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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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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사태는 산림청이 일으켰다

벌목 허용 수령 높이고 ‘새로 심기’ 비용 지원 중단해야
등록 2021-05-29 11:53 수정 2021-06-04 01:18
정부의 부적절한 ‘모두베기 뒤 새로 심기’에 대한 비용 지원으로, 강원도 홍천의 한 산숲에서 별 쓸모가 없는 작은 나무들이 무분별하게 베어지고 있다. 최병성 환경운동가·목사 제공

정부의 부적절한 ‘모두베기 뒤 새로 심기’에 대한 비용 지원으로, 강원도 홍천의 한 산숲에서 별 쓸모가 없는 작은 나무들이 무분별하게 베어지고 있다. 최병성 환경운동가·목사 제공

2021년 1월20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30억 그루 나무심기’ 기자회견에서 박종호 당시 산림청장은 벌기령(베기가 허용되는 나이)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박 청장은 “30억 그루 중 27억 그루를 국내에 심는데, 벌기령을 대폭 단축해 새로 조림하는 방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벌기령은 이미 단축했다. 2014년 정부는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해 국유림 35~70년, 공·사유림 30~60년이던 벌기령을 각각 30~60년, 25~50년으로 줄였다. 공·사유림 중에서도 기업 경영림은 벌기령이 더 낮아 20~40년에 불과하다.

한국의 전체 산숲에서 23%를 차지하는 국유림은 벌기령이 비교적 높고 정부가 공익을 위해 나무베기를 통제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산림의 67%에 이르는 사유림이다. 사유림은 국유림보다 벌기령이 낮고 개인의 나무베기를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

한국 벌기령 20~60년, 스웨덴은 70~150년

사유림의 벌기령을 나무별로 보면 잣나무가 50년으로 가장 길다. 그다음은 일반 침엽수와 일반 활엽수, 소나무로 40년이고 낙엽송과 삼나무가 30년, 리기다소나무와 참나무가 25년으로 가장 짧다. 목재 가치가 최상급인 참나무는 국유림에서 60년인데, 공·사유림에선 25년으로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문화재 복원에 쓰이는 경북 봉화의 춘양목은 100년이고, 포플러는 3년이다.

한국의 벌기령을 외국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숲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50~80년 정도의 벌기령을 운영한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선 50년 이하 침엽수, 70년 이하 활엽수는 모두베기(개벌)를 금지한다. 또 라인란트팔츠주에서도 50년 이하 침엽수, 80년 이하 활엽수의 베기를 막는다. 독일은 숲을 가꿔온 역사가 3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이케아의 고향이자 역시 숲 선진국인 스웨덴의 벌기령은 독일보다 더 높다. 스웨덴 남부는 70~90년, 북부는 120~150년에 이른다. 한국의 3~5배가량 되는 것이다. 스웨덴의 벌기령을 한국에 적용하면 벨 수 있는 나무가 거의 없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한국의 벌기령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보다 30~50년 정도 더 높여 벌기령을 70~80년 이상으로 해야 한다. 경북 봉화 춘양목에서 보듯 가치 있는 나무로 쓰려면 100살 이상 돼야 한다.” 이에 대해 최병암 산림청장은 “국유림은 공익을 고려해서 벌기령을 높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유림은 개인 재산이어서 벌기령을 더 높이기는 어렵다. 현재 기준을 유지하려 한다. 독일과 스웨덴은 우리보다 추워서 나무의 성장 속도가 느리다. 똑같이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산숲의 나무들도 오래 키우면 고급 목재가 된다. 옛 건축물 복원에 사용하는 최고급 목재를 키우는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의 춘양목 숲. 산림청 제공

한국 산숲의 나무들도 오래 키우면 고급 목재가 된다. 옛 건축물 복원에 사용하는 최고급 목재를 키우는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의 춘양목 숲. 산림청 제공

어린나무 베어서 90%가 저급재로

낮은 벌기령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되는 나무의 90% 가까이가 저급재로 사용되고 있다. 보드(나뭇조각이나 가루를 합성한 제품)나 펄프(종이 원료), 바이오매스(부산물 땔감) 등이다. 나무 크기가 작아 가구나 건축재로 쓰기 어렵다. 고급재라고 할 제재목(원목) 사용률은 2016년 17.0%에서 2017~2020년 12.5~13.9% 수준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국내산 나무의 쓰임새는 제재목(12.7%)을 제외하고 보드 27.9%, 기타 26.7%, 펄프 20.3%, 바이오매스 12.4%였다. 2020년 한국에서 벌목된 나무의 87.3%가 가치가 높은 원목 상태로 쓰이지 못하고, 분쇄돼 다른 제품의 원료로 사용된 것이다.

원목 상태와 원료 상태의 나무 가격 차이는 엄청나다. <한국목재신문> 윤형운 대표에 따르면, 현재 수입 제재목(원목) 가격은 1㎥당 15만~50만원(침엽수), 100만~500만원(활엽수)인데, 국내산 보드·펄프·땔감용 나무 가격은 1㎥당 4만~6만원(침엽수), 6만~8만원(활엽수) 정도다. 서울대 윤여창 교수(산림과학)는 저급재 사용이 최근 산림청이 내세운 탄소 흡수에도 정반대 효과를 낸다고 지적한다. “가구나 건축재로 사용되는 제재목은 탄소 저장 효과가 수십 년에서 100년 이상 되지만, 가루·조각·땔감으로 쓰이면 탄소가 단기간에 또는 즉시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또 벌채 과정에서 토양에 저장된 탄소까지 배출된다. 산림청이 추진하는 ‘모두 베고 다시 심기’는 탄소를 더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배출하는 일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나무를 가장 가치 없게 쓰고 탄소도 즉시 배출하는 바이오매스(땔감)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원래 바이오매스란 벌목이나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잔가지나 톱밥 등을 발전소나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는 이런 부산물이 아니라 바로 벤 생나무까지 바이오매스로 쓴다. 이런 바이오매스 사용은 2016년 벤 나무 중 3.6%에서 2020년 12.4%로 3배 이상 뛰었다.

김수진 기후솔루션 선임연구원은 “산림청은 나무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는 벤 작은 나무를 쓸 곳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장 가치가 낮은 바이오매스로 쓰는 것이다. 정부가 나무를 가치 있게 쓰려면 40~50년 된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산림청과 벌목 사업자만 이익 보는 사업

작은 나무를 베어 팔면 가격이 싸서 산주(산 소유자)는 이익을 볼 수 없다. 현재는 산주가 나뭇값으로 나무 베는 비용을 내기도 어렵다. 벤 자리에 새로 심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작은 나무를 베는 건 엄청난 적자다. 그런데 왜 산주들은 베고 심기를 계속하는 걸까? 홍석환 교수는 “산의 작은 나무를 베서 팔면 산주도 다른 시민도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이 사업을 시행하는 산림청과 산림조합, 벌목 사업자만 이익을 본다”고 했다.

그래서 윤여창 교수는 모두베기 뒤 ‘새로 심기’ 비용을 정부가 더는 지원해선 안 된다고 했다. 현재는 재조림 비용의 90%까지 정부가 지원한다. “재조림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산주 가운데 경제적으로 최적의 나이에 이르지 않은 나무를 벨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산주의 법적 의무인 재조림을 스스로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의 이 모두베기 사태는 산림청의 부적절한 지원으로 일어났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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