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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마이크를 주지 마라

<한겨레21>이 고른 주간 뉴스
등록 2020-03-28 05:16 수정 2020-05-02 19:29
왓챠플레이 제공

왓챠플레이 제공

이디치디!

코로나19가 모든 이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즘, 더는 “넷플릭스 같이 볼래?”(Netflix and chill)를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처럼 수작을 위한 멘트로 쓰기는 어렵게 됐다. 다들 두문불출이다.

외출도 여행도 출근도 어렵게 된 비상사태에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기를 선택했다. 온갖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전력 질주 중이다. 넷플릭스는 시즌2를 공개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지어 약국 앞에 서 있던 모습과, 드라마의 몇몇 장면이 겹쳐 보이기도 해 오싹하다.

한편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에게 서비스를 무상 지원하고 전 국민 대상으론 사흘간 무료이용권을 통 크게 쏜 왓차플레이도 야심작을 독점 공개했다. 2019년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다. 2019~2034년 영국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상)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새롭다. SF적인 설정보다는 정치사회적인 상황에 주안점을 두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중국과 미국이 긴장 상태로 대립하다 급기야는 핵미사일을 쏘고, 유럽은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인다. 은행이 갑작스레 도산하고 긱이코노미 시장에 뛰어들어 자전거로 택배를 배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독히 현실적이다. 유일한 판타지라 하면 매번 가족 통화를 사이좋게 할 정도로 우애와 다정함을 과시하는 가족애랄까? (요즘 세상에!) 는 기존 최고 인기작이던 과 등 디스토피아 영화를 제치고 5점 만점에 4.48점 평점을 기록하며 호평받았다. 디스토피아적 상황에 두려워하면서도 디스토피아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걸 보면, 한국은 역시 ‘이열치열’의 나라!

천다민 한겨레 젠더 미디어  PD
관심분야 - 문화, 영화, 부귀영화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정효 기자

‘착함’에는 권유형이 없다

코로나19가 만든 유례없는 운동이 있다. 바로 ‘착한 임대인 운동’이다. 건물 또는 점포를 소유한 임대인들이 코로나19로 경기침체가 본격화되자 임대료의 일부를 인하하거나, 한 달 치 월세를 받지 않은 임대인도 등장했다. 정부는 임대인들에게 각종 세액 혜택을 줌으로써 이 움직임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어떤 임대인은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임대료를 안 깎아준다고 세입자가 화낸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다른 한편에서 세입자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보는 게 착한 임대인인데, 우리는 임대료 깎아주겠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것을 보니 우리 조상은 덕이 없었나보다”는 신소리를 한다. ‘착한 임대인 운동’의 성패는 참여하는 임대인 수와 지속 기간, 이로 인한 실질 체감 인하 금액에 달려 있다. 하지만 ‘착하다’는 말은 여성의 몸매에 붙였을 때처럼 모호한 성격이 드러난다. 형용사에 ‘명령형’이 불가능한 것처럼 ‘권유형’도 불가능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최대 세입자 조직인 ‘테넌츠 투게더’(Tenants Together)는 세입자를 위한 보호와 유예 조치 도입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다섯 가지를 즉시 시행하라고 주장한다. 첫째, 당분간 모든 강제퇴거와 차압은 이유를 막론하고 중단한다. 둘째, 임대차 분쟁이 진행 중인 재판을 일절 중단하고, 분쟁 소송 패소로 인한 퇴거가 예정된 세입자의 퇴거를 유예해야 한다. 셋째, 주택 구입을 위한 이자 지원·면제처럼 임차인에 대한 임대료에도 동등하게 시행돼야 한다. 넷째, 현재 코로나로 중단된 기본 사회서비스를 재개해야 한다. 다섯째, 모든 홈리스가 밀집한 지역을 수시로 방역하고, 이들에게 안전한 거처를 제공해야 한다.

테넌츠 투게더는 재난과 위기에서 ‘선의’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는다. 임대인의 선행이나 자발적인 임금 삭감 행렬에 동참하는 고위 관료의 선의는 정책의 시작이 될 수 없다. 전세계가 계속 주문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 특히 세입자, 홈리스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주거권이라 부른다.

임경지 학생, 연구활동가
관심분야 - 주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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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마이크를 주지 마라

3월25일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 ‘박사’라고 불리던 범죄자(조주빈)는 자신을 ‘악마’라고 칭했다.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참을 수 없었던 한 영화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렇게 올렸다. “니가 만약 스스로 악마라고 믿고 있다면… 좋다. 악마를 대한민국 법의 테두리에서 어떻게 처리하겠니. 종교의 테두리로 처리하도록 하자. 예로부터 악마는 주로 불에 태워 처리했단다.” 트위터 아이디 vaga***는 손석희, 윤장현, 김웅 등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 “오오 의미심장해! 무슨 의미일까! 하면서 사람들이 호들갑 떨 줄 알았냐. 니 속이 훤하게 다 보이는걸. 모든 사람이 비웃어줄 거다. 조커 놀이 그만해”라며 범죄자의 말이 과도한 관심을 받는 현실을 경계했다. 이는 ‘#nthroom_stop’ 해시태그 운동과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n번방 사건을 국외에 알리기 위한 이 해시태그 운동에는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마십시오”라는 문장이 함께 공유된다. 성범죄에 대한 구조적 분석보다 가해자의 평소 행실,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움직임이다.

한편, 수사 당국이 엄벌 의지를 밝히자 네이버 지식인엔 일부 참여자 글이 올라왔다. “제가 다른 방하고 착각해서 실수로 들어가 영상 몇 개 받았거든요. 눈팅만 했어요. 그래도 감옥 가나요?” 꿈이 경찰이라 잠입했다는 말 같지 않은 소리도 있다. 하지만 n번방은 결코 실수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n번방에 들어가려면 5단계를 거쳐야 하고, 암호화폐를 써야 한다. 트위터 아이디 M_En**는 말했다. “우연히 n번방 들어간 놈들에게, 실수로 종신형을 때리면 어떨까?”

코로나19의 전세계적 유행으로 범죄자들이 국외로 도망치기 어려운 지금이,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 범죄자들을 잡기 위한 가장 좋은 날일 것이다.

정성은 콘텐츠 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 PD
관심분야 - 웃기고 슬픈 세상사
기술은 죄가 없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신분을 감추는 데 최신 정보기술(IT)을 적극 활용했다. 중앙화된 은행 없이 송금이 가능한 암호화폐로 입장료를 받았다. 비트코인, 이더리움뿐 아니라 ‘익명 코인’으로 유명한 모네로를 활용했다. 추적을 피하려 수많은 지갑으로 암호화폐를 나눴다가 다시 합치기를 반복하는 ‘믹싱 앤 텀블러’ 기법도 썼다.

‘범죄의 온상’ 취급을 받아온 암호화폐의 입지는 더 불안해졌다.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2008년 일명 ‘사토시 나카모토’로 알려진, 지금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이가 고안했다. 그 의도가 어쨌건, 현실에선 마약이나 총기, 불법 성착취물 거래나 자금세탁 등 범죄 행위에 널리 쓰였다.

그러나 기술에는 죄가 없다. 와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는 조씨가 3월11일 공개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모네로 등 암호화폐 지갑 주소를 분석해, ‘박사방’ 운영 수익으로 추정되는 32억원 상당의 자금 흐름을 찾아냈다.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거래 내역이 위·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에 영구히 기록돼, 지갑 주소만 알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덕분이었다.

와 가 조씨 암호화폐 지갑의 자금 흐름을 찾아낸 배경엔, 암호화폐의 오명을 씻기 위한 다양한 이의 노고가 숨어 있다. 보안 전문 기업 웁살라시큐리티가 그중 하나다. 이 회사 대표 김형우씨는 10여 년 경력의 보안 전문가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몇 해 전 해커에게 암호화폐를 도난당했다. 도난당한 암호화폐를 추적하다가 아예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전문 업체를 차렸다.

암호화폐를 주고받을 때는 신원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지만, 다행히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현금과 암호화폐를 서로 맞바꾸려면 중앙화된 암호화폐 거래소를 거쳐야 한다. 모두가 기술을 선용하길 마냥 기대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해 암호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VASP)가 자금 송·수신자의 정보를 확인하고 보관하도록 의무화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한국에서도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위한 개정 특별금융정보법이 3월 초 국회를 통과했다. 이런 노력이 기술의 오명을 벗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인선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기자
관심분야 - 기술, 인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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