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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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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는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등록 2020-06-27 06:44 수정 2020-06-27 06:44

제1317호 표지이야기 ‘n번방 이전의 n번방’ 기사가 인터넷에 나간 6월15일, <한겨레21>을 들고 기사 속에 등장했던 디지털성착취 피해 경험자인 강지오(16·가명)를 다시 만났습니다. 지오가 당한 성착취 구조보다, 지오가 만든 일탈계정에 성착취의 원인을 돌리는 댓글을 봤던 터라 마음이 무거운 상태였습니다. 지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안 좋은 댓글은 보지 말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지오는 자신의 이야기가 찍힌 활자에서 위로받는 듯했습니다.

지오는 11살 때부터 디지털성착취 피해를 겪었습니다. 가족, 사회, 수사기관의 외면 속에 지오는 자신을 ‘가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트위터 앱을 깔고, 일탈계정을 만들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지오는 가족이나 사회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피해를 참아내야 했습니다. 지오에게 성적 대화를 건네고, 노출 사진을 찍게 하고, 실제 만나서 성행위를 강요한 사람들은 여전히 ‘익명’에 가려진 채 말이죠. 지오처럼 온라인에서 ‘원치 않는 성적 유인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1.1%를 차지합니다. 만남까지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7%입니다. 하지만 지오처럼 성적 유인을 겪지 않더라도 주변에 알리지 않은 경우는 절반을 훨씬 웃돕니다.(58.5%) 이유는 짐작 가능합니다. 심각하지 않아서(59.7%), 빈번히 있는 일이라서(10.9%), 누군가 아는 것이 싫어서(6%)입니다.(여성가족부 ‘2019 성매매 실태조사’)

지오는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경찰에 신고해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지오의 피해를 수사한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까봐 불안합니다. 권현정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부소장도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상당수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부모에게 알려질까봐 신고하기 꺼립니다. 피해 아동·청소년이 원한다면 수사·재판 단계에서 부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넌 잘못한 게 없어. 너에게 좋은 사람들만 다가오길 기도할게.” “네 탓이 아니라고 한명 한명 말해주고 싶을 만큼 슬프고 안타깝다.” 지오를 만나고 며칠 뒤 지오를 응원하는 댓글 몇 개를 갈무리해 보냈습니다. 지오는 “제 편에 서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네요. ㅠㅠ”라고 답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버팀목이 되어 사회가 지오를 피해자로 인정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왜 앱을 깔았니”라고 묻기보다 가해자에게 “왜 접근했냐”고 물어야 합니다. 피해자를 가리키는 손가락 끝은 이제 가해자로 향해야 합니다. 지오처럼 디지털성착취를 겪은 피해자들이 회복하는 첫걸음은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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