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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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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떡볶이, 아이들이 바라는 것

등록 2021-11-14 15:06 수정 2021-11-15 02:42

졸업한 학교가 폐교된 경험이 있나요?

도시에서 태어나 신설 학교만 다녔던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폐교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현재 교육부는 초등학교에 대해 면 지역 전교생 60명 이하, 읍 지역 120명 이하, 도시 지역 240명 이하를 폐교·통합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준에 해당하더라도, 그 학교가 지역에 유일하다면 폐교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제1387호 표지이야기에서 찾아간 경남 거창군 신원초등학교도 그렇습니다. 전교생이 25명(병설유치원을 포함하면 33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지만, 면의 유일한 초등학교라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한 것을 슬퍼하고 있을 거란 어림짐작으로 신원초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30분씩 버스나 택시를 타고 읍내에 나가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집 앞에 편의점이 몇 개나 있고, 앱 클릭 몇 번이면 택시를 부를 수 있고, 동네 의원부터 대형 병원까지 도처에 널린 생활이 너무 당연한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불편의 수준이 겨우 거기까지였습니다.

아이들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야만 거창읍에 나갈 수 있는 것도, 큰 병원에 가려면 대구나 진주에 가야만 하는 것도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저출생’ ‘다문화가정’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학교가 없어질지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담담했습니다. “초등학교는 제가 학교 다닐 때까지만 안 없어지면 돼요. 중학교는 차 타고 가면 되죠.”

‘어른스러운’ 말에 놀랐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였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산에서는 폰으로 몇 번만 눌러도 배달이 되는데…. 여기서 배달의민족 앱 켰더니 텅 비어 있었어요.” 부산에서 전학 온 4학년 선아의 말에 친구 지민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배달의민족이 뭐예요?” 아이들은 배달 플랫폼이 뭔지 모릅니다. 학교 앞에 있는 피자·치킨가게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스티커를 사서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하는 지민에겐 신원면에 생활용품점 다이소가 생기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저는 다이어리 꾸미는 거 좋아해요. 거창읍에 가면 다이소가 있는데 갈 때마다 스티커를 사와요. 그리고 학교 끝나고 떡볶이 사먹어보고 싶어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문방구에서 스티커를 사고, 배달 플랫폼으로 음식을 시켜 먹는 일, 소박한 꿈이지만 이뤄지긴 어렵습니다.

‘저 정도면 학교를 폐교해야 하는 거 아닌가?’(pupu****) ‘숫자가 적으면 폐교해야지. 한두 명 때문에 학교 유지하냐?’(teac****)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이 마을에서 만난 한 30대 청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신원초와 신원중을 졸업했지만, 폐교될 수순이라면 그게 맞다고 봐요. 세금을 엄청나게 들여서 몇 가구 더 마을에 들어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국에 소멸도시가 한두 군데도 아닌데, 소멸될 곳은 소멸되는 게 맞는다고 봐요.” 어쩌면 이것이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좋은 모델이 되어 도시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분산되길 바라봅니다’(yung****)라는 댓글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원면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그 희망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2021 소멸도시 리포트’를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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