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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80%, 그들에겐 없는 선택지

등록 2021-05-23 13:45 수정 2021-05-2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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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했나요?”

지난 몇 달간 안부처럼 물었습니다. 1인가구인 30대 두 명이 잇따라 집을 구하는데 그 여정이 녹록지 않아 보였습니다. 출퇴근이 가까운 곳은 월세가 비싸고 무엇보다 방 크기가 4.235평(14㎡·1인가구의 최저주거기준)을 갓 넘었습니다. 빨래를 복도에서 널어야 하는 주거형 오피스텔의 전세보증금은 2억여원, 게다가 쓰임을 알 수 없는 관리비도 10만원 가까이 됩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주택도 웬만해선 1억원이 훌쩍 넘습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도 ‘서울엔 우리 집이 없’습니다. 공항철도를 타고 경기도 김포로, 인천으로 날마다 여행을 가야 할 상황입니다.

없는 선택지를 두고 고심하는 그들을 보며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2021년 3월 ‘문재인 투표층’(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의 생각 변화를 알아보는 여론조사(제1354호)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20대가 가장 혹독한 평가를 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문재인 투표층’인 20대의 부정적 평가(75.1%)는 평균(68.5%)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습니다.

‘25년 전 나와 그들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봤습니다. 처음 사회적·경제적 독립을 했을 때 저도 좁고 작은 ‘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취업하면 결혼하면 그 방에서 ‘곧’ 탈출하리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집’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2030세대에게 제 경험을 얘기하며 ‘젊은 한때 고생’이라고 ‘돈 모아서 더 나은 곳으로 가서 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취업도 결혼도 그때보다 힘들고 늦어졌지만 무엇보다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월급 모아 집을 사는 주거사다리는 완전히 무너졌으니까요.

이번호에선 주거빈곤을 표현하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는 아니지만 5평 남짓한 원룸을 짧게는 1년, 길게는 14년간 맴도는 2030세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청년가구(가구주 연령이 만 20~34살)의 절반(42.2%)이 침실, 거실, 부엌이 하나의 공간에 모인 ‘원룸’(하나의 방)에서 삽니다. 이 작은 방은 큰 방을 쪼갠 경우도 흔합니다. 새로 도배하려고 기존 벽지를 뜯어보니 가벽과 옆집으로 통하는 문이 나타나고, 옆집에서 ‘누구야’ 부르면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방음이 안 됩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온라인수업 등 일상이 작은 방을 꽉 채우면서 비루한 현실을 마주할 순간도 자주 찾아옵니다. 화상으로 과외 수업을 하는데 괜찮은 뒷배경을 찾는 게 쉽지 않고, 홈트레이닝을 하며 손발을 쭉쭉 뻗었더니 턱턱 여기저기에 부딪치고, 책상에 앉아 발을 뻗으면 침대가 닿아 그곳으로 굴러 들어가기 일쑤입니다.

여기는 거쳐가는 곳이라고, 여기서 곧 떠날 거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지만 체념은 자꾸만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윳돈이 생겨도 전셋집으로 옮겨 돈을 묶기보다는 주식을, 코인(암호화폐)을 삽니다. 방에서 살아야 하는 시간은 더 길어집니다. 해법은, 없어 보입니다. 집값 상승은 근로소득 상승을 훨씬 앞지르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투자도 부모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2021년, 집 구하기는 머나먼 꿈입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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