고사한다.

“토양이라는 게 고체 상태의 ‘흙’뿐 아니라 그 속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공기와 물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석축을 쌓는 등의 복토는 나무가 토양 속 공기와 물을 섭취할 수 없도록 하는 위험한 행위다.” 2022년 8월4일 경기도 용인 서울나무병원에서 만난 이승제 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가 강조한 말이다. 그는 30여 년 동안 노거수를 치료해왔다.

이 교수는 직접 참여했던 나무 치료 사례들을 소개했다. 2005년 서울 정동 캐나다대사관 앞의 회화나무 보호수가 고사하기 직전이었다. 이 교수 등이 뿌리 상태를 확인하려 흙을 걷어내자 뿌리의 상당 부분이 죽어 있었다. 60~70㎝ 아래로 흙을 파내려가자 보도블록이 나왔다. 30~40년 전에 정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복토가 됐고, 이 때문에 잔뿌리가 제대로 뻗지 못해 고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에도 서울 ‘북서울꿈의숲’ 보호수 하나가 고사 직전이라 가서 살펴보니 원인은 역시 복토였다. 개발하면 굴곡진 땅을 평탄화한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한다고 전국 노거수에 석축을 쌓았는데, 이 후유증으로 1972~1984년 전국 보호수의 33%가량이 고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노거수는 살아온 힘이 있기 때문에 일시에 죽진 않는다. 20년 이상 신음하면서 서서히 죽는다. 그러니 공무원이나 시민은 왜 죽었는지 모른다. 잎에다 비료 주고 땅에 영양제 넣고, 수간주사를 놓지만 결국 죽는다. 그러면 ‘자연고사다’ 하면서 넘어간다.”

죽은 나무가 남긴 후계목만

경기도 수원 영통구 단오어린이공원의 높이 33.4m에 500살 된 ‘영통 느티나무’(보호수)는 2018년 6월26일 강풍이 불자 여섯 갈래로 쪼개지며 쓰러졌다. 나무가 고사한 뒤에야, 속이 썩어 들어가 나무에 큰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사 11일 전까지만 해도 나무의 잎이 무성했고, 나무 앞에서 청명단오제가 열렸다. 영통 느티나무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 근처에서 구렁이 울음소리가 났다’는 등 500년간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다. 김진환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활동가는 “수관 아랫부분을 석재로 덮어놓은데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압력이 가해져 겉흙이 굳어 수분 흡수가 어려워지면서 오랫동안 썩다가 일시에 고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22년 8월5일 찾은 단오어린이공원. 고사한 느티나무 바깥쪽으로 뒤늦게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영통 느티나무’ 밑동에서 자라난 새싹으로 키워낸, 어른 손목 굵기의 가녀린 후계목 24그루가 쓸쓸하게 서 있었다.

창원=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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