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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다시 잔인한 봄

등록 2021-04-10 11:57 수정 2021-04-1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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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날이 쌓여갑니다. 술에 취하면 실신하듯 쓰러졌다가 새벽에 일어나면 다시 잠들지 못합니다. 낮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한두 시간의 잠으로 하루를 버팁니다.

다시, 잔인한 봄입니다. 2014년 4월16일 304명과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7년.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과 마주해야 합니다. 매년 그랬습니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 도보순례단의 ‘로드매니저’가 돼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전남 진도군 팽목항까지 38일간 동행했습니다. 2015년 세월호 진실에 한발 다가가는 탐사보도를 10개월간 진행하고 2016년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에 참여해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썼습니다. 2017년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인양될 때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섬, 동거차도에 들어가 열흘간 머물렀습니다. 2018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외부집필위원으로 침몰 원인을 짚어보는 종합보고서를 썼고, 2019년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그리움을 껴안은 세월호 엄마 아빠의 육성을 담은 4·16 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하다>를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해경 지휘부의 구조 실패 재판을 본 소감을 제1310호부터 연재하도록 했습니다.

2021년 봄, 이제는 묻고 싶어졌습니다. 2014년과 2019년의 검찰 조사와 2015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2017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2019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이 구성돼 진상 규명에 나섰는데도 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그 답의 조각을 박상은 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 지난 2월에 펴낸 논문 ‘재난 인식론과 재난조사의 정치: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에서 찾았습니다.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외부집필위원에 이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집필위원으로도 참여한 그는, 충북대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박 전 조사관은 이번호에서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은 지난 7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즉 재난 조사의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조사 실패 원인으로 사법 처리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사회구조적 진상 규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먼저 검찰은 비리 원인을 파헤치지 않고 개인 혐의만 나열하고 그마저도 해경 지휘부, 청와대 같은 권력 상층을 수사할 의지가 없었습니다.

사회구조적 원인을 밝히려 구성한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도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우선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 방향 없이 신청사건 처리에만 급급해 사건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때 그 활동이 강제 종료되면서, 역량 부족에도 불구하고 면죄부를 얻었습니다. 촛불집회 이후 출범한 선체조사위원회는 순조로운 출발과 달리, 침몰 원인을 합의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상당 부분 일치함에도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종합보고서를 따로 내놔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무엇이 더 있기에 조사 결과를 합의하지 못했단 말인가?’

다행인 것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아직 1년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 조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잔인한 봄이 오더라도 잠들 수 있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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