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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는 악취 제조기?

등록 2000-07-19 15:00 수정 2020-05-02 19:21

폐기물 불법 매립으로 병드는 산… 지하수, 약수 오염까지 우려돼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는 거마산이란 이름의 250m의 야트막한 산이 있다. 요즘 물박달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등이 어우러져 한껏 녹색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다. 산딸기와 원추리꽃도 이 향연에 빠질 수 없다는 듯 자태를 뽐낸다. 거마산은 특히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어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녹색연합 생태조사팀은 바로 이 거마산에 쓰레기 불법매립이 이뤄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지난 7월12일 사실 확인작업에 나섰다. 불법매립 현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악취 때문이다. 냄새나는 곳을 손으로 파보니 우유팩, 건빵봉지 등 식품포장지가 나타났다. 이곳을 삽으로 파들어가니 캔, 무전기 배터리, 군용양말, 전투화끈, 군용전화기선 등 각종 쓰레기들이 무더기로 흉한 몰골을 드러냈다. 내용물로 봐 누가 봐도 한눈에 군부대에서 버린 것임을 알 수 있는 쓰레기들이다.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인근 군부대가 함부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번개부대가 모기를 키운다?

훈련장 근처의 부대는 바로 육군 0000부대로 일명 번개부대로 불린다. 불법투기 현장은 대체로 이 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유격훈련장 근처 숲 속 일대였다. 마치 비무장에 지뢰를 매설한 것처럼 훈련장의 야영터를 중심으로 주변 곳곳에 쓰레기를 묻고 흙으로 덮어놓은 것이다.

쓰레기는 비단 숲 속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군훈련장 노천 곳곳에도 흙묻은 폐타이어를 비롯해 폐식용유통이 함부로 버려져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훈련용으로 쓴 연막수류탄까지 그대로 뒹굴고 있었다. 이 수류탄을 들어보니 검은 폐유 같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포탄 껍데기도 시멘트포장지처럼 뒹굴고 있었다. 쓰레기 매립 주변에는 모기가 유달리 많았다. 모기는 아무래도 음식물 쓰레기의 침전물 때문에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주민들은 “훈련장을 관통하는 등산로 양쪽에는 왠지 모르게 모기가 엄청나게 많다”면서 “주변에 큰 호수도 없는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쓰레기는 등산로 주변에도 곳곳에 파묻혀 있었다. 그늘져 쉽게 보이진 않지만 숲 속으로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면, 쓰레기의 무단투기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인근 지역주민들의 등산로가 조성돼 있는데도 군부대가 등산로 주변 숲 속에 쓰레기를 그대로 묻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거마산 불법매립은 기실 군부대의 환경의식이 얼마나 척박한지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사례다.

군부대가 무단으로 투기한 폐기물이 토양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다. 축축히 젖은 음식폐기물은 지하수 오염의 직접적인 원인도 된다. 더욱이 바로 인근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는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군부대가 들어선 지 30년이 됐다고 하니 각종 오염이 이미 심각할 정도로 진행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성군 산불은 무단 소각의 '작품'

그런데도 이 부대의 관계자는 “우리 부대의 폐기물 관리는 잘되고 있으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묻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군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는 적법한 처리과정을 통해서 전부 처리하며 소각로도 법정 기준에 의거해 가동하고 있다”며 “민간쪽보다 군쪽의 폐기물 관리가 훨씬 잘되는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야외훈련이나 부대 주변의 훈련장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묻거나 버리는 것은 옛날 얘기며 내년에는 각 부대에 환경특기병까지 운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거마산에서 자행된 불법매립은 이런 군의 장담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방증하고도 남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이 부대에 국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지역주민들이 즐겨찾는 휴식처인 서대문구 봉원동의 안산은 하루 수백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열일곱곳의 약수터에서 물을 떠가며 운동을 하는 도심의 공원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안산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와 국군통신사령부 통신소가 자리잡고 있어 여기서 나오는 쓰레기가 산을 병들게 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등산로에서 악취가 너무 심하다는 시민들의 제보에 따라 구청과 군부대가 매립쓰레기 제거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군부대쪽은 “97년 쓰레기 종량제 실시 이후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제거작업 과정에서 98∼99년 제조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이 등산로 주변 곳곳에서 나왔다. 당시 안산에는 파리가 활동하기는 이른 시점이었는데도 파리떼가 들끓었을 정도였다. 군부대에서 잔반수거차량을 가져다 버리기가 귀찮아 산 속에 내다버린 음식들이 곳곳에서 악취를 풍겨 파리가 꾄 것이었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을 덮친 산불도 군부대의 불법적인 폐기물처리과정에서 일어났다. 적법한 절차가 아닌 무단으로 쓰레기를 소각하다 큰 불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문제가 우리 산천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군부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면?

현행 폐기물관리법 제7조은 “정당한 사유없이 문화유적지·공원·광장·야영장·해수욕장·도로·항만·어항·하수도·하천·호소·산림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지역 또는 시설에 폐기물을 버려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12조는 “누구든지 폐기물을 수집·운반·보관·처리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 및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런 규정 적용이 군부대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방부가 나서야 할 일

“생활쓰레기든 산업쓰레기는 무단 투기는 불법이다. 숲이나 야산에 조금이라도 그냥 묻거나 버리는 것은 불법이다. 담배꽁초 하나 버리는 것도 5만원의 벌금을 문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도 분리수거가 법제화되어 있는 세상에 (군부대라고 해서) 그냥 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환경부 폐기물 담당자 오화석씨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폐기물관리법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군부대에서 쓰레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환경부나 자치단체의 관리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속이나 관리감독이 군부대란 이유로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오직 군당국이 스스로 잘 처리해주길 바라는 형편인 탓이다. 따라서 국방부나 육군본부가 환경의식을 가지고 쓰레기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군부대 인근은 어느새 쓰레기장이 될지 모를 일이다.

군은 유사시를 대비하여 국방부 장관부터 말단 소대까지 일사불란한 체계를 자랑한다. 그러나 환경관리만은 위와 아래가 따로 놀고 있는 듯하다.

서재철/ 녹색연합 생태보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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