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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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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 불운 아닌 정의의 문제

지난 7월 춘천 산사태를 계기로 되돌아본 자연재해… 석유·석탄 대량 사용이 불러온 이상기후는 시스템 탓
등록 2011-10-07 05:19 수정 2020-05-02 19:26
» 지난 7월27일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인근 산사태로 매몰된 건물에서 119 구조대원이 매몰자를 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 지난 7월27일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인근 산사태로 매몰된 건물에서 119 구조대원이 매몰자를 수색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지난 7월27일 0시21분 무렵, 강원도 춘천 상천초등학교에서 여름 봉사활동을 하는 인하대 학생들이 묵고 있던 민박집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무너져 학생 10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이 죽고 26명이 다친 대참사가 발생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우면산에서 일어난 같은 사고로 16명이 죽었다. 당시 언론은 기상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두 참사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보도했다. 사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달라는 유족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안타깝지만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 교수(지반공학을 전공한 산사태 분야의 전문가로 춘천에 근무하고 있다)는 전국의 산사태 현장을 지금까지 수십 년 다녔고 춘천시 현장 조사도 수차례 했지만 자신도 거기서 사고가 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단다.

불운인가 부정의인가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상태가 갈수록 불안정해짐에 따라 집중호우 강도가 높아지리라는 점은 이제는 일반 시민의 상식이 됐다. 기상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자연재해는 풍수해로 강수 강도와 호우 일수가 증가하고 있어 태풍 및 호우로 인한 자연재해의 발생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일찍이 미국의 정치철학자 주디스 슈클라는 ‘수동적 부정의’(Passive Injustice) 개념을 제시하며 “부정의(Injustice)와 불운(Misfortune)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슈클라는 수동적 부정의를 ‘부정의를 직접 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피해를 예방 또는 경감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아니함으로써 생기는 부정의’로 정의하며 지진을 예로 들었다. 지진은 자연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적으로 희생자가 감수해야 하는 불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규정을 어기고 건물을 부실하게 지은 시공사, 지진 예보를 하지 않은 관련 당국, 재난에 대비한 구호체계 마련에 소홀히 한 공공기관 등이 재앙에 기여하거나 피해를 심화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정태욱, 에서 인용)

춘천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단지 불행한 자연재해 희생자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최근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인류 활동으로 발생한 지구 온실가스’라고 적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류 활동, 좀더 정확히는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지구적) 산업자본주의 체제일 것이다. 근자에 ‘부정의의 기후’(a Climate of Injustice)라는 말이 등장했다. 자연현상인 기후를 두고 부정의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론에 부닥칠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의의 기후’라는 개념은 기후변화에 의한 도서국가나 이누이트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선진국이 회피하려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비꼰 말일 것이다. 춘천 참사로 돌아와 다시 묻는다. 이 참사를 하늘의 탓으로만 돌려도 될까.

» 산림청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상의 ‘산사태 위험지 정보 지도’에 따르면 7월27일 자정께 마적산 산사태 지점 인근은 ‘산사태 위험 1등급’으로 분류돼 있다.(X표 지점이 산사태 발생지점, 붉은 색 부분이 산사태위험 1등급 지역)

» 산림청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상의 ‘산사태 위험지 정보 지도’에 따르면 7월27일 자정께 마적산 산사태 지점 인근은 ‘산사태 위험 1등급’으로 분류돼 있다.(X표 지점이 산사태 발생지점, 붉은 색 부분이 산사태위험 1등급 지역)

구호체계 마련 소홀도 재앙에 기여

사고는 마적산 정상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한 것이다. 마적산 정상에는 방치된 방공포대와 군사도로가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 9월과 1999년에도 사고 주변 지역에 산사태가 있었다. 지난 7월의 사고는 마적산 정상에서 시작된 산사태가 집중호우로 상당량의 강우를 머금고 있던 산중턱을 휩쓸고 내려가며 순식간에 생긴 다량의 토석류가 산 아래 민박집을 덮쳐 생긴 재해다.

산사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춘천시는 사고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유족이 추천한 3명을 포함해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위원회에서 합의해 제출한 조사계획에 대해 춘천시장이 조사사항이 지나치게 광범하다는 이유를 들어 계획을 수용할 수 없다며 거부해 위원회는 실질적 조사를 해보지도 못한 채 해체됐다. 다만 위원회가 해체되기 전까지 위원들의 개별적 현장조사와 춘천시가 위원회에 제출한 행정자료를 토대로 유족 쪽 조사위원들은 행정 측면에서의 사고 원인으로 △방공포대 및 군사도로의 관리 부실 △산사태 발생 지역의 주변 배수 시스템 관리 부실 △산림청 지정 산사태위험1등급지역 관리 부실 등을 지목했다. 나도 조사위의 유족 추천 조사위원이었다. 춘천시는 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해당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했다. 특히 ‘사고 발생 지역이 산사태위험1등급지역인데 춘천시는 어떠한 관리를 하고 있었나’라는 위원회의 질의에 대해 춘천시는 “춘천시 전체 산림의 60%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이 산사태위험1-2등급지역으로 지정돼 자체적으로 위험 판정 기준을 정해 현재 2곳을 산사태위험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우리 헌법 제34조에서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의무를 이행하려고 자연재해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시장에게 산사태위험지역 등 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해 재해방지사업을 실시할 것을 명하고, 또 필요한 경우 동 지구에서 건축허가 등 행위 제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사고 발생 지역의 주변은 산림청이 지정한 산사태위험1등급지역이다. 산림청은 △경사 길이 △모암 △경사 위치 △임상 △사면 형태 △토심 △경사도 등을 기준으로 산사태발생위험등급을 1∼4등급으로 구분하고,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sansatai.foa.go.kr)을 구축해 그 정보를 이용토록 하고 있다.

또한 산사태가 일어난 그 지역은 방공포대와 군사도로 설치, 관리 부실로 인해 토양지지력이 약화돼 산사태 위험이 증가된 곳이다. 게다가 과거에 두 차례나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객관적’으로 산사태 위험도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춘천시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자연재해법이 수여한 지구지정 등의 권한을 적절히 행사했더라면 사고지역은 자연재해지구로 지정되고 건축허가도 적절히 규제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사태에도 ‘불구하고’ 인명 손실이라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기후의 ‘살인 사인’ 감지해야

춘천시 산림의 60%가 산사태위험1-2등급지역으로 춘천시의 가용 인력과 예산 등에 비춰 사실상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면책의 항변은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헌법적 의무의 엄중성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다. 더군다나 인명 또는 재산 피해를 주지 않는 산사태위험지역은 재해지구지정에서 제외한다는 ‘자연재해위험지구 관리지침’에 의거해 춘천시로서는 재해위험지구로 관리할 대상 지역을 적절히 선별할 수도 있었다. 산사태위험1-2등급지역이 광범위함에도 단지 2곳만을 산사태위험지역으로 지정하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닌가. 엉뚱한 소리일 수 있지만 나는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를 연쇄살인범으로 상상하고 재해 예방에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이상기후는 ‘살인하겠다’는 사인을 줄곧 보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사인을 확실히 감지했다. 자, 다음은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가. ‘재난행정’의 중점 과제는 재해의 사후 복구가 아니라 사전 예방에 있다. 수많은 생명을 잃은 데서 국가와 지자체는 철저히 배우고 대비해야 한다. 이를 단지 불운으로 치부하고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그 생명이 참으로 서럽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환경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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